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9월에 처음 발표되자마자 평단과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엠마 도노휴의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발생했었던 충격적인 감금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보통 끔찍한 범죄를 소재로 다룬 소설들은 자극적인 묘사에 큰 비중을 두지만, 도노휴는 이 작품에서 범죄 자체보다는 피해자의 심리와 삶에 초점을 맞춰서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은 방 안에서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잭은 방에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습니다. 7년 전에 잭의 엄마를 올드 닉이 납치해서 뒷마당에 위치한 헛간의 작은 방에 감금했고, 그 후에 태어난 다섯 살 소년 잭에게는 오직 엄마와 작은 방만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런 잭에게 바깥세상을 가르쳐 주는 것은 방 천장에 난 작은 창문과 선명하지 않은 텔레비전 채널 세 개, 그리고 동화책 다섯 권뿐입니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좁은 방이지만 잭에게 있어서 그 방은 하루 하루의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가 있는 안락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잭이 성장하면서 방은 점점 좁아져만 갑니다. 언제까지나 좁은 방 안에서 잭을 키울 수는 없었던 엄마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서 대담한 탈출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방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그토록 꿈에 그려왔던 바깥세상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게 모자를 반기지는 않습니다.

 

엠마 도노휴의 [룸]은 좁은 방에서 태어난 다섯 살 소년 잭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어린 아이의 단순하지만 솔직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선을 통해서 아이와 엄마가 처한 상황들과 심리를 생생하면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 세상과 마주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잭과 엄마의 이야기가 선사해준 진한 여운은 아주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을것 같습니다.

일본 경찰 미스터리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사사키 조는 60년이라는 세월을 이어온 삼대 경찰 가문의 삶과 그들이 파헤치는 사건을 깊이있게 다룬 [경관의 피]를 통해서 처음 조우했습니다. 투박하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와 무게감 있으면서 흡인력 넘치는 그의 문장은 단숨에 제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는 과거 자신의 실수로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 정신적인 외상을 입고 현재 휴직 중인 형사 센도 타카시를 주인공으로, 지인들의 부탁을 받은 센도가 홋카이도의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가는 이야기를 여섯 편의 단편 속에 담아낸 연작 단편집입니다.

 

센도는 휴직 중인 상태라서 수사권을 주장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형사 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에 접근해 혼란에 빠진 현지 경찰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도움을 주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회복해 나가는 센도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전게됩니다.

 

감탄을 자아내는 트릭이나 엄청나게 놀라운 반전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사키 조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문장이 그려내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홋카이도의 황량한 풍경과,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깊숙하게 파고들며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 [폐허에 바라다]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감정적으로 다가오면서 진하고 깊은 여운을 아주 오랫동안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메 마나부라는 작가의 이름은 저에게 있어서 무척 생소한데 일본에서는 전통과 판타지, 그리고 청춘을 산뜻하게 녹여낸 신비롭고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양대 교토 작가로서 불리운다고 합니다. 마키메 마나부의 데뷔작 [가모가와 호루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그의 작품인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와 그 세계관이 서로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목부터 독특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교토를 배경으로, 호루모라는 수수께끼의 경기와 얽히게 되는 교토대학의 가난한 고학생인 아베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호루모는 4개 대학의 동아리가 매년 개최하며 특별한 의식과 훈련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요괴를 부릴 수가 있는 능력을 얻은 10명으로 구성된 팀이 요괴들을 이용해 상대편의 요괴들과 싸워서 승부를 가리는 경기입니다.

 

주인공 아베는 가난한 대학 신입생으로 이성의 코에 집착하는 꽤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끼니를 때우기 위해 참석한 동아리 설명회에서 사와라 교코라는 코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그만 첫 눈에 반하게 되어서 청룡회라는 수상쩍은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베는 천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수수께끼의 경기인 호루모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되고, 어떤 중요한 계약을 맺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키메 마나부의 [가모가와 호루모]는 요괴를 부려서 대결하는 경기인 호루모라는 판타지와 사랑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로맨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독특한 설정과 유머와 재치가 담겨있는 문장은 만족스러운 재미를 선사합니다. 무엇보다 파릇파릇한 청춘의 생기넘치는 발랄함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