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부타부타(돼지돼지) 시리즈' 중 하나인 '부타부타가 있는 장소(ぶたぶたのいる場所)' 정도로 번역될 제목을 가진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수록된 동명 단편 제목을 앞세운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총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절로 나눠놨기 때문에 계절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 소개되는 시리즈인데 전작('크리스마스의 돼지돼지')에서 백화점 직원으로 나왔던 돼지돼지 씨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호텔의 버틀러로 등장합니다. 핑크색 돼지인 봉제인형 모양을 한 돼지돼지 씨는 모습만 인형이지 다른 건 전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못 믿거나 공포에 휩싸이거나 여러 형태로 나오지만 결국 돼지돼지 씨 덕분에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은 전작과 같습니다.

이야기는 '봄 이야기, 인형의 밤', '여름 이야기, 부드러운 기적', '가을 이야기, 부루퉁한 데스데모나', '다시 봄 이야기, 작은 사람과 큰 하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화자가 달라서 단편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전작보다 더 연결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돼지돼지 씨가 근무하는 '그랜드 호텔'이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벚꽃 축제 20주년 기념으로 셰익스피어 연극을 하기로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본가가 꽃집을 하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스기야마 오리가 화자입니다. 연극의 각본을 부탁하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연인과 함께 호텔에 묵게 되는 가나에와 아키미쓰의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있을 법한 헤프닝도 벌어집니다. 그리고 연극 '오셀로'의 배역을 뽑는 이야기도 등장하고 번외편 격으로 소설가가 이 호텔에 묵으면서 돼지돼지 씨를 만나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셀로' 연극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이 마지막 단편에서 앞에 등장했던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해서 재밌습니다.

돼지돼지 씨를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소한 소설의 장르이지만 돼지돼지 씨 덕분에 조금 기묘하달까 동화 같은 면이 있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지만 특별한 소설. 그래서 열두 편의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 점이 수긍이 가더라구요. 실존하는 호텔은 아니지만, 꼭 가 보고 싶어지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이 소설은 '부타부타(돼지돼지) 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2011년 1월까지 열 두 권이 발행된 상태라고 하네요. 12월 24일과 25일 양 일간, 시간 별로 다섯 명씩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이 책의 주인공인 '돼지돼지 씨'를 만나게 되고 각자 우울했던 크리스마스를 날려버리고 행복해지는 단편 모음집입니다. 

처음 돼지돼지 씨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헛것이나 유령을 본 것으로 경악하고 혼자 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다른 사람에게도 상의하지 못하지만, 그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공통된 과정을 거칩니다. 마지막에 이 돼지돼지 씨의 정체가 나오는데 너무 멀쩡한 한 가족의 가장이며 무려 '야마자키 돼지돼지'란 이름을 지닌 아저씨입니다.

겉모습은 배구공만 한 돼지 인형 그 자체이지만 행동이나 목소리 등은 그냥 아저씨 같고 먹는 것도 평범히 먹는 기이한 존재입니다. 산타 복장을 하고 선물을 주러 다니는 역할이라서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인가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저 백화점 직원이라 배달 일을 하구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화자들이 평범한 여자들이 대부분이라 (아이인 몇 편도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소설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합해보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정도의 장르로 구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로라 일을 하기로 하지만 몸도 안 좋고 과거 남자 친구를 만난 유미코, 원거리 연애로 힘들어하는 OL 미츠키, 홀로 집을 보는 아이 유카, 조건은 좋지만 좋지 않은 관계의 커플인 유키, 술에 취한 하루나와 교코의 24일.

25일은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마오, 옷 가게 점원 레이코, 중학교 입시 준비를 하는 나나, 케이크를 파는 다카코, 그리고 아빠를 기다리는 자매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섬세하게 여자들의 마음을 잘 그려놓고 안좋은 상황들을 빠져나와 행복해지는 상황을 그린 것이 훈훈하면서 좋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기분도 좋아지는 그런 동화같은 소설입니다.

Kurisumasu no Butabuta by Arimi Yazaki (2001) 

크리스마스의 돼지돼지 

지은이 야자키 아리미 

발행처 (주)시공사 

2003년 12월 5일 초판 1쇄 인쇄

2003년 12월 13일 초판 1쇄 발행

옮긴이 서혜영

이 소설은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작가는 가수로 데뷔 후 시, 수필, 소설까지 발표하며 나카하라 츄야상,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까지 받은 저력을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영화배우로도 데뷔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소재는 '이지메'입니다. 어찌 보면 흔한 소재인데 지속적으로 소설의 주제로 사용되는 이유는 현실에서 그 사건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자는 중학교 2학년생 남자아이입니다. 같은 반 니노미야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시이기 때문에 '사팔뜨기'라고 놀림을 당하고 심심풀이로 구타를 당합니다. 이야기는 같은 편이라는 쪽지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니노미야 패거리들의 장난인지 누군가의 도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니노미야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공부도 잘하고 밝은 아이입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지길 원치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이지메를 지속합니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같은 반에서 여학생들에게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고지마였습니다. 잘 씻지 않고 다림질도 안하는 교복을 입고 다니고 머리카락 손질도 하지 않는 이상한 아이라 괴롭힘을 당합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고래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공원에서 둘은 만납니다. 그러면서 서로 쪽지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지메를 가하는 아이 중 한 명은 너무 태연히 말합니다. 당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하고 반격할 수도 없어서 당연히 이지메를 당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논리적이라는 것보다 좀 더 지나치게 병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단순히 상대의 우위에 서는 것이 좋아서 이지메를 할지도 모르고 친구가 해서 덩달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한 모모세는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잔혹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인물의 설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지메'를 다룬 여느 소설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과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죄의 대가 같은 것들을 보여주지만, 이 소설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평범하게 이지메를 하는 아이들은 초점에서 조금 빗나가 있습니다.

고지마가 더럽게 하고 다니는 것은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성실하지만 무능해서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버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새아버지가 생겨서 금전적으론 넉넉해졌지만 친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어서 자신 나름대로의 법칙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 괴롭힘들을 이겨내면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딘가 철학적인 것도 같고 관념적인 것도 같습니다. 고지마는 이 사상이 지나쳐서 점점 말라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같이 변해갑니다.

화자의 사시인 눈이 역시 그런 표시라며 공감을 하는 고지마이지만 사시를 고칠 수 있다는 말에 함께 기뻐해 주지 않습니다. 고지마는 괴롭힘을 견디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을 바라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도 같아 보입니다. 니노미야 패거리가 고지마와 화자의 고래 공원에 몰래 숨어듭니다. 둘을 함께 괴롭히려는 장면 속에서 고지마는 그 초월한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괴롭히는 아이들은 다 놀라서 도망갑니다.

고지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마음이 더럽혀지거나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할수록 그것은 누군가에게 그것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 속박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자신의 철학과 상반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로부터라도 자유롭고 싶었던 고지마이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은 다르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화자는 그다지 큰 깨달음을 얻는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괴롭힘이 언젠가 끝나기를 바라지만 새어머니가 알게되길 원치 않아서 알리지 않을 뿐입니다. 사시를 고치면 괴롭힘이 중단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모모세는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래도 그는 변화의 단계를 소망합니다. 수술 후, 마지막 묘사는 이 아이가 깨달은 아주 큰 부분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바라본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누구하고도 나눌 수 없다는 관점입니다.

이는 고지마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했고 새어머니와 이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을 고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자신의 잘못된 면 때문에 이지메를 당했다는 사고에서 벗어남이 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결말엔 이지메에 관한 그 어떤 결론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니노미야 패거리가 어떤 반응이었는지, 이지메가 중단되었는지, 가족은 어떤 변화를 맞는지 고지마와의 관계는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화자는 이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고로부터 벗어났고 자신의 잘못으로인해 괴롭힘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좀 더 다른 시각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지메에 대한 답이나 결론, 계몽같은 그 어떤 것도 없는 소설이지만 한 사람이 성장해가는 면을 고지마와 화자에 의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지마가 했던 말처럼 이 모든 힘겨움을 이겨내는 성장이기도 하면서 고지마와는 또 다른 주인공의 성장이기도 합니다. 담담한 문체와 끔찍한 괴롭힘이 별다를 것없는 소설같아 보이지만 마지막 부분 덕분에 이 소설의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