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는 조조에게 편지를 쓸 것을 권하죠. 독특한 편지를 말입니다. 정성껏 편지를 쓴 다음, 정작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초로 문지르고(초가 요즘 쓰는 화이트 같은 역할을 했던거죠) 덧쓰도록 합니다. 

한수는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를 읽었죠. 마초가 들어옵니다. 자기도 편지를 보고 싶다고 말하죠. 편지를 봅니다. 

.......

숙성되던 의심이 드디어 부글 부글 끓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연애편지를 쓴다고 생각해봅시다. 드디어 막 사랑을 고백하려는 순간 삑사리가 납니다. 빼뚜른 글씨로 고백하고 싶진 않겠지요? 그리고 이쁜 편지지에 흉한 수정액 덩어리를 남기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왠만하면 새로 쓰겠지요? 

(근데 요새도 편지 쓰시는 분이 있나요? 갑자기 궁금...--;)

조조의 편지도 마찬가집니다. 외교상의 문서인만큼 그 형식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상식에 맞죠. 더구나 나쁘게 말하면 의심이 많고, 좋게 말하면 꼼꼼한 조조라면 더욱 더 편지를 쓸 때 신중을 기할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물론 조조는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마초의 생각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아마도 지난 번 담소사건으로 인해 숙성되던 의심때문에 한수가 마등과 함께 이각 무리를 치려다 죽을 뻔 했다는 점 등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이겠죠.

네, 마초는 한수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 조조가 보낸 깨끗한 편지를 초로 뭉개고서 엉뚱한 내용을 적어놓았다고 거의 확신을 하게 됩니다. 마초와 한수 사이의 파국이 거의 다가온 것 같군요.
 

유비가 황건적을 무찌른 공로로 처음 하사받은 직은 정주 중산군 안희현위입니다. 평원현령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인 것 같습니다. 

안희현(편안할 안자에 기쁠 희자를 씁니다), 이름은 참 좋은데 유비에겐 이래 저래 가슴아픈 곳입니다. 공로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직이죠, 뇌물을 요구하는 감사관까지 오죠, 결국 화가 난 장비가 감사관을 두들겨 패서 그나마 두고 물러나야 하죠...

조정에서는 유비 일행에 대한 수배령을 내리지만 용케 숨어다니다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로 사면받아 평원현령(태위)이 되는 것입니다.

조조는 진영으로 돌아와 가후에게 묻습니다. 

"내 뜻을 알겠느뇨?"

가후는 당연히 알죠. 오히려 그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면서 또 다른 계책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마초는 조조의 뜻을 전혀 파악하지 못합니다! 때론 눈 앞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 자신의 "상상력"이죠. 눈 앞의 적이 실은 의미없는 행동을 한 것인데, 나는 상상력-신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기도 합니다만-을 풀(full)가동해 그 행동에 의미를 실어주고, 결국 내가 상대방의 행동에 실어준 묵직한 무게로 인해 압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특히 수험생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있죠...--; 내가 모르는 문제만 나오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에 시달리시는 분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걱정하느니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식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마초는 한수에게 물어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한수는 옛날 이야기만 했다고 하죠. 마초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생사를 걸고 대결을 하고 있는데 한가하게 옛날 이야기만 했다고? 그래도 숙부뻘이라 대놓고 덤비기는 그렇죠. 한수가 나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마초의 의심은 조금씩 조금씩 숙성되어 갑니다. 

조조는 바로 이런 점을 노린 것입니다. 이제는 조조의 얍삽함을 거의 완성시킬 가후의 계책에 대해 살펴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