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연세대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국제영어글쓰기대회 수상자가 22일 발표됐다. 초·중·고와 대학, 일반부로 나눠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총 5463명이 참가해 165명이 입상했다(입상자 명단은 www.iewc.co.kr 참고). 이 중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없거나 1년 미만 체류자를 대상으로 한 초등 고학년 1부문, 중등 1부문, 고등 1부문 대상 수상자 인터뷰와 총평을 싣는다. 시상식은 2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사 1층 로비(L1)에서 열린다. 다음달 중 수상작품집이 출간된다.
글=박길자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평가위원 총평 & 2회 대회 대비법
◇상상력 돋보이는 글 많아=“본선에 진출한 학생들은 영어 글쓰기 능력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작가의 소질이 엿보일 만큼 아이디어가 기발한 글도 많았어요. 한국 학생들이 영어로 글을 잘 못 쓴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교수들이 놀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어요.”
제1회 국제영어글쓰기대회(IEWC) 평가운영위원장인 이경원 연세대 교수의 말이다. 이번 대회의 출제와 평가를 맡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진과 연세대 외국어학당 FLI 라이팅센터, IHT-중앙데일리 편집진 등 15명은 한목소리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할 뿐 아니라 상상력이 돋보이는 글이 많았다”며 “특히 특목고생이 많이 응시한 고등부는 글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고 호평했다.
이석재(연세대 교수) 부위원장은 “고등부의 경우 어휘력이 풍부해 그런지 글이 긴 경우가 많았다”며 “글이 초점을 잃거나 문법이 틀리면 감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제를 모두 담지 못한 짧은 글도 문제지만 길고 지루한 느낌을 줘도 좋은 점수를 못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회에선 예선을 거친 1500여 명을 대상으로 1, 2단계에선 글의 전개와 주제 전달, 구성, 문장의 정확성, 어휘 선택 등을 평가했고 최종심은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위주로 심사를 벌였다.
◇2회 대회 일정과 대비법=5월 중 제2회 국제영어글쓰기대회 예선이 치러진다. 국제부 부문이 미국 동부 지역과 캐나다, 중국 등으로 확대된다.
평가위원회 측은 “초등생들은 영어소설이나 판타지북, 스토리북을 읽으며 표현력을 기르고 중·고교생들은 다양한 주제로 영어글쓰기를 해볼 것”을 권했다. 재미있는 주제를 골라 10줄→15줄→20줄로 늘려 작품을 완성하는 연습을 하면 좋다. 글을 쓸 때는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지나치게 자신의 이야기만을 쓰면 감점된다. 전체 문맥에 맞는 단어와 표현으로 주제를 전달해야 한다.
자신이 쓴 글은 다시 읽으면서 분석하고 틀린 부분을 고쳐 써 봐야 실력이 는다. 이경원 평가운영위원장은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재해석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깊이 있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중·고등부 대상 수상자 인터뷰
(초등 고학년 1부문 황혜원 서울 신서초 6) “영국작가 J.R.R. 톨킨의 판타지소설 『호빗』에서 읽은 문장을 살려 에세이를 썼어요.”
초등 고학년 대상을 받은 황혜원양의 작품은 “한 편의 문학콩트처럼 읽는 맛이 난다”는 평을 받았다. 초등부 주제는 ‘본인이 애완동물 애호가라고 가정했을 때 애완동물의 관점에서 본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되, 영어를 잘하는 애완동물로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황양은 “3학년 때 거북이 한 쌍을 길렀는데 밥을 너무 많이 줘 잃은 경험이 있다”며 “이때의 경험이 떠올라 거북이의 관점에서 에세이를 썼다”고 말했다. 이희경 평가위원은 “상황 설정 능력이 뛰어나고, 창작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황양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어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며 “인상 깊은 어휘나 속담은 암기해 영어일기를 쓸 때마다 인용한다”고 말했다.
수상작 첫 부분에도 ‘Hello, dear master(may you live forever)!’라는 문장을 썼다. 『호빗』에서 난쟁이가 왕에게 존경의 표시로 ‘오래 사세요’라고 기원하는 말 ‘may you live forever’를 인용한 것이다.
황양의 꿈은 유엔 주재 외교관이 되는 것. 매일 아침 CNN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영자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최근엔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흥미가 생겨 국제뉴스를 듣다 보니 영어도 늘고, 세상 보는 눈도 커진 것 같아 뿌듯하단다.
(중등 1부문 대구 범물중 2) 박성현 대구 박성현군은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학교 시험 준비하듯 문법을 공식처럼 달달 외워선 영어 글쓰기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영어글쓰기대회는 딱딱한 토플 에세이와 달리 창의력이 필요하므로 다양한 장르의 독서가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군은 우리나라 중학교의 현실을 풍자한 리포트 형식의 에세이로 대상을 받았다.
박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환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1년간 살다 귀국했다. 이때 헌책을 많이 구입해 가져왔단다. 집이 거의 ‘영어도서관’ 수준. 책이 2000여 권 된단다.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후’ 등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고 책을 반복해 읽은 덕분에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았다고 박군은 말했다. 토플 117점, 텝스 946점. 『에라곤 3부작』 『아르테미스 파울』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소설은 내용을 암기할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세계명작은 번역본 대신 원서를 구해 읽고, 민사고와 대원외고 커리큘럼도 구해 읽었다. 최근 읽은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독서패턴이 ‘잡식성’이다.
박군의 아버지는 매주 영자신문 칼럼과 뉴스를 스크랩해 책상에 놓아 둔단다. 이번 대회도 아버지의 권유로 참가했다. 박군은 “평소 글쓰기를 싫어하는데 이번 대회에 참가해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어휘나 미사여구만 잔뜩 늘어놓는다고 좋은 에세이는 아니죠. 쉬운 단어로 내 의견을 잘 전달해 상을 탄 것 같아요.”
(고등 1부문 박희원 민족사관고 2) 박희원양은 영어 글쓰기를 할 때 독창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읽으며 공부하지만, 이를 모방하기보다 나만의 에세이를 쓰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 이름이 없어도 친구들이 “이건 희원이가 쓴 에세이네”라고 알 정도란다.
박양은 법정에서 최후 변론에 나선 변호사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법정드라마인 ‘앨리 맥빌’에서 변호사의 말투를,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변호사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이를 응용했다”는 게 박양의 설명.
“영어 글쓰기 연습을 한다며 영화나 영자신문, 영어책, 영어로 된 오디오클립만 보려는 친구들이 많아요. 사고력 훈련을 하려면 한국 고전소설이나 현대소설을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해요.”
박양은 최근 고전소설 『구운몽』과 커트 보너거트의 『대학살 5호』를 비교하면서 책을 읽었다. 작가와 주제, 시대가 다른 작품이지만 공통점을 찾아내 생각을 깊이 있게 하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학교 영자신문 ‘민족헤럴드’ 기자 대표, 고교생연합신문 ‘Harbinger' 민사고 편집장을 맡고 있는 박양의 인터넷 초기화면은 BBC 뉴스다.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아서다.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해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당찬 고교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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