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은 찾아온 노숙을 보고 대뜸 한마디 던집니다.

"공이 주유에게 고자질을 해서 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소!"

뜨끔! 게다가 공명은 노숙에게 이전에도 여러 번 자기 속을 내보이면서 주유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숙이 누굽니까? 오나라의 고위관료 아닙니까? 그런 노숙이 공명의 속셈이라는 고급정보를 오나라 총사령관 주유에게 고자질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다 까발렸지요. 공명의 신신당부를 별 망설임 없이 저버려온 노숙으로서는 심리적으로 공명에게 상당한 빚을 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빚이 생기면 불쾌감을 느끼게 되어 갚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이 보통이랍니다(그래도 돈 함부로 빌려주지 마세요...내 손을 떠난 돈을 다시 돌려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마음 독하게 먹으셔야 해요.보이스피싱 같은 거 보세요...). 이 때 공명이 비로소 부탁을 합니다!

"이번에는 공이 나를 좀 도와주어야겠소!"

노숙은 이미 마음의 빚에 눌려 죽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보면 공명을 여러 번 사지로 밀어넣으려고 한 셈 아닙니까? 당연히 공명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주유는 공명 제거의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지능적으로 접근하죠. 물위에서 싸울 때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를 공명에게 묻습니다. 공명은 활이 제격이라고 답하죠. 주유가 몰라서 물었을까요? 아닙니다. 주유는 뼛속까지 오나라 사람인데 그걸 모를리가 없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회란 음식이 어떤 맛이냐고 물은 격입니다. 공명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를 뻔히 예상하고서 미끼로 던진 질문이죠. 

그런데 공명은 대뜸 미끼를 뭅니다. 10만발의 화살을 열흘내에 마련하라는 주유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죠.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군사의 일인데 그렇게 지체해서야 되겠습니까? 사흘이면 넉넉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서는 공명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한편 노숙은 주유가 공명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임을 빤히 알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다시 한 번 노숙의 궁금병이 도집니다. 공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거죠. 이에 노숙은 공명을 찾게 됩니다.

노숙이 공명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까요. 

공명은 오나라에 머물며 주유에게 조언을 해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주유는-조금 성급한 감이 있지만-벌써 위나라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죠. 적벽에서 승리한다면 유비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 때 공명이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무리한 요구를 하여 공명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주유의 첫 요구는 공명에게 유비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조조가 양초(군량미와 말먹이풀)을 쌓아둔 곳을 공격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요구는 공명에게 나가 싸워 지고 오라! 는 것과 다름 없었죠. 조조는 보급을 잘 지켜 전쟁에 이겨온 사람인만큼 양초를 쌓아둔 곳에 대한 방비는 언제나 철저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명은 흔쾌히 그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죠. 노숙은 걱정 반 궁금 반으로 공명에게 묻죠. 정말 가실거냐고. 공명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대답합니다.

"주유는 물에서의 싸움에서만 익숙할 뿐 뭍에서의 싸움에는 익숙하지 못하니 내가 나서야하지 않겠소?"

노숙은 공명의 이 말을 고스란히 주유에게 일러바칩니다. 다혈질인 주유는 벌컥 화를 내면서 자신이 직접 조조의 보급처를 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노라고 선언하죠. 그러면서도 공명에게 이끌고 가라고 제안한 병력의 열 배를 데리고 가겠다고 한 건 좀 우습군요^^;

그러자 비로소 공명은 자신의 참 뜻을 내비치죠. 조조의 보급처에 대한 방비는 탄탄할 것이니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자고. 지금은 자신을 몰아붙일 때가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칠 때라고...이에 주유는 조조의 보급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죠. 어쩌면 공명의 그 말이 불쾌하면서도(자신의 음모가 훤히 드러나버린 셈이니까요) 한편으론 무척 반가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노숙의 고자질이 공명을 살린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