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 출간을 기다렸다. 이유는 이 소설이 바로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인 영화 [A SINGLE MAN]의 원작이었기 때문이다. 구찌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그의 인생에 대단한 영감을 주었고, 마침내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선택하여 세상에 공개한 영화의 원작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영화에 대한 호평을 듣고 근사한 예고편을 보면서 원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싱글맨]은 불의의 사고로 오랫동안 함께 지낸 애인을 잃은 어느 대학교수의 하루를 섬세하고 또한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지라는 이름을 지닌 한 남자의 육체가 아침을 맞이하고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그가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은 짐. 그런데 현재 그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짐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짐을 먼저 떠나보낸 조지의 상실감은 너무나 고통스럽게 그의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상실감속에서도 조지의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간다. 친구 샬럿의 전화를 받고, 그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해변의 바에서 제자인 케니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된다. 그렇게 조지라는 이름의 육체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간다.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1964년에 [싱글맨]을 썼다고 한다. 처음 출간되고 벌써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난 이 작품을 쓸 당시 이셔우드의 나이는 60세였단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지의 나이는 58세다. 조지와 작가의 비슷한 나이,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비슷한 관점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조지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이셔우드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대학교수.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에게 찾아온 깊고 고통스러운 상실감. 이제는 사라진 어떤 열정에 대한 향수.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 그의 눈길을 끄는 젊고 생동감 넘치는 제자에 대한 감정.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 조지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의 육체가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을 작가 이셔우드는 진솔하고 묵직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스며드는 문장을 통해서 담아내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는데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 [싱글맨]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톰 포드가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선보인 영화 [A SINGLE MAN]은 200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인 조지역을 맡은 콜린 퍼스에게 베니스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퀴어 라이온상을 수상했다. 매튜 굿이 짐, 줄리안 무어가 친구 샬럿, 니콜라스 홀트는 제자 케니로 나온다. 톰 포드가 이셔우드의 묵직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과연 어떤 영상으로 스크린에 담아냈을지 너무나 기대된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으로 출간된 [나를 보내지 마]는 일본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여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국내에는 맨 부커상을 수상한 그의 세번째 장편 [남아 있는 나날]로 그를 알게된 독자들이 아마도 꽤 많을 것이다. 지난 2005년에 선보여 맨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었던 [나를 보내지 마]는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타임의 '100대 영문 소설'과 '2005년 최고의 소설'로서 선정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서른한 살의 여성인 캐시 H.다. 11년 이상을 간병사로서 일해온 그녀가 1990년대 후반 영국의 어느 시골에 위치한, 평범한 기숙 학교같은 모습의 '헤일셤'에서 보낸 지난날들을 회상하는 내용을 3부작의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1부에서는 헤일셤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는데 주로 진취적이고 강한 성격의 루스와 생각이 깊고 통찰력이 뛰어난 토미와의 일들을 묵묵히 회상한다.

2부에서는 열 여섯 살이 되어 헤일셤을 떠나고 새로 정착한, 좀더 자유로웠던 코티지에서 보낸 2년동안의 삶을 회상한다. 그곳에서 캐시는 먼저 생활하던 선임들인 크리시와 로드니들을 만난다. 성에 대한 자신의 욕망에 고민하는 캐시는 루스와 잦은 언쟁을 벌이게된다. 루스의 근원자를 찾아 떠난 노퍼크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캐시는 마침내 코티지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간병사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마지막 3부에서 캐시는 간병사로서 이미 기증자가된 루스와 토미와 다시 재회한다. 회복 센터에서 그들을 만나고 헤일셤에서의 추억들을 함께 떠올리는 그들. 루스의 어떤 고백을 듣고 캐시와 토미는 그들의 앞날을 위해서 마담을 찾아간다. 그렇게 서서히.. 캐시의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서 나아간다. 

기증자, 근원자, 그리고 클론. 앞에 언급한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아마 조금은 생소할 것이다. 왠지 SF 소설에서나 등장할것 같은 단어들. 허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바로 그 단어들이 상당히 중요하게 나온다. 바로 이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소재가 복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 캐시와 그녀의 친구 루스, 토미는 모두가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이다. 
 
캐시와 루스, 그리고 토미는 복제 인간이지만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바 없는 존재다.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고, 똑같이 사랑을 한다. 언젠가 기증을 하게 될꺼라는 자신들의 앞날을 묵묵히 받아들이지만, 자신들의 근원자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어떤 희망을 꿈꾸기도 하는 그들. 작가 이시구로는 주인공 캐시를 통해서 그런 복제 인간들의 불행한 운명과 서글픈 삶을 깊은 성찰과 함께 안정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마크 로마넥이 연출을 맡아 폭스 서치라이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2010년에 공개될 영화 [Never Let Me Go]에서 캐리 멀리건이 주인공 캐시를 맡았고, 키라 나이틀리가 루스, 그리고 앤드류 가필드는 토미, 샬롯 램플링이 에밀리 선생님, 샐리 호킨스는 루시 선생님을 연기한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캐스팅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함께 나오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원제인 '네버 렛 미 고'는 캐시가 헤일셤에서 즐겨 들었던 주디 브릿지 워터의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세 번째 트랙의 곡과 제목이 같다. 복제 인간의 슬픈 운명을 지니고 애틋한 사랑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주인공 캐시. 소설의 마지막에서 토미를 떠나보내고 노퍼크를 찾아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그 노래의 후렴구가 떠올랐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캐시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어떤 연민과 슬픔을 그 노래가 말하는것 같았다. oh baby baby, Never Let Me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