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실린 두 작품, '시소 몬스터'와 '스핀 몬스터' 중 맞는 것을 골라 읽어보는 방식이다. 끌리는 주제를 고른 뒤, 몇 가지 질문을 YES/NO로 답해가며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타입이 나눠진다. A타입이 시소 몬스터, B타입이 스핀 몬스터였는데 나는 B타입이었다. 장르를 보고 고른 선택이었다. A타입은 스릴러로 평소 피하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반면 B타입은 SF라 최근 관심이 높아진 장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이란 재미있다. 저절로 잊히긴 해도 '이 일은 잊어버려야지' 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잊을 수는 없다. 특히 꺼림칙한 추억이나 불쾌한 장면은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p.5)

 

첫 문장부터 매력적이다.

화자가 잊지 못하고 있는 기억, 그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기억이다. 자율 주행장치로 운전하던 차는 다른 차와의 충돌로 인해 사고가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즉사했고 남은 건 남자 아이 하나. 그런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맡게 된 조부모들은 재판을 진행했고, 갈등은 심해졌지만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면서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아이만 남았다. 미토, 그리고 히야마. 이후 그들은 살아가면서 종종 교차하게 되고, 묘하게 대립 관계에 놓이곤 한다. 미토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책의 장르는 SF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디지털화 되는 정보들, 인공지능의 발달.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을 이야기 곳곳에서 느낀다.

'기억'과 '기록'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한다. 첫 문장부터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서 그런가? 생각거리가 많은 소재인데다 예전에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접한 경험이 있어 관련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다보니 생각이 깊어진다. 둘 다 자의나 타의에 의해 진실이 '왜곡'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 해석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거짓된 정보들이 퍼져나갈 수도 있는 가능성과 그 여파.

인공지능의 부정적인 부분에서 일어날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인간의 '감정'에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듯 말할 수 없는 논리적이지 않은 것. 인공지능이 '예측'할 수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SF와는 또다르게 '감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대립하는 두 인물의 갈등을 다룬 두 편의 이야기. '스핀 몬스터'와 짝을 이루는 '시소 몬스터'는 어떤 갈등과 충돌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속도감 넘쳐서 가독성이 좋은 이야기라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은 이야기,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은 출간되고 얼마 안 있어서 구매해 읽었었다. 그러니까 2018년 5월이 첫 만남. 다소 충동적인 구매였다.

표지의 보랏빛이 끌렸고, 제목에 끌렸다. 커피와 탐정의 조합이 궁금했다. 게다가 단편집이기도 했고.

이번이 두번째 만남. 처음 읽을 때 스윽 지나쳤던 부분들에도 눈길을 주며 읽을 수 있었다.

 

'할의 커피맛'에 있던 손님들은 심심함과 무료함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뭔가 색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원했다. 무료함을 참지 못한 그들은 직접 나서고야 말았다. (p.37)

 

에피소드는 총 아홉가지. 카페에서 일어난 사건도 있고, 다른 지역에 갔다 마주한 사건도 있다. 집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사건 유형도 다양하다. 가벼운 동기에서 시작된 절도사건이 있고, 국제 결혼 문제가 섞여있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밀실 사건에 연쇄 살인 사건, 도난사건과 살인사건이 얽힌 경우도 있다. 사건까지는 아니었지만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그 시작이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어도, 결과는 나비효과처럼 번진 다음이다. 범죄가 세상 밖으로 알려질 즈음이면 충격은 이미 준비된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이기 쉬웠다. (p.303)

범죄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어.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고 그 영향은 퍼져버린 상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초반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가벼운 동기.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연결되어 있는 느낌.

 

커피는 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할은 또 환의 전부였다. 할이 벽을 뚫고 나온 그때부터 그들은 한 몸과 다를 바 없었다. (p.163)

 

일본에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환이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간곡히 원하던 순간에 나타난 유령, 할.

원래 이름은 재령이었으나 환이 '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할과 환의 유대감은 상당하다.

"사건의 정황을 추리하거나 사람을 통찰하는 데 있어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어떤 사건을 아는 일에는 오로지 정황과 그에 따른 추론이 있을 뿐입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제 자신을 보자면 가끔은 냉혹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범죄적인 사건들 앞에서 저의 인간적인 감정은 늘 뒤로 물러나 있다고나 할까? 때때로 제가 범죄 해결 로봇인지 인간인지 헷갈린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진실을 찾는 일은 때로 정교하고 섬뜩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p.302)

 

확실히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사건 속에서 환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촘촘하고 정교한 부분이 있다.

그 단서들도 충분히 제시한다. 앞부분의 소소한 배경 묘사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단서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엘러리 퀸의 '독자에의 도전'이 떠오른다. 꼼꼼하게 논리를 쌓아올리는 사건 해결 과정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사건의 진상은 잘 밝혀냈지만 주인공 콤비의 과거에 대한 미스터리는 가득하다.

할은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서 자신의 이름이 '재령'이라는 것과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뇌리에 박혀있는 여인의 모습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그림에 끌리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른다. 그가 어떻게 해서 환의 곁에 있을 수 있었고 일본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환은 어느 정도 주변 인물 관계가 드러나지만,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품고 있음이 마지막에 제시된다.

다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가득해 보여 후속편이 있을 법한데,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후속작이 나온다는 소식이다. 과연 그들이 품고 있는 진실은 무엇이었을지. 그 진실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얼마나 정교하고 섬뜩할지 기대해본다.

이야기 없는 음식은 없다, 파인 다이닝

 

이 책을 처음 읽기로 마음 먹게 한 건, 채널 예스의 소개글. 궁금해지는 내용이었다.

음식이 엮인 이야기는 책 이야기만큼이나 좋아하는 소재였으니까.

그러나 이 단편집의 단편들을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소설이라서 무의식적으로 기준이 높아진 걸까.

단편집에서 한두편 건지면 괜찮다 싶지만, 한국 소설이었다면 그런 경우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파인 다이닝』이 그런 경우였다. 어딘가에 있을법한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서,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가까워지는 건 힘들다는 걸 다시 생각한다.

몇 번 읽어도 익숙해지지 않아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마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모두 끌어안으려고 하지 말자. 적당히 넘길 줄도 알게 되었다.

 

승혜는 국물을 한숟갈 더 떠서 입에 넣었다. 이런 맛.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심심하고, 슴슴하고,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맛이었다. 그 아무렇지 않음 때문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별것 아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p.98)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앤솔러지. 모두 '음식'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최은영 작가님의 '선택'은 해고된 승무원과 수녀의 이야기다. 음식은 미역국. 누군가에게 말하는 형식이라 어느 여성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황시운 작가님의 '매듭'은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을 부양하는 여자의 이야기. 음식은 낙지. 매듭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윤이형 작가님의 '승혜와 미오'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와 싱글맘의 이야기, 채식주의자 이야기가 함께 있다. 음식은 밀푀유나베. 다시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았던 단편이었다.

이은선 작가님의 '커피 다비드'는 카페 손님들의 이야기로 원두 이름 하나에 사연 하나씩 나온다. 음식은 커피.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김이환 작가님의 '배웅'은 SF 장르로, 컴퓨터 속으로 떠난 사람들과 신앙심으로 거부한 이들에 대해 나온다. 음식은 초콜릿.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웠다.

노희준 작가님의 '병맛 파스타'는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있었다. 음식은 파스타, 아니 스파게티.

서유미 작가님의 '에트르'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였다. 음식은 케이크와 빵. 글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단편으로 알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각 단편 끝에는 작가의 말들이 있어서 어떤 생각에서 글이 나왔는지, 왜 그 음식인지 알아볼 수 있다.

 

분명한 건, 모든 음식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음식 없는 이야기는 있어도 이야기 없는 음식은 없다는 것. (뒷표지 글에서)

 

다 읽고, 뒷표지를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매일 먹는 수많은 음식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질 때 담기는 마음들.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생각들. 확실히, 이야기 없는 음식은 없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