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현덕이 서서와 만나고 헤어지는 대목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왕윤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면 서서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습니다. 

서서히 글감이 떨어져가는 것 같아 조금은 초조한 감이 있었는데, 서서 생각이 나서 다행입니다! 삼국지를 읽은지 어언 이번이 4번째인 것 같은데, 방통이 막 죽어 공명이 서촉으로 떠나려는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여포는 꽤나 멋진 남자란 말이죠, 적어도 육체적으로는요...

동탁과 여포의, 서로 까놓고 뭐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갈등이 서서히 고조되어 가던 중, 드디어 "그날"이 옵니다...!

그날도 여포는 초선이 때문에 몸이 달아있었죠. 동탁은 그날 궁에서 일이 좀 바빴을 뿐이고! 여포는 덕분에 좀 한가했을 뿐이고! 초선이는 동탁의 집에 있었을 뿐이고!

여포는 참지 못하고 적토마를 몰고서 주인없는 동탁의 집으로 향합니다. 

동탁이 여포에게 적토마를 줄 때는 이런 용도로 쓰일 줄은 몰랐겠죠?

동탁의 집에 도착한 여포는 초선을 찾습니다. 초선은 여포에게 뒷뜰에 있는 정자에서 만나자고 하죠. 정자 둘레의 시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 여포가 기다리는 정자에, 마침내 초선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초선은 여포에게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하기 시작합니다.

"소녀는 장군을 모시게 되어 너무 기뻤답니다. 그런데 뜻밖에 동승상이 나타나 소녀의 몸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지금 장군을 뵈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소녀 이 몸을 던져 다음 세상에서나 장군과의 사랑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면서 초선은 정자 밖 시내로 몸을 던지려 합니다! 이럴 때 잡지 않을 남자가 어디있겠습니까? 더구나 자신이 꼭 갖고 싶은 여인이 뛰어내리겠다고 하는데 말입니다...여포는 초선을 끌어안고서 좋은 말로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승상께서는 어제 데려오신 젊은 여인과 함께 침소에 드신 후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않으셨습니다...않으셨습니다...않으셨습니다...여포의 귓가에선 시비의 말꼬리가 메아리쳤을 것 같습니다. "꽈광" 하는 천둥소리도 울렸을 것 같군요. 

초선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역시 젊음이 좋군요. 여포를 발견하고선 견딜 수 없이 괴롭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니,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걸 보는 여포의 마음은 찢어지죠...

한편 동탁도 잠에서 깨어납니다. 여포를 발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동탁이 천진난만하게 묻죠.

"별일 없느냐?"

"예"

별일이 없긴 왜 별일이 없습니까? 사나이 가슴이 찢어지는데...동탁에게 대낮에 별 볼 일을 만들어주고 싶은데...하지만 상대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 든든한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그를 아무리 무용이 뛰어난 여포라고 해서 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여자를 빼았겼지만 참을 수 밖에요. 그렇다면 여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여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초선이 엿보기.

전혀 못 보는 것보단 그래도 낫지요...--;

동탁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여포는 초선을 엿봅니다. 엿본다기보다는(이건 넘본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으니깐요) 훔쳐본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군요. 초선도 은근히 여포에게 추파를 던지죠. 정말 좋아서 그랬을까요? 그건 모르죠. 왕윤만큼은 아니더라도 동탁보다는 좋지 않았을까요? 초선이 일부러 그랬는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탁은 기분이 나쁩니다. 불쾌합니다.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데 경계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