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반희와 누군가를 돌보고 지배하는 게 체질이라 온전히 자신만의 귀여운 파트너가 필요했던 정교의 로맨스. D/S관계( 지배자, 피지배자로서의 파트너 계약관계 )를 맺고 애니멀 플레이를 하는 에세머(SM을 즐기는 사람들)커플이지만, 정 교가 매너있는 멜돔( 지배적인 성향의 남자 에세머 )이라 가학적인 성행위는 일체 배제된 소프트한 플레이만 원했기에 말 잘듣는 순한 애완 토끼를 돌보는 자상한 주인의 단순한 역할 놀이쯤으로 그려져서 SM을 잘 모르는 분들도 부담없이 읽을수 있을듯하다.
'바니'라는 애칭처럼 순하고 겁도 많고, 눈도 잘 충혈되는게 토끼를 꼭 닮은 반희는 혼자 너무 외로웠기에 따뜻한 온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스러운 캐릭터다. 동성애자인데다 에세머라는 독특한 성 취향때문에 집에서도 쫓겨나고 타고난 내성적인 성격탓에 파트너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늘 혼자 외로웠던 그가 멜서브( 피지배적인 성향을 가진 남자에세머 )인 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온기를 바라면서 한번 크게 데인적이 있어 또다시 상처받을까봐 파트너를 구하는게 두려운 반희는 자주가는 샌드위치 전문점 사장 정 교가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이라 강하게 끌리면서도 스스로에게 여러 핑계를 대며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뒤늦게서야 그가 바로 SM카페에서 알게 된 멜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저 D/S관계로 만족한다고 애써 진심을 외면하려 들던 반희. 초반 '바니'가 되어 매너좋은 멜돔 정교의 보살핌을 받을 때는 행복했지만, 갈수록 애완토끼 '바니' 아닌 '반희'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를 만나도 더이상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외롭다는 것을 깨닫고 결단을 내린다.
한편, 반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자상한 선한이미지가 전부가 아니었던 정교는 은근 까칠하고 짓궂은 캐릭터다. 반희보다 3살 연하인데도 반희가 의지하고 싶을만큼 훨씬 어른스럽다. 반희가 자신의 외모에 반한걸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침 뚝 떼고 있었다니 이런 능청맞은 녀석~!!
정교는 평생을 함께 할 자신만의 파트너 찾던중 마음에 드는 '토끼'를 발견하고, 겁많은 토끼가 도망가지 않게 조금씩 몰이를 시작한다. 관찰력 뛰어난 타고난 멜돔답게 반희의 소심하고 경계심많은 성향을 본능적으로 파악하여 다정하게 살살 구슬려 호감을 사고, 은근 다그쳐 결국 제 손아귀에 쥐고 말던 정교.
정교가 선이 가는 외모라고 묘사되어 싸움은 못할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수준급이라 반희를 보호해줄 능력이 충분하더라. 대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내 취향의 공인데 책 분량자체가 너무 짧아 정교시점이 부각되지 못한게 아쉬웠다. 반희에게 나쁜 짓을 했던 변태놈이랑 스토커에게 좀더 강한 복수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