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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아이들, 양석일, 타이, 사카모토준지, 스트리트칠드런, 문학동네

음식을 먹는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본능적인 욕구중의 하나이다. 나 자신은 그러한 음식에 대한 욕구가 무척 강한 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탐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남들과 비교하면 입맛도 유별나게 까다로운편에 속한다. 하지만 정작 직접 음식을 만드는것에는 자신도 없고 잘 못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음식이라는 존재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TV에서 방영하는 맛집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며 음식에 관련된 영화나 책을 일부러 찾아서 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큰 관심과 함께 애착을 보이는것은 바로 음식을 소재로 다루는 다양한 만화들이다. 나에게 음식만화의 재미를 처음으로 알려준 [아빠는 요리사]부터 [신 중화일미], [맛의 달인], [서양골동양과자점], [어시장 삼대째], [여자의 식탁], [심부인의 요리사], [심야식당]과 가장 최근에 읽은 [현미 선생의 도시락]까지. 모두 나에게 만화와 음식이라는 조합에서 오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만화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나게된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는 조금 색다르지만 아주 묘한 만족감을 나에게 느끼게 해준 음식만화였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근사한 제목으로 나의 눈길을 먼저 사로잡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노가시라 고로라는 남자이다. 작품에서 정확한 그의 나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강 짐작하자면 약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고로는 외국에서 잡화를 수입하는 무역업자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지는 않는데 아마도 그건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기 몸 하나면 충분하다'라는 그의 사고와 연관이 있는것 같다. 어떤 한가지에 얽매이는것을 꺼려하는, 소위 말해서 자유로운 성격을 지닌 주인공 고로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술은 전혀 못하지만 단것은 무척 좋아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고로가 확실히 미식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별나게 까다롭거나 일부러 소문난 맛집만을 고집해서 찾아다니는것은 결코 아니었다. 영업을 하다 배가 고파지면 그냥 주변에 위치한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이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하고 소박함이 느껴지는 장소들에서 만난 음식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주인공 고로가 도쿄와 오사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찾게된 다양한 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이야기를 담은 18편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이라는 부제가 달린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명 만화가인 다니구치 지로가, 같은 만화가지만 스토리 작가로서도 그 재능을 알린 구스미 마사유키와 함께 공동작업한 작품이다. 그동안 [신들의 봉우리], [동토의 여행자], [시튼], [개를 기르다]등에서 방대한 세계관을 깊이있게 담아내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였기에, 그가 음식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이 내게는 상당히 의외로 다가왔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상을 매우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을 말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이 작품은 그동안 내가 읽어온 다른 음식만화들과는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다루던 기존의 만화들과는 다르게 어떤 절제의 미가 느껴졌는데, 그것은 매우 조용하고 소박하게 다가오지만 그속에서 그려지는 음식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고 깊이 있는 성찰마저도 진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음식만화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군침도는 풍경들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고로가 처음 만나는 돼지고기 볶음을 시작으로 기치조지의 회전초밥, 아사쿠사의 마메칸, 아카바네의 장어덮밥, 다카사키시의 야키만주, 아키하바라의 돈까스 샌드위치등을 비롯해 밤참으로 먹은 편의점의 많은 음식들과 야구장에서 땀을 흘리며 먹은 비엔나 소시지 카레까지. 왠지 모를 따뜻한 정겨움이 느껴지는 다양한 음식들과 조우하고 그 음식들의 맛을 진정으로 음미하면서 맛있게 먹는 고로의 모습을 생생한 필력으로 풍부하게 그려낸 지로의 그림 덕분에 나의 식탐은 더욱 커져 갔지만 그와 더불어 배부른 포만감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일본의 음식들과 장소들이 주로 작품속에 등장하기에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들도 종종 눈에 띄었지만, 그 단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일러주는 친절한 해설이 장면들의 하단에 따로 나와 있어서 작품을 읽으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친환경 재생종이로 제작된 책이라서 그런지 무게감이 상당히 가벼워 편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참, 작품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식당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본에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 현지의 리포터가 직접 그 식당들을 찾아 다니면서 얻은 정보를 소개한 부록도 유용할것 같다.

 

작품에서 주인공 고로는 식당뿐만이 아니라 백화점 옥상, 기차, 공원등의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음식들을 먹는다. 그저 단순히 음식을 입으로 먹는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장소에서 전해지는 주변의 공기까지도 천천히 음식과 함께 음미하면서 먹는것이다. 그렇기에 고로는 현장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의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고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사막의 선인장처럼 쓸쓸함을 안고 살아가며 고독하게 밥을 먹지만 그러면 어떠하리. 우연히 만난 맛있는 음식에서 느끼는 소중한 인연으로 잠시나마 그런 고독함을 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오늘도 어디선가 인생이 주는 오묘한 맛을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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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야기로다 -

 

스티븐 킹은 그 누구보다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의 주요 장기라고 할 수 있는 호러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1967년 작가 데뷔 후 거의 20여 년 간 무려 500여 편이 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킹의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할리우드에서도 큰 환영을 받았고 많은 작품들이 다시 스크린으로 옮겨져서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중에서도 [캐리], [샤이닝], [미저리], [그린 마일], [돌로레스 클레이본], [미스트]등의 영화들은 상당한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팬들의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다.

 

 

황금가지 밀리언셀러 클럽의 기념적인 첫번째 작품으로 재출간된 스티븐 킹의 중편집 [사계]는 각각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로 구분되는 킹의 중편소설 네 편을 나누어서 모두 2권에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과 '우등생'까지, 총 두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이미 제목에서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먼저 언급한 중편은 바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고 우등생은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원작이다. 특히 프랭크 다라본트가 연출한 쇼생크 탈출은 킹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많은 영화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영화팬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이다. 

 

희망의 봄이라는 부제가 달린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부인과 정부를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명높은 쇼생크 감옥에 수감된 앤디 듀프레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젊은 은행가 앤디는 1948년 쇼생크로 초대 받는데, 온갖 폭력과 비리의 더러움이 들끓는 그 행복한 감옥안에서 묵묵하게 고통을 견디며 2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낸다. 1975년에 앤디는 마침내 희망이라는 이름의 근사한 호랑이와 조우한다. 책속에서 앤디의 이야기는 레드라는 이름을 지닌 다른 수감자의 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들려진다.

 

레드는 첫 만남부터 앤디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동안 만난 수감자들과는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지닌 앤디. 그는 감옥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폭력에 대항하고 죄수보다 더 악독한 간수들에게 전혀 기죽지 않으며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앤디에게는 작은 록 해머와 석영조각들, 그리고 리타 헤이워드의 관능적인 모습이 담겨있는 포스터와 도서관 사서로서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앤디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하나뿐인 시간이라는 마술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것은 바로 그 희망때문이었다. 5월의 어느 봄에 그렇게 희망은 앤디와 레드에게 찾아온다.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서 듀샌더와 토드를 연기한 이언 맥켈런과 브래드 렌프로.

 

타락의 여름이라는 부제가 달린 [우등생]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13살난 소년 토드 보던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마을에 살고있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전범을 발견하고 그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낡은 전쟁 잡지에서 인생 최고의 관심사를 발견한 토드는 나치 전범으로 파틴의 흡혈귀라고 불리우던 76세의 쿠르트 듀샌더를 찾아간다. 토드는 당황한 듀샌더에게 당돌한 협박을 하며 오싹오싹한 강제수용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소년과 노인의 이야기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을 향해서 달려간다.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우등생 토드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단념하지 않고 계속 키워 나갔다. 류머티즘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노인 듀샌더는 그런 토드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과거의 공포와 다시 마주친다. 소년은 잔인함이 숨어있는 미소를 보내고 노인은 그런 소년의 이름을 단한번도 부르지 않는다. 1974년 7월의 어느 여름에 시작된 그들의 악연은 4년이라는 시간동안 계속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안과 악몽으로 뒤섞여있는 공포를 선사해주고 결국에 그것은 다시 그들에게 절망으로 되돌아 온다.

 

매서운 겨울의 추위가 지나가면 싱그러운 생명들이 힘찬 발길질을 하면서 새롭게 솟아나는 신선한 봄이 찾아온다. 그리고 봄이 지나면 한껏 자라난 그 생명들이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빛을 서로가 차지하겠다고 아우성 치는 강렬한 여름이 우리를 반겨준다. 스티븐 킹은 그런 생명의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봄과 여름이라는 따뜻한 계절을 배경으로 각각 희망과 절망이라는 서로 상반된 존재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모든것을 빼앗겨 버리고 지옥같은 감옥에서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의 작은 희망을 결코 포지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살아 숨쉬는 생생한 문장들로 들려주며 희망에 대한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그릇된 희망으로 시작된 욕망을 지니고 있던 작은 악마는 숨어있던 진짜 악마와 조우하여 악몽같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점점 타락한 괴물이 되어, 결국 절망으로 세워진 파멸의 왕국으로 끌려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우등생]에서 그야말로 오싹오싹하게 그려내고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과 [우등생]은 프랭크 다라본트와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맡아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 두편의 영화는 각각 걸작과 평작이라는 상반된 평을 받았는데 아쉽게도 나는 두 영화를 모두 감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다라본트의 영화보다는 왠지 모르게 싱어의 영화에 더욱 관심이 간다. 참고로 [사계]의 가을과 겨울편에는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 [스탠 바이 미]와 [호흡법]이 함께 실려있다. 과연 이야기의 제왕은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어떤 압도적인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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