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흩어져버리는 것 같은 이야기들, 비행운
소설가 김애란의 이름은 예전부터 꽤 들어왔지만, 그녀의 소설을 실제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것을 망설여왔던 것이다.
이제까지 계속, 한국 현대 소설을 읽는 것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현실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느낌이 싫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이번에 읽게 된 건... 그래도 이 책이 단편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예상대로. 약간 씁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뿐. 읽기를 망설여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생각들이 변해온 걸까.
읽기 전에 표지도 약간 거부감이 있었다.
표지는 다소 기괴한 느낌이다. 액체로 가득차 있는 공간.
그곳에서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어 빠져나오려는 누군가의 모습.
그러나 그의 발이 닿는 곳은 가느다란 줄 한 가운데이다.
빠져나오는 순간, 다른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뭔가 슬픈 느낌이었다.
이야기들은 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실제로 주변의 누군가가 들려줄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
평범해서, 슬픈 이야기.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 번째로 등장한 이야기였다.
짝사랑. 주인공에게 짝사랑은 참 잔인했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사소한 것에 계속 상처받는다.
선배를 도와주러 갔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오는 주인공은, 어릴적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이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아이. 그 아이는 주인공을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걸까?
사실 그 뒤에 숨겨진 감정들을, 잘 모르겠다.
만일 짝사랑이었다면, 구도가 참 특이하다. 결국 짝사랑은 무한히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그에게 그는 그녀에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도 있었다. 그건 주인공이 대학시절 선배에게 보낸 메시지에 쓴 말.
신기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을 제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 생각나요. 그것도 번번이요. 처음 가본 길, 처음 읽은 책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떠올라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버리는 것 같아요. (p.21~22)
사실 읽어가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한국 여성 작가들이 쓴 글을 읽고 나면 어쩐지 공허함, 텅 빈듯한 그런 감정이 스쳐간다.
은희경의 작품을 읽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김애란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그건 아직 이 장르에 익숙치 않아서일까?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라서 아쉬웠던 것일 수도 있는 듯 하다.
현실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소설 속 세계만이라도 완벽히 닫혀 있기를 바랐던 거다.
생각해보니 이제까지 좋아했던 열린 결말의 이야기들은, 적어도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작은 실마리들이 있었다.
그들만이라도 꼭 행복하기를, 줄곧 바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제목, 비행운.
날아가버린 비행기의 흔적으로 남은 하얀 비행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흩어지고, 사라져버릴 한 순의 것.
어쩐지 이야기도, 그 속의 인물들도, 비행운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