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 책보다 9년전에 나온 판이랍니다...--; 최근에 위 판을 살짝 훑어보았는데 컴퓨터 조판이라서 그런지 깔끔한 감은 있습니다만 너무 깔끔해 글자가 흘러내릴 듯한 가벼움이 느껴지더군요. 제가 보는 책은 93년도에 구입한 것으로, 아직 컴퓨터 조판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였는지 활자조판된 책입니다. 글자가 좀 작은 감은 있지만 왠지 모를 무게감과 성실함이 느껴지지요. 

그래도 내용은 똑같겠지요? 번역은 훌륭한 편입니다. 물론 제가 이 책을 살 때는 이문열 삼국지가 워낙 판을 치고 있어서 눌린 감이 있습니다. 저는 이문열 삼국지를 한 페이지 정도 읽고서는 실망해서 덮었습니다(그 책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소견을 말한 것 뿐입니다. 저도 " 젊은 날의 초상"같은 작품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왜냐하면 묘사의 격렬함이 범우사 판보다 덜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은 득세한 동탁이 하태후와 소제를 결국 살해하는 대목이었는데, 이문열판에서는 이유가 하태후와 소제에게 아주 "점잖게" 자결을 권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더라구요. 범우사판에서는 이유가 하태후에게 너 운운하면서 아주 거칠게 자결을 강제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그러니 이문열판이 싱겁게 느껴질 수 밖에요.

아무튼 별을 많이 주고 싶은 책이지만, 조판이 마음에 안들어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눈의 피로는 덜할 것 같고 그림도 이래 저래 많이 삽입되어 별 세개를 주도록 하죠!!

참고로, 책값은 꼭 100% 뛰었군요.  저는 5,000원 주고 샀답니다.

지난 번 양수에 관한 글을 적으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양수는 탁상공론에만 능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똑똑하긴 했지만 영양가 있는 결과-예컨대 절묘한 전략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낸다든가-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하고.

그런데 다시 한 번 삼국지를 뒤져보니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어제는 예형과 장송을 잠시 혼동했던 것입니다!! 장송은 서촉 땅 정벌에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들어가기 어려운 땅이라는 점은 말씀드렸지요?  항우의 군세가 유방의 그것을 압도했을 때, 그러면서도 유방을 죽여버리기는 애매할 때 항우가 유방을 이 곳으로 보내버렸다는 것만 보아도-사실 가둬버린 것이죠-얼마나 험한 곳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양수는 장송의 이런 쓸모를 알아본 조조의 유일한 참모였습니다.  

(예형은 비교적 삼국지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천재지요.  조조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아랫사람을 잘못 부려 결과적으로 조조의 아버지를 죽게 한 서주자사 도겸을 돕는 바람에 함께 조조의 미움을 받았던 공융이 어쩌다보니 결국엔 조조의 참모가 되어 유표에게 보낼 사절로 조조에게 추천한 사람입니다. 원래는 공융이 사절로 물망에 올랐는데 공융이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 있다면서 추천한 사람이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예형도 자신의 천재성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결국 너무 잘난 탓에 죽는다는 정도만 말해두죠.)

장송은 삼국지의 중반부쯤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유비가 적벽대전을 틈타 얻은 형주를 기반으로 세력을 다시 정비해나갈 즈음이었지요.  장송은 서촉을 다스리고 있던 유장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협소한 군주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서촉을 듬직한 누군가에게 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접촉한 사람은 조조였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장송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오만하다는 생각에(장송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무례하게 굴었거든요) 장송을 죽이려고까지 하죠. 

이렇게 흥분한 조조를 만류한 것이 바로 양수였던 것입니다.장송을 잘 구슬리기만 하면 자연적인 방어선이 갖춰진 서촉 땅도 쉽게 집어먹을 수 있다는 점을 꿰뚫어보았던 것이죠. 그래도 조조는 끝내 장송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섣불리 서촉을 치려다 닭갈비를 부르짖을 정도로 고생을 하였으며, 이 때 조조를 설득하지 못한 양수도 결과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만, 양수가 조조를 설득해냈다면 양수는 살았을지도 모르죠. 나아가 조조가 촉 땅을 별 무리 없이 점령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치열한 삼국의 역사는 전개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비가 촉나라를 세워 그나마 세력을 떨쳤던 것은 조조가 알아보지 못한 장송을 공명의 도움으로 구워삶아 촉 땅을 차지했기 때문이니까요. 촉나라가 없었더라면 오나라가 위나라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적벽대전 직전 오나라의 문관들은 하나같이 손권에게 투항을 권유했다는 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장송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비가 잠깐 촉 땅을 먹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쑈"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송은 이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서 유비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성급하게 편지를 보내다가 발각되어 당시 촉 땅의 주인이었던 유장에 의해 "송장"이 되어 버립니다(나름으로는 농담...--;). 나쁘게 말하면 너무나 허무하게, 좋게 말하면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셈이지요.

첫 개시 글입니다... 최근 삼국지를 다시 읽는 재미에 조금 젖어있는지라(흥미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중--;) 삼국지에 대해 끄적여 볼까합니다.

혹시 양수를 아시나요? 이름만 보면 왠지 노력만 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사람은-닦을 수-조조의  참모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천재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얽힌 일화는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양수가 그의 총명함으로 인해 사망하는 대목입니다.

양수를 모르시는 분들도 "계륵"이라는 고사성어는 다 아실겁니다. 그렇습니다. 닭갈비. 취하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닭갈비에는 양수의 피가 배어 뚝뚝 떨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조조는 유비의 나라인 촉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갑니다. 그러나 첩첩산중에 있는 촉나라를 공격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대군을 일으켜 촉을 치기 위해 진군해온 조조로서는 어렵다고 그냥 물러서자니 완전 체면을 구기게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하자니 그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고-그러던 중 나온 식사가 하필이면 닭갈비탕이었던 것이죠. 먹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닭갈비를 보고서 조조는 자신의 신세가 그 닭갈비와 같다는 생각을 했고, 자기도 모르게 "계륵, 계륵"하고 되뇌이고 있는 것을 그날의 암호를 물으러 온 하후돈이 듣고서 널리 퍼뜨립니다. 이 말을 들은 양수는 자기가 관리하는 부대에 철군할 짐을 싸도록 지시하는데, 조조가 겨우 "계륵"이라고 한 마디 한 것을 듣고서도 조조의 속을 환히 꽤뚫어보아 곧 조조가 후퇴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 보면, 조조가 기분이 좋을리 없겠지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심중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양수에 대해 상당한 위협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 전에도 양수는 몇 몇 사건으로 조조의 심기를 긁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조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관여한 사건입니다.

즉 조조는 첫째 조비와 셋째 조식 중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조식은 대단한 문장가였기에 조조의 마음은 조식에게 기울어 있었지요. 게다가 조조가 후계자의 자질을 파악하기 위해 조비와 조식에게 낸 문제를 훌륭하게 풀어낸 것도 조식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조식의 편이었던 양수가 답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양수는 조조의 후계구도를 결정함에 있어서 깊이 관여하려 한 셈이 되었고, 이 사실은 결국 발각되어 조조가 조비를 후계자로 선택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이처럼 양수는 참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수의 뛰어남으로 인해 양수가 몸을 의탁한 조조의 심기가 어지럽혀 집니다.  그 결과는 양수의 죽음이었지요. 조조는 계륵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한 양수가 철군 이야기를 해서 군의 예기를 흐트러뜨렸다면서 양수를 처형합니다. 양수는 말 그대로 천재였기 때문에 죽은 겁니다. 

저는 그동안 머리가 좋으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습니다. 머리 좋아서 나쁠게 뭐가 있을까요? 그런데 양수를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수는 난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발휘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닥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난제를 풀어낼 때 느끼는 그 짜릿함이 그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조식에게 답을 가르쳐준 것도, 사실 본인은 내키지 않았지만 조식이 간절히 구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달아난 그의 목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이 지식과 지혜의 차이일까요? 아무튼 삶이라는 건 짧게 보고 판단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양수를 추억하면서, 욕심은 적게 부리고 삶은 길게 보아야겠다고 잠깐이나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