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가후에게 마초 일행을 물리칠 계책을 묻습니다. 가후는 많은 말을 하지 않죠. 말이 많다고 해서 정교한 논리가 자연스레 갖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몇 마디면 충분한 것입니다. 가후의 계책은 단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죠.

이. 간. 질.

조조도 참 똑똑한 인물이죠? 괜히 간웅-교활한 영웅-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조조도 이간질을 생각하고 확인하는 차원에서 가후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완전 이심전심, 염화미소죠.

여러분, 이간질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명이 위나라를 치기 위해 두번째로 출사했을 때 실패한 이유도 사마의의 이간질 때문이었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죠. 빚진 이야기가 꽤나 많아진 것 같군요...--;

아무튼 해가 지고 해가 떠서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마초군과 조조군은 서로 마주 보고서 진을 치죠. 조조는 정상회담을 제안합니다. 마초군에서는 한수가 나왔죠(마초의 아버지 마등의 친구, 다시 말해 마초의 숙부뻘이니 말입니다). 둘은 각자의 군사를 등진 채, "담소"를 나눕니다. 싱겁기는...

서로 할 이야기는 있냐구요? 실은 한수와 조조는 구면으로 생각됩니다. 예전에 동탁을 치기 위해 동맹군(사실 빛좋은 개살구같은 조직이었죠--;)이 일어났었죠? 동맹군은 조조의 제안으로 결집된 것으로, 당시 마등이 이에 참여하였으니 한수도 참여했을 겁니다. 그 때 이런 저런 교분을 쌓았겠죠. 

아무튼 정상회담은 이렇게 잡담으로 끝이 납니다...

조조는 일찍이 가후의 언변에 반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장수가 처음 조조에게 투항한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조조는 가후에게 자신의 참모가 될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가후는 거절하죠.

"저는 잘못된 계책을 내어 천하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장수는 이런 저를  받아준 사람입니다. 그런 장수를 어떻게 배신하겠습니까?"

조조는 그 말을 납득하고 가후를 유혹하는 것을 포기하죠. 이런 걸 보면 가후는 도리를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혹시 뒤로 돌아서서는 쓴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르지만ㅋ). 

삼국지를 보면 사신으로 갔다가 상대 군주를 매혹시켜 고무신을 꺾어 신는 사례가 꽤 나옵니다. 장수와 조조의 세력은 당시 비교할 바가 아니었는데, 그래도 도리 때문에 조조의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한 가후는 용기 있는 사람이죠.

조조는 가후를 참모로 맞이한 덕을 보았을까요? 덕을 톡톡히 봅니다. 늘 골치거리이던 양주(서늘할 량자를 씁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이죠)의 마초, 한수 세력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계책을 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마초의 아버지인 마등과 한수가 변방에서 조조의 두통거리가 되어 왔죠. 마등이 조조의 계략에 말려 잡혀 죽은 다음에는 마초가 마등의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마초는 이름처럼(macho?ㅋ) 상당히 와일드한 인물이죠. 흉노(한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세력이죠)와 맞닿은 지역에서 끊임없는 전투를 경험했을 것이니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삼국지에는 얼굴이 백옥같고 입술에 윤이 나는 "꽃미남"으로 묘사되어 있답니다.

아무튼, 드디어 가후 얍삽의 결정판을 볼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후는 곧 이각에게서 달아나고 마는데, 이각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가후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도와서 패권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이각에게 가후라는 사람은 큰 의미가 없었나 봅니다(차라리 가후를 죽여 가후의 귀신에게 빌지언정 말이죠--;). 가후는 죽을 뻔한 당일 바로 도망치는 기동성을 보여줍니다. 헌제의 속은 많이 쓰렸겠죠.

그러다가 장수의 참모가 된 가후는 장수와 형주(중국의 한 가운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자사 유표 사이의 연합을 추진하는 등 조조를 괴롭히다 결국 장수를 권하여 조조에게 투항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 직후 조조의 난봉질(!) 때문에 조조를 격파할 계책을 다시 낸다는 점은 앞에서 보았죠.

이런 장수도 결국에는 조조에게 투항하게 됩니다. 언뜻 보아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요? 어떻게 아들과 조카를 죽인 원수를 받아 줍니까? 그러나 당시는 조조와 원소가 황하를 사이에 두고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기막힌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예전 일이 두려워 원소에게 붙으려고 하는 장수를 설득해서 조조에게 붙도록 한 것은 당근 가후였죠. 
이로써 가후는 조조의 참모가 됩니다. 

한편 조조도 장수의 얼굴에 똥칠한 것은 미안했는지 한 마디 하죠.
"옛날에 내가 조금 잘못한 것은 잊도록 하오."

솔직히 조그만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조조가 치른 희생도 컸으니까 셈셈하면 작아 보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