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기서 왕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 하필이면 초선에게서 고백을 받은 그 때에 미인계를 쓸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

솔직히 고백 아닌가요? 고민하는 당신의 모습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다...너무 흔해 밋밋한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아끼는 마음을 절절히 전달하는 표현 아닌가요? 

대개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을  품게 되죠. 만약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있다면 그 고마움이 연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혹시 왕윤은 초선의 고백을 받고서 정이 통한 것은 아닐까요(고우영씨는 왕윤과 초선의 관계를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묘사했죠)? 사실 당시의 사회질서 하에서 왕윤이 집에 데리고 있는 계집종을 취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왠만한 대감들은 모두 첩을 거느리고 있더군요(저도 그러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초선의 품에 안겨 힘든 현실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순간적이나마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듯하게 살아야한다는 압박이 왕윤을 다시 압도했겠죠? 쓰러뜨려야만 하는 두 인물-동탁과 여포-의 얼굴도 떠올랐겠죠? 이런 생각들이 정.반.합.의 변증법에 따라 절묘하게 결합하는 순간, 왕윤의 미인계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선은 삼국지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미녀죠? 여기에 초선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담당한 묵직한 비중까지 고려하면 삼국지를 통틀어 초선만한 여걸도 없지 싶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소명의식에 따라  동탁 타도에 나선 것이라기보다는, 왕윤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인해 왕윤이 부탁한 역을 맡게 되었기에 초선을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개척한 여성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왕윤은 초선의 출발점이자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튼 초선은 왕윤을 걱정하며 한숨을 쉬다 왕윤에게 딱! 걸립니다. 왕윤은 나이 어린 초선이(16세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그렇게 한숨쉬는 것이 요망스럽다며 야단을 치죠. 그러자 초선은 한숨을 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대답하죠.

"대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신대 천한 년이 감히 그 이유를 물어볼 수 없어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왕윤의 머리에서는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야단을 치던 대감마님이 갑자기 여종을 방안으로 모시고 눈물로 호소를 하기 시작하죠. 

"초선아, 한나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다오..."

로 시작해 왕윤이 풀어놓은 계책은 이것입니다. 동탁도 여포도 호색한이니-심지어 동탁은 매일 궁녀를 붙들고 잤다죠-초선이 둘을 이간질시키면 둘이 자멸해 버릴 것 같다는거죠. 초선은 왕윤의 청을 수락합니다. 아마도 사랑의 힘?

동탁은 정말 뚱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게 늙은 여우같은 교활함도 있습니다. 리더십이 없을 뿐 실은 머리가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어느 정도 머리가 있으니까 과거에 급제해서 서량자사도 했겠죠?

동탁은 조조를 등지고 누웠지만 조조의 움직임을 환히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동탁이 누운 침상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어 조조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죠.

이 때, 여포까지 방으로 들이닥칩니다. 큰일났습니다. 어쩝니까!!

...하지만 조조도 보통내기가 아니죠.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갑자기 무릎을 꿇은 조조는,

"실은 저에게 좋은 보검이 한 자루 들어와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라고 합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갑니다. 덕분에 살았으니 잘된거죠, 뭐. 동탁의 기분이 한껏 업되어 있는 틈을 타서 조조는 주신 말을 한 번 타보겠다면서 밖으로 나갑니다. 당연히 튀어야죠!! 툐툐툐~ 

하지만 조조의 앞에는 여러 불쾌한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궁에게 잡히고, 진궁과 뜻이 맞아 동행하다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 노인을 오해로 죽이게 되고, 이에 실망한 진궁에게 자다가 죽을 뻔 합니다. 

왕윤 이야기를 한다고 해 놓고서 조조 이야기만 하고 있군요. 자, 이제 다시 왕윤으로 돌아갑시다!!

왕윤은 조조가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속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늘 한숨짓고 찡그린 왕윤을 보면서 홀로 마음 졸이던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초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