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그린 작품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매우 특이한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 카즈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전설의 판타지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철장폐원]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1990년에 연재를 시작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과 출판사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연재가 중단되었다가, 지난 2009년에 일본 신서관을 통해서 전4권의 애장판으로 다시 발간되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인간과 마물, 이 모든 것들이 대립하며 서로 공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세계. 수천만의 마군이 인간 세상을 덮쳐서 피로 물든 공포만이 가득했던 6백년 전의 대재해 '마그나 디제스터' 당시에 봉인된, 인간 세상을 배반하고 마물들의 왕이 된 이사 멜이 그를 추종하는 아홉 명의 마물에 의해서 부활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하자의 마을이 마물들에게 습격당하고 하자의 쌍둥이 누나인 리이스가 그들에게 납치당합니다.

 

아홉 명의 마물들에게 일족이 살해당하고 누나마저 빼앗긴 하자는 리이스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 길을 떠나고 우연히 하즈레 마법사 젤 소미나를 만납니다. 하자는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어보이는 젤 소미나와 함께 철장폐원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자는 최후의 고대 왕국 요나 에리두의 천인들과 마물들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카즈미의 [철장폐원]은 정말 오랜만에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한 작품입니다. 인간과 마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그린 판타지 만화를 읽어본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릅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 작품의 방대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세계로 다가왔습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잘 살아있는 작화도 무척 아름답고 근사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저마다의 개성과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작가의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정교하고 탄탄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성과 치밀한 복선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면서 아주 만족스러운 재미를 선사합니다. [철장폐원]은 완결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는데, 오랜 시간 동안 공들인 작가의 열정과 노고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카즈미의 다른 작품들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길 바랍니다.

따뜻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그려낸 [심야식당]으로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아베 야로가 불혹의 나이로 쇼가쿠칸 신인 대상을 수상한 데뷔작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는 9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나카마치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을 안고 그 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기분 좋게 들려준다.

 

겉모습은 단아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주인이 손님들의 귀를 정성스럽게 파주고, 손님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고민을 털어내고 상처를 치유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가게를 나선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귀를 파주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무척 야릇한 경험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상당히 관능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을 소박하면서 정감 있게 담아낸 작화는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차분하게 전개되는 따뜻한 이야기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소중함과 여유로움이 담겨져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행운이자 불운이었던 만화라고 언급한 후기를 읽어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어쩌면 단행본이 나오기까지 걸렸다고 하는 10년 이상의 그 시간이 세월과 함께 작가의 진하고 깊은 연륜으로 쌓아져서 고스란히 작품 속으로 녹아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으로 여왕이 통치하는 초강대국인 페이니아에 격하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기의 기둥이 나타난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법의 원천인 블루에어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술사들은 더이상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페이니아는 주변 연합국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지만, 유일하게 마법을 사용하고 엄청난 마력을 소유한 대마법사 빈센트 자파가 홀연히 등장해서 페이니아를 위기에서 구한다.

 

음유시인 머스테인은 다크에어가 시작된 날에 우연히 기억을 잃고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한 청년을 발견하고 거둔다. 그로부터 3년 뒤, 머스테인은 TEAM들의 미심쩍은 움직임을 파악하고 그들이 빈센트 자파의 의뢰로 자신이 거두었던 문제의 청년인 멜로즈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머스테인은 멜로즈를 보호하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팀을 구성하고 여전사 셰난도, 그리고 숲의 종족과 함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국내에서 [웨스턴 샷건]으로 잘 알려진 박민서의 신작으로 현재 코믹챔프에서 연재 중인 [다크에어]는 마법의 대기가 사라진 다크에어의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운명을 따라 잃어버린 기억과 진실을 찾기 위해서 동료들과 모험을 떠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작품이다. 흔하디 흔한 판타지 컨셉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보려 노력 중이라는 작가의 말이 부디 진실이기를 바라며 작품을 읽었지만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여장을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인 멜로즈와 흑발의 미중년으로 주인공에게 멘토같은 존재인 머스테인, 여전사 셰난도와 린덴바움 일족인 미스티 벨과 숲의 종족으로 신원 미상의 바오밥 일족 등의 캐릭터 설정과 세계관은 아주 독특하거나 새롭지는 않지만 꽤 흥미롭다. 전개도 빠른편이라 지루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강렬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부디 다음권에서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멋진 이야기가 펼쳐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