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아니면 수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하는가? 만약 앞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아니요'거나 그 반대로 '예'라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너무 복잡해서 그냥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수학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을 읽는데는 전혀 문제가 안되니까 말이다.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에서 국내 최고 작가들과 평론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를 얻으면서 당당히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선영의 첫 장편작인 [천 년의 침묵]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크로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적 음모에 대한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흡인력 넘치고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한 남자의 시체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시체의 주인공은 현자로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인 피타고라스의 제자, 바로 디오도로스였다. 그의 동생 아리스톤은 형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려고 귀족 의원직까지 사임하면서 피타고라스의 학파에 입문한다. 히파소스의 도움을 얻으며 점점 형의 죽음에 대한 단서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 뒤에 숨겨진 놀라운 음모와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책을 펴서 읽게되는 첫 문장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천 년의 침묵]의 프롤로그에서 만난 첫 문장은 왠지 모르게 묘한 두근거림을 안겨주었는데, 처음 느낀 그 두근거림은 이 책을 도저히 중간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어코 마지막 에필로그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계속 이어졌으니 말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을 등장시켜 놀랄만큼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묘사로 그려낸 이야기, 거기에 작가의 정성어린 노력의 결과가 빚어낸 세세한 역사적인 고증,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를 사로잡은 흡인력 넘치는 문장과 매력적인 전개는 오랜만에 한국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보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수학이라는 학문과는 담을 쌓으며 살아 왔지만 [천 년의 침묵]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 담이 허물어져 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보편적인 수학 공식이라는 소재를 재구성한 역사속의 이야기로 끌어와서 단순한 재미와 흥미가 전부가 아니라, 끝을 모르는 인간의 무서운 욕망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곁들인 놀라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런 근사한 데뷔작을 선보인 이선영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몹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