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주인이 없어 혼란스러운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야 급류에 씻겨나는 모래알마냥 죽어나는 시기이지만,
뜻과 능력을 고루 갖춘 비범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기죠.
기껏해야 유능한 신하로 만족해야 했던 시기는 가고,
천하의 "패권"을 쥘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여기서,
다들 잘 아시는 삼국지의 히어로,
삼국지의 절대 "선",
유현덕이 등장합니다.
키도 크고,
귀도 크고,
눈도 크고(귀가 보일 정도였다죠),
팔도 길고(무릎까지 내려왔다니...),
등등등,
겉모습부터 강렬합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현덕의 표정입니다.
여간해서는 그 속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죠.
더 나아가서,
현덕의 얼굴에는,
희. 노. 애. 락.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감정마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삼국지를 읽으면서는 이 대목이 무척 거슬렸습니다.
짜식, 잘난 척 하기는...
모,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현덕의 그런 표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구나,
하고 이해를 합니다.
워낙 큰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깊은 바다의 속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건 깊은 바다가 그 속을 일부러 감추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이 너무나 깊기 때문이고,
우리의 시력이 깊은 바다의 속을 꿰뚫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현덕이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의젓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덕의 고향인 누상촌,
이름처럼 커다란 뽕나무가 유명한 고장인데요,
그 뽕나무는 마치 수레에 덮개를 씌워 놓은 것처럼 생겼더랬죠.
어린 현덕은 이렇게 외치면서 놀았답니다.
"내 언젠가 이놈의 수레를 꼭 타고 다니고 말겠다!!"
누구에게나 치기 어린 시절은 있게 마련이어서,
어린 현덕도 속에서 꿈틀대는 야망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나 봅니다.
하지만,
현덕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하는 구절이죠.
그동안 여러 번 자랑했던 것처럼,
저는 학창시절에 그래도 한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구절을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위안을 얻곤 하는데요,
이런 감정이 저만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은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유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