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기분 괜찮은데요? 감사합니다. 

참 신기하죠? 1,000보다, 10,000보다 적은데 유독 100이라는 숫자를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콩닥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100페이지 넘어갈 때가 제일 짜릿한 것 같고(물론 분량에 집착하는 독서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100일이 제일 설레지 않습니까?

암튼 앞으로도 화이팅해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드디어 끝입니다! 이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기왕 노숙의 총명함을 재조명해 보았는데, 아예 노숙이 영악했다는 데까지 나아가 볼까요? 

적벽대전 당시 주유는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조의 100만 대군(삼국지에서는 실은 83만이었는데 허장성세를 부린 것이라고 합니다)을 당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주유는 심지어 산에 올라가 조조의 대규모 선단이 잘 짜여져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울화통이 터져 혼절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공명과의 피튀기는 심리전이라니...공명도 보통사람이 아니지요? 진 안팎으로 주유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주유와 공명 사이의 소리 없는 음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노숙은 주유가 공명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유를 만류하지 않았던 것은 은근히 공명의 힘을 빌어 주유를 제거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다고 해서 노숙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있습니다. 노숙은 주유의 자리를 이을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노숙이 주유의 신임을 얻었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렸지요? 그렇다면 노숙도 욕심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견으로는, 노숙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거라고 봅니다. 삼국지 전반에 나타나는 노숙은 어눌하면 어눌했지 교활한 인물은 아닙니다. 참 충성된 사람입니다. 오의 문관들이 조조에게 투항하라고 건의할 때 투항하면 모든 것을 잃게된다고 하여 손권을 일깨우고 힘이 되어 준 사람이 바로 노숙입니다. 주유가 공명을 당해낼 인물이 못된다는 점을 파악했을 수는 있지만, 이를 만류할 만한 힘이 없어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삼국지의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거의 100여년 동안 끊임없이 전쟁이 계속된 치열한 시기였죠. 그런 시기를 살아가면서 이름을 떨친 사람에 대해서는, 그래도 보통 사람은 뛰어넘는 자질이 있었음을 짐작해보게 되는거죠. 노숙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런 주유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호소해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죠. 주유가 생각을 고쳐먹으려면 반복적인 건의를 뛰어넘는 뭔가 극적인 계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공명도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니 뭔가 대책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노숙은 바로 그 점을 알고 있었죠. 주유가 음모를 꾸밀때마다 노숙이 번번이 공명을 찾은 것은 단순히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직 유비의 세력이 쇠약한 때에 공명이 죽어버리면 천하삼분론도 물 건너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그것은 적어도 노숙에게 있어서는, 적벽대전은 어떻게 승리로 이끌더라도, 이후에 있을 위와의 전면전에서 오가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주유는 적벽대전을 통해 위와 촉 모두의 세력을 꺾어버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죠).

노숙이 공명을 찾아가니 과연 공명은 해법을 귀띔해 줍니다. 공명은 노숙을 "이용한다"고 생각했겠죠. 노숙은 공명에게 "이용당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거구요. 노숙은 처음에는 공명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주유의 자존심에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다음에는 주유가 의도한 방해의 전략-일꾼과 물자를 대어주지 않는다-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법으로 공명을 돕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공명을 살린다면 주유가 공명으로부터 위협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노숙으로부터 상관의 권위를 짓밟는 몹쓸 인간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죠. 오히려 중요한 정보를 성실하게 캐어 알려주는 유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