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maze로 '미로'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제에서 이미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메구미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이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누나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 이름도 그다지 남녀 구분
없이 짓는 가풍에 따라 메구미라는 이름이 붙여진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의 친구인 미쓰루입니다. 약간의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메구미는
이름처럼 여성스런 말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게 자신에게 맞아서 그냥 그렇게 사용한다고
하지만 성격 자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소설 전반을 통해서 간간히 그려집니다.

그는 미국의 무슨 제약회사에서 일을 합니다.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중동의 어느 마을에
한 건물이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면 감쪽같이 없어져서 그곳을 조사하는 명목으로 오게 됩니다.
미쓰루는 탐정같은 추리를 종종 잘했기 때문에 거액의 돈을 받고 메구미의 요청으로 동행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지인이면서 그 마을에서 자라온 세림과 군인같은 느낌의 스콧. 이렇게 네 명이
이 건물을 조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섯불리 내부로 들어갔다가는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묵으면서 지내게 됩니다.

온다 리쿠의 소설 중 '흑과 다의 환상', '네버랜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일시적인
밀실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4명의 인물이 주인공 입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캐릭터를 지니고 있고 화자가 가장 나약합니다.

이 소설은 앞의 내용은 마치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기술하는 것 처럼
묘한 환상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실체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기술하는 온다 리쿠라는 이미지가 작가에게 붙어있지만 이 소설은 그것을
잘 활용하여 현실을 비판하는 그런 소설로 결론을 맺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흥미를 반감할 것 같아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표지에 써져있는 고모리 겐타로의 표현처럼 온다 리쿠의 상상력의 표현들은 정말 탁월할
정도입니다. 감성적이면서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추악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네버랜드'와 조금은 비슷할지도 모르겠
습니다.

독특한 캐릭터인 간바라 메구미가 다음 여행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됩니다.
이야기를 이끌고가는 미쓰루라는 캐릭터도 참 괜찮았는데 다음 편들은 어떻게 끌고
가려나요. 여자들이 열광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아무래도 감성을 잘 풀어내는
면이 있어서 그럴 것 같습니다.

조선 선비의 거울, 문묘 18현, 사약으로 죽어 천 년을 산다

이 책은 두터운 양장본으로 우리 나라의 명현들을 소개합니다. 성균관 대성전인
문묘에 해동 18현으로 추앙되는 명현들을 배향해놨다고 합니다. 신라 최치원과
설총, 고려의 안향과 정몽주, 조선 조의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
먼저, 이후에 김인후, 성혼, 이이, 조헌,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김집, 박세채
순으로 배향되어 있다고 합니다.

글에 따르면 태산과도 같은 학덕으로 예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임금을 교화하여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칼날 같은 직언을 올리는
것으로 때로는 목숨을 잃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과 업적을 기록함으로써 기리자는 뜻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학생
때 의무적으로 외우기만 하고 이후 역사서는 뒷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남의 나라 역사는 보면서 우리나라 역사는 왜 멀리했을까 라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들었습니다. 더 먼 이야기들이 대단해보이는 심리가 있었던 것일까 싶네요.

당연히 시대순으로 배열되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목차를 보니 아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비슷한 상황끼리 엮어 배치를 해뒀습니다.
우선은 사약을 받아 죽은 명현 네 분을 묶어 '사약으로 죽어 천 년을 산다',
2장은 좋은 품성과 학식이 깊었을 듯한 느낌의 네 분을 '깊고 맑은 샘이 큰
강물을 이루고'라는 제목입니다.

3장은 여섯 분을 묶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문도들의 수난' 이라는 제목
입니다. 아마 앞은 부자가 나란히 문묘에 올랐기 때문이고 뒤에 여럿은 전쟁과
관련이 있다거나 그런 의미로 제목을 지은 것 같은데 1장에 속하진 않았지만
사약으로 죽은 명현도 속해 있습니다. 4장은 네 분으로 '신라, 고려 조의 명현들'
을 합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학자들도 있고 문외한이라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명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면 정말 이들의
삶이 거짓말처럼, 마치 어느 소설에나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낸 듯 멋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또 놀랐고, 역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방송에서 사극이 방영되는 횟수가 늘고 있고 주변에서도 사극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여태까지는 가십꺼리를 섞어 넣은 듯하며 역사를
왜곡시킨다는 우려가 있다는 얘기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런 드라마 덕분에 역사에 관심을 갖는 분들도 있겠지요. 저는 되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심취되어 계신 분들이 왜 그런지를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인물들이 왜 명현으로 추앙받고 기려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혹에 약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신념을 버리거나 굽히거나 타협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런 현상
이 더더욱 뚜렷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신념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일 정도이고
왕정시대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서 존경의 빛이 하나도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명현들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대조적
으로 느끼게 됩니다.

바르고 옳은 말을 하는 것이 나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양반 가문으로 잘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가난했다는
한 명현의 이야기 속에서 그런 그의 신념이 대단했음을 또 느끼게 되었구요.
북벌계획은 중심인물이었지만 결국 사약을 받기도 하고, 사직과 복직을 반복
한 불행한 인생도 있었습니다.

한편 학자로써 전혀 문제없이, 심지어 왕이 곁에 두기를 원했던 학자가 있는
반면 난을 피하거나 탄핵을 받게되는 학자 또한 있었습니다. 문인과 무인을
겸하는 학자도 있고 신분 문제 때문에 궁을 떠난 학자도 있었습니다.

최근 10년간 핸드폰으로 너무 쉽게 연락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낭만이 없어졌다고 아날로그 때를 바라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 명현들의 상소는 단순히 옳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멋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의 글에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으로써의
본성이나 악함을 누르고 지향해야하는 바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의 고고함을 엿볼 수 있는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문자를 쓰고, 말을 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몇번을
고심하고 나라를 걱정했을 그들의 절절한 사연이 한 나라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동경하게 되고
지금 시대에도 그런 인물들이 나라를 위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도
동시에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