홍차의 매력을 꼼꼼히 알려주는 책, 오후 4시 홍차에 빠지다

 

처음 홍차를 마신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부터 나는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점점 마니아의 길로 다가가는 중이다.

이 책은 홍차 관련 정보가 담긴 책 중 처음으로 읽은 것이었다.

도서관의 요리책 코너를 보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고, 마침 홍차에 관한 궁금증이 하나 둘 생기던 차였기에 빌려 읽었다.

수많은 홍차 브랜드들, 다양한 홍차음료 만드는 방법, 소소한 홍차 이야기들은 홍차 초보에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 좋은 기억이 남아 있었기에, 시간이 좀 흐른 후 인터넷에서 다시 우연히 본 이 책을 사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읽었던 책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그래서 책장 속에 꽂혀 고이고이 소장용으로 간직되고 있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홍차를 종류별로 조금씩 사서 다양하게 마시기 시작했고, 친구들에게 전파(?)도 했다.

카페에 가서는 커피보다 밀크티를 마셨다.

다양한 홍차음료도 몇 가지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홍차를 알게 되었고, 조금 더 홍차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읽어갈 수 있었다.

 

읽으면서 전에도 마시고 싶었지만 아직 못마신 홍차들이 눈에 띄었다.

딜마의 와테 시리즈. 로네펠트 화이트 피치. 셀레셜 트루블루베리, 탠저린 오렌지 징어.

딜마 파인애플 티. 티카네 스위트 키스. 아마드 레몬 앤 라임. 스태쉬 초콜릿 민트 우롱.

드림타임 핫초콜릿(캐모마일+꿀 첨가). 위타드 아즈텍 찰리 핫초콜릿. 셀레셜 슈가 쿠키 슬레이 라이드.

 

커피 홍차(홍차 커피)는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홍차 음료다.

캐러멜 밀크티는 읽다가 마시고 싶어져서 바로 도전해서 만들어 마셨다. 참 맛있었다.

티 상그리아도 신성할 것 같아서 궁금한 홍차 음료.

홍차 펀치는 다가오는 여름에 만들어보면 색다른 여름 음료가 될 것 같은 예감.

마지막에 부록처럼 덧붙여진 다양한 티타임 테이블 소개도 다시 보니 좋았다.

 

또 그 사이 다즐링을 참 좋아하게 되어서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다즐링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즐링은 마시면 마실수록 참 매력적이다.

좀더 다양한 다즐링을 마시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찻잎의 향을 오롯이 느끼고 싶을 때는 다원 다즐링을 찾는다. 모든 다원의 차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한번 다원 다즐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 어떤 가향차도 이보다 더 향기롭거나 신비로울 수가 없다. 순하고 부드러운 첫물차도, 머스캣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두물차도, 진하고 깊은 매력을 지닌 가을차도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다. 다즐링은 하나의 이름을 가졌지만 천의 얼굴을 지녔다. 홍차의 진지한 매력에 빠져 보고 싶다면 반드시 다즐링을 마셔 보라. (p.186)

 

위 말에, 공감 공감.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지난 달에 은희경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그녀의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최근 광고를 많이 보고, 들어서 익숙한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제목이 꽤 길지만...서정적인 느낌이 난다.

제목과 어울리는 표지 디지인도 신비한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책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프랑스어 초급과정. 스페인 도둑.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금성녀.

각각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부분부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일요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야기들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일상처럼.

신비함과 단정함.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정갈한 느낌.

등장인물들이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격정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 같다.

 

여섯 단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표제작이었던 것 같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차분하게 흘러가는 이갸기가 제목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리고 책 속에 담겨있던 책 제목들. 궁금해졌다.

익숙한 제목도 있고, 낯선 제목도 있고, 이미 읽어본 책도 있었다.

사이토 마리코 <눈보라>.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빛의 계단>. <생의 한가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조 산으로>. <위대한 개츠비>.

 

책을 다 읽고나서야 서문처럼 쓰여 있던 <눈보라>의 한 장면을 읽게 되었다.

꽤 인상적이었다. 눈송이를 가지고 하는 장난.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꽤 좋은 느낌으로 읽었는데, 그 느낌을 제대로 리뷰에 표현 못하는 것이 아쉬운... 그런 소설.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하게 되는 열 여덟편의 단편들, 런던스케치

 

이 책을 산 것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무심하게 책들을 고르던 그때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을 별로 읽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독서폭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은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게감 있는 작품은 아직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세 작품을 골랐다.

하나는 시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림을 소재로 한 단편 모음.

마지막 하나가 바로 <런던스케치>.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이었다.

 

다른 시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하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다가서기 힘들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컸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끝까지 못 읽었던 걸까.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총 열 여덟편.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중 앞의 여덟 편을 읽었었다.

이번에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첫 내용을 보자마자 내용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만큼 기억에 꽤 강하게 남아있었나보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들이었다.

처음에 읽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소설처럼 3인칭 시점으로 흘러가서, 단편 소설들이라고 생각했다.

읽다보니 소설같지 않은 단편들도 있어서 이젠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 실려있는 열 여덟편의 단편들은 이제까지 읽어왔던 이야기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평범한 일상 공간에서의, 평범한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하지만 흘러가는 이야기는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어쩌면 흥미를 느끼게 한 주된 요소는 '반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단편들에 반전의 요소가 있었다.

미스터리는 아니다. 그런데 숨겨졌던 이야기가 갑자기 반짝,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무슨 내용일까 생각해보며 읽게 되는 재미들도 있었다.

단편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저자 도리스 레싱에 대한 호감도 점차 늘어갔다.

다른 작품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묘사들이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정경을 묘사하는 것들. 누군가의 생각이 흘러가는 과정을 찬찬히 묘사한 글들.

 

수록작들 중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참새들, 장애아의 어머니, 지하철을 변호하며, 장미밭에서, 흙구덩이였다.

 

'참새들'은 일단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경 묘사가 참 좋았다.

야외 카페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로 몰려드는 참새들. 어쩐지 우리나라의 비둘기들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그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 특히 어떤 한 부부에게 참새들의 모습은 그들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런 식으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좋았다.

'장애아의 어머니'의 경우는 품고 있는 중심 내용이 참 좋았다.

장애아인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겠다고 고집하는 부인을 설득하기 위해 온 사회복지사.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결국 사회복지사는 깨닫는다, 그녀의 마음을. 믿음을.

그런 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하철을 변호하며'는 조금 긴 글이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여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일상을 묘사하는 느낌이 좋았다.

'장미밭에서'는 장미정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딸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보여준다.

딸을 보며 과거의 어긋났던 시간들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름을 느낀다.

결국 딸도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들은 화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부분에서 딸의 어머니에 대한 시선도 잠시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약간의 반전적인 느낌도 있었다.

'흙구덩이'는 이혼한 전남편을 만나 흔들리게 된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전남편이 돌아간 이후의 여자의 생각이 흘러나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던 전남편의 새여자의 생각을 흐름을 따라나가고, 결국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 결론은 꽤 놀라웠다. 정말 그녀의 생각대로였을까? 그건 모를일이긴 하다.

이 여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숨막히는 초조함도 녹아있다.

한 여자의 생각일뿐인데, 그런 생각이 느껴진다는 것이 신선했다.

이외의 다른 단편들도 계속해서 몰입해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느낌과 비슷한 생각을 담은 구절을 찾기도 했다.

멜로드라마란 우리에게 익숙한 일련의 감정적인 사건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그와 비슷한 일들을 본 적이 있다 해도 그것을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놀랄 만큼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열쇠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p.138)

 

어쩌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종의 '멜로드라마'같기도 하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알게 모르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니까.

이 책의 이야기가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그 비슷한 일들을 놀랄만큼 개별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