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만약 세상에 똑같은 종교와 똑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간다면.. 너무나 심심하고 따분할겁니다. 개인마다 종교와 인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 진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을 읽고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저 멀리 영국에서 건너온 제이디 스미스의 너무나 유쾌하고 인상적인 데뷔작 [하얀 이빨]은 런던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윌레스덴 그린에 살고있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종이 접는 직업을 가진 영국인 아치 존스와 사촌의 식당에서 웨이터를 하는 벵골 출신의 사마드 익발이 그 가족들의 가장이에요.

아치 존스와 사마드 익발은 각자 자신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부인들, 자메이카 이주민 출신 클라라와 벵골의 유서깊은 가문 출신인 알사나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아갑니다. 아이리 존스와 쌍둥이 마기드, 밀라트 익발이 바로 그네들의 2세들이죠. 존스와 익발가의 사람들은 각자의 문제와 갈등을 안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1권과 2권에서 중심적인 인물을 데려와서 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참,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없습니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이 만나는 등장 인물 모두가 그냥 주인공이에요.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가족의 인물들이 그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아주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도 주인공이라 할만큼 인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아치 존스와 클라라 보든의 딸인 아이리 존스와 사마드 익발과 클라라의 쌍둥이 아들들인 첫째 마기드와 둘째 밀라트 익발, 그리고 샬펜 주의를 외치는 마커스 샬펜과 조이스 샬펜의 첫째인 조슈아 샬펜, 여기에 클라라 익발의 불명예스러운 조카인 니나와 그녀의 애인, 아이리 존스의 할머니이자 클라라의 어머니인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호텐스 보든..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인물들은 다 적어봤습니다. 이들의 종교와 피부색은 서로 다릅니다. 또한 각자가 끌어안고 살아가는 가슴속의 응어리들도 서로 다르고요. 작가 제이디 스미스는 그러한 세대와 민족, 그리고 종교와 정체성을 어우르는 캐릭터들을 생동감 그려내었고 그들의 갈등을 심오하게, 때로는 즐겁거나 아주 유쾌하게 드러냅니다.

꼭 인종과 종교의 갈등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다루라는 법은 없기에 개성넘치는 다양한 사람을 그려내며 이들의 주변과 삶을 맛깔나는 문체와 언어로 표현한 글들이 너무나 좋았답니다. 특히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샬펜가의 사람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치넘치는 특유의 언어로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하얀 이빨]의 사람들과 만나서 참 즐거웠습니다. :-)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그의 작품이다. 사사키 조라는 이름이 무척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꽤 걸출한 작가로서 평가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특히나 일본 경찰 미스터리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소설 [경관의 피]는 그런 사사키 조가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작품으로 경찰 가문의 삶과 그들이 풀어나가는 사건들을 깊이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심장들로 가득했던 전쟁 직후의 격동적인 시대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6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녹여낸 이 작품에서 독자들이 만나는 주인공들은 모두 안조 가문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경찰관이다. 1대 안조 세이지부터 2대 안조 다미오, 그리고 3대 안조 가즈야까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손자까지 모두 삼대에 걸쳐 경시청의 경찰관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삼대 경찰관들의 이야기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세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안조 가문의 남자들이다. 작가는 일인칭 시점으로 그들 삶의 자취와 그들이 겪게되는 사건들, 그리고 사건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또한 그들의 가족과 동료까지.. 이 모든것들을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듯이 각각의 생명과 개성을 부여하여 생동감있고 살아숨쉬도록 창조해냈다.

이 작품은 시대의 이면에 경찰의 삶을 투영시키고 또한 그들의 삶에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그리며 세월을 이야기 하고있다. 1대 세이지가 수사한 두건의 살인과 그 자신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그의 아들인 2대 다미오가 파헤치고 다시 3대인 가즈야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서 가문의 미스터리를 마침내 풀어내는데, 삼대에 걸친 긴 수사 과정에서 작가는 이들이 경찰로서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겪게되는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아픔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경찰의 본분과 선과 악,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것인지. 작가는 끝내 독자들에게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사건을 수사하고 경찰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일족의 명예로운 기억과 아픔을 끌어안으며 다시 제복을 입고 경찰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그려갈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삼대에 걸친 경찰들의 그러한 삶을 마주하게 되면서 저절로 진실을 알게될것이다.  

사사키 조의 강렬하고 흡인력 넘치는 문장으로 쓰여진 이 작품에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작품의 뼈대를 구성하는 경찰이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작가는 경찰의 이야기속에 일본의 시대상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했다. 도쿄 우에노와 야나카, 덴노지초에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활과 그들의 애환, 가난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하며 살아가는 소박한이들의 조용하고 아련한 추억들도 함께 담아내고 있는것이다.

두건의 살인과 한건의 의문사. 경찰로서의 명예와 긍지를 품에 안고서 그 사건들을 파헤치는 세명의 대를 이은 경찰관들. 사사키 조는 이 모든것을 60년의 세월을 흐르며 이어져온 경관의 피 만큼이나 진하고 흡인력있게 담아내었다. [경관의 피]는 경찰의 이야기이자 가족의 이야기다. 작가가 혼신을 다해서 작품에 담아낸 삼대 경찰관의 이야기는 결코 잊을수없는 뜨거운 시간들을 선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