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게나마 열린 현덕의 벼슬길.

 

그러나 시대가 워낙 너저분한지라,

 

그 전도는 결코 유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주전, 황보 숭 같은,

 

내노라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들도,

 

뇌물을 바치지 않았구나,

 

하고 십상시들이 내치는 것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 판국인데,

 

당시만 해도 조무래기였던 현덕에게,

 

뇌물을 바쳐라,

 

하고 내미는 검은 손길이 곧 닥쳐올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하겠습니다.

 

현덕이 안희현령이 된 때로부터 얼마 후,

 

조정에서 감독관이 내려옵니다.

 

그 이름,

 

책에 나오지도 않는 것이,

 

감독관도 참 잔잔한 존재였던가 본데,

 

일단 "무명씨"라고 합시다...ㅋ

 

공손하게 맞이하는 현덕에게 무례하게 답해주고,

 

"조정에서는 너처럼 황족을 사칭하는 탐관오리를 잡아들이라 하셨다!!"

 

하고 한바탕 위세를 떱니다.

 

사실은,

 

"썩 뇌물을 대령하렸다!!"

 

는 의미.

 

바칠 재물이 없어 고민하는 현덕,

 

숙소에서 현덕의 책 잡는 글을 쓰라며 한 관리를 붙잡아 족을 치는 무명씨,

 

무명씨의 숙소 앞에 늘어서 속 끓이는 백성들, 

 

속상해서 술 한 잔 걸치고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본 장비.

 

장비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굽은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무명씨의 숙소로 직행,

 

"이놈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벌벌 떠는 무명씨의 머리끄댕이를 붙들고 대로를 질주,

 

말뚝에 무명씨를 묶은 뒤,

 

마침 옆에 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리드미컬하게 무명씨를 팹니다.

 

사정도 거침도 없이,

 

신나게.

 

무명씨의 피로 발갛게 물든 땅엔,

 

그저 버드나무 가지들만 숱하게 부러져 뒹굴 뿐...

 

뒤늦게 달려온 현덕의 만류로 무명씨는 겨우 살아나고,

 

현덕은 기꺼이 관직을 버리는 의미로 무명씨의 목에 관인을 걸어준 뒤,

 

"불쌍해서 살려주는 것이니 앞으론 그따위로 살지 않도록 하여라!!"

 

고 위풍당당하게 꾸짖은 후,

 

운장, 장비와 함께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

 .

 .

 

제가 어릴 때 이런 표어를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장비가 비록 자연보호는 못했지만,

 

사람보호는 톡톡히 했군요.

 

무명씨가 다치지 않았냐구요?

 

흠,

 

무명씨가 정말 사람이었단 말인가요?

 

암튼,

 

넘 후련해서,

 

제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 중 하나랍니다.

버드나무

 

안희현,

 

편안할 "안" 자, 기쁠 "희" 자로 쓰니까,

 

편안하고 기쁜 고을이란 뜻이겠지요,

 

이렇게 이쁜 뜻을 가진 고을에,

 

황건적을 소탕하면서 세운 큰 공로를 인정받은 현덕이 현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고 훈훈하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황건적을 소탕하고 주전과 함께 낙양에 입성한 현덕 일행은,

 

"거기장군"이란 직위를 하사받은 주전과는 달리,

 

불러주는 이 없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현덕 일행만 놓고 본다면,

 

현덕 일행이야 쥐뿔도 없는 처지니,

 

현덕 일행을 인정해 줄 필요도 황건적 소탕과 동시에 없어져버린 셈이라고 할 것이고,

 

주전 장군이 조정에 올린 현덕의 공을 치하하는 글도,

 

뇌물만큼의 효과는 없었나 봅니다.

 

다행히,

 

"장균"이란 사람 덕분에, 

 

현덕 일행이 조그만 보상이나마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현덕과 면식이 있던 장균은,

 

우연히 현덕 일행을 만나 무용담을 듣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조정에서 몰라주고 있다니,

 

깜짝 놀란 장균은,

 

당시 황제인 "영제"를 찾아가 이렇게 간하지요.

 

십상시들이 매관매직을 일삼고 있어 공이 있어도 대접 받지 못합니다,

 

십상시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하고.

 

이런 충언이 이미 십상시들에게 매료된 영제에게 들릴리는 만무하였으나,

 

마침 십상시들이 제 발 저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건 분명히 공을 세우고도 상을 못 받은 놈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뇌물을 안 바친 놈들이라 해도,

 

보잘 것 없는 자리는 하나씩 쥐어 줘야겠다,

 

하고 십상시들이 의견을 모으게 됩니다.

 

덕분에 현덕이 꿰차게 된 자리가 바로,

 

안희현령,

 

인 것입니다.

 

이렇게 현덕의 벼슬길이 열렸습니다,

 

씁쓸하게...

안희현령

주전과 현덕 일행은 장보를, 

황보 숭과 조조는 장각, 장량을 공격합니다.

성과는 황보 숭 쪽에서 먼저 나서,

장량은 잡혀 죽습니다만,

장각은 잡히지 않았지요.

왜?

이미 병으로 죽어버렸으니깐요.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고 세력을 잡았지만,

병에 걸린 자신만은 어찌할 수 없었던 걸까요.

생뚱맞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는 말이 떠올랐답니다.

이어서 장보도 부하의 배신으로 목을 잃고 맙니다.

이것으로 황건적 소탕!!

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비대한 조직은,

억지로 머리를 떼어내면,

오히려 분별을 잃어,

몸통이 머리인양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

간부급이던 조홍, 한충, 손중이 남은 황건적 무리를 이끌고 발악을 합니다.

"조홍"이라는 이름에 눈이 커진 그대,

놀라지 마세요.

조조의 심복이 되는 조홍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무튼,

황건적 잔당 소탕을 위해 조정에서는 주전을 파견하고,

현덕 일행도 합류하여 활약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현덕의 무용담을 정리해 봅시다.

그 동안 현덕은,

도망치는 장보의 팔뚝을 활로 맞추기도 하고,

도망치는 손중의 명치를 활로 쏘아 죽이기도 했답니다.

황건적 잔당들을 포위하기에 이르자,

"일부러 도망갈 길을 터주어 도망치는 것을 쫓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는, 

아주 평범한,

하지만 어쨌거나 매우 실용적인,

계책을 제안하여 채택되기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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