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였다. 도대체 이 아이, 마커스 얄로우의 용기는, 그 섬뜩한 무모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거 진짜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야?' 싶은 감탄과 IT의 기적은 어디까지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현기증을 느낄 때쯤, 이야기는 갑자기 위태로워진다. 마커스가 학교를 땡땡이 치고 친구들과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라는 대체현실게임을 하고 있던 거리에서 다리가 폭파하는 테러가 발생하고, 쑥대밭이 된 현장에서 아이들은 극악한 폭력을 당한 뒤 납치된다. 그들은 국토안보부였고, 아이들은 불순한 물건(휴대폰, RFID태그 복제기, 와이파이 탐지기, USB메모리)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테러의 용의자가 된 것이었다. 감금과 심문이 이어지며 그가 테러에 가담한 사실을 시인할 것을 협박하지만 녀석은 펄쩍 뛰며 저항한다. 처절하게 드러나던 몸의 생존욕구 때문에 굴복하며 짐승이 되어 갈 즈음 아이들은 풀려난다. 계속 감시가 있으리라는 것과 심문당한 사실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 심문에 자발적으로 응했다는 서명까지 한 뒤였다.
상상할 수 없을 공포를 겪었을 마커스였지만, 녀석은 두려움을 뛰어 넘어 국토안보부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권력자들의 무분별한 폭력을 막기 위해.
마커스는 국가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보란 듯이 자행되는 사생활 침해를 교란하기 위해 신분을 숨길 수 있는 엑스박스와 운영체제를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엑스넷을 이용하기 시작하고 이들은 마이키, 라는 아이디로 넷망을 장악한 마커스를 따라 시민으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 찾기에 나선다.
조지오웰의『1984』는 가상의 세계였다고는 믿기지 않게 현재를 닮아있었다. 텔레스크린으로 끊임없이 개인을 감시하며 사상과 욕구까지 조종했다. 당의 필요에 의해 역사는 깨끗이 지워지고 고쳐졌으며, '일단 그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어떤 경우도 거기에 허위가 섞여 있다고 주장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었다.' 반역을 꿈꾸었던 윈스턴은 어떤 상황에도 신념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다짐을 잔인한 고문 앞에 버려야 했다.
윈스턴의 모습이 우리에겐 보편적이지 않은가. 권력 앞에 두려움으로 무릎을 꿇게 되는 것. 그래서 더 마커스의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불편하기도 했다. 가상공간에서 적을 무찌르는 판타지 같았다. 고문을 겪으면서도 옳은 것을 외치고,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어리지만 강한 신념의 소년이 내 안에 가장 작고 여린 양심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린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숨긴 채 저것은 틀린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고문 앞에서 진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차마 답할 수 없을 질문들을 뚫고 마커스는 끝까지 싸워 나아갔다. 그를 고문했던 국토안보부의 캐리 존스톤은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고, 트레저 섬의 특별 구치소에서 무고한 자들에게 일어난 고문과 감금이 ‘판단 오류 가능성’으로 포장되려 했지만, 마커스는 멈추지 않고 권력을 향한 외침을 이어갔다. 이번엔 시민을 향해서! 우리가 투표로 뽑았고,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들이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지 않고 우리의 신뢰를 배신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리고 이렇게 보태었다.
우리 대부분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 기권을 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해야 합니다. 부디 자유에 투표하세요.
열일곱 마커스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는 싸움이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언론과 매체를 통제하고 국민의 눈을 가렸다. 자신들의 사상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과거를 조작하려 하고 있다. 정부조직과는 거리가 먼 계급의 노동자들은 먹고 사는 현실에 치여 자신의 정보가 IT망을 통해 줄줄이 새어나간다는 것을, 과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권력에 복종하고 수긍하며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결코 평등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쥔 상위층이 아니라 밑바닥과 가까운 우리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이면 권력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들의 우위에 있다. 우리가 가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라고 윈스턴은 썼다.) - 『1984』 부분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수신기를 가지고 자신의 정보를 전파한다. 스스로 노출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와이파이는 끊임없이 사용자의 위치를 전송하고 수집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IT기술이 우리 삶에 긍정적인 면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뒷면에 숨겨진 어둠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리틀 브라더』의 작가는 말한다. 컴퓨터가 우리를 자유롭게도 하고 구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손 안의 스마트폰에 갇히는 불행을 겪기 이전에 보이지 않아서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윈스턴을 고문하던 이가 말했던 인간 정신의 끝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리틀 브라더』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지키려는 희망에 찬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자유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