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또한 너무나도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려 하고 자신에 대해 내려지는 평가들을 두려워 하지만, 남을 평가하는 것은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행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계속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약한 내면과 자신이 저지르는 우행을 감추기 위해서 힘겨운 노력을 하고 위선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면을 쓰고 명예로운 성공과 행복한 인생으로 완벽하게 위장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실체를 알아내는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비채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에는 바로 그러한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감추려고 가면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도쿄의 한적한곳에 자리한 고급 주택가에서 발생한 잔혹한 일가족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의 피해자들과 안면이 있는 여러 지인들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전개하고 있다.

 

와세다 출신으로 유명한 부동산 회사에 다니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편, 세이신 출신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온화하게 자라난 빼어난 미모를 지닌 부인, 거기에 귀엽고 반듯한 두 명의 자녀들까지. 다코 일가는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행복한 가족이었다. 그런 다코 일가가 갑자기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사건은 미궁속에 빠진다. 1년이 흐르고 이웃 아줌마, 부인과 친했던 동네 학부모, 남편의 회사 동료, 대학 동창과 동아리 후배등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점점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을 절대로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감쪽같이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누쿠이 도쿠로는 그런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위선으로 가득한 나약하고 위태로운 내면을 제135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었던 이 작품에서 아주 심도있게 파헤치면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 우행이라는 나약한 본성에 사로잡혀서 발버둥 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생동감 넘치는 인터뷰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행이라는 버거운 짐을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쿠이 도쿠로가 이 작품을 전개해가는 인터뷰 형식의 글을 읽으면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는데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왠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성격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더군다나 도쿠로가 선사하는 문장도 고백과 마찬가지로 정말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각 장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의 모놀로그를 삽입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는데 굳이 반전이나 트릭에 집착할 필요가 없도록 상당히 정교하고 절묘하게 짜여진 미스터리를 선사해준다.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고, 아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표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꽤 마음에 든다. 스스로가 진실과 거짓말에 대해서 정확하고 뚜렷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글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모두 우행을 저질렀고, 그것을 읽는 독자도 어느새 우행에 빠져든다. 이 작품을 쓴 작가 역시 우행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어리석은 행동을 감추려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상 앞으로도 [우행록]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게속 쓰여 질것이다.



우행록, 누쿠이도쿠로, 가면, 미스터리, 추리, 인터뷰, 고백, 블랙앤화이트, 비채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 그동안 그와 다시 만나게될 시간만을 얼마나 목빠지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와 처음 만난지 벌써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아마도 다들 그토록 내가 애를 태우면서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그 남자가 과연 누구일지 꽤 궁금할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돌아온 그 남자를 여러분들께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그 남자의 이름은 펠릭스 캐스터, 가장 중요한 그의 직업은 다름 아닌 퇴마사다.
 
마이크 캐리가 창조한 매력적인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의 제2권인 [영혼의 목걸이]가 마침내 출간되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시리즈의 제1권 [돌아온 퇴마사]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 가난한 퇴마사의 귀환을 나처럼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전권에서 보닝턴 기록보존소의 유령 사건을 멋지게 해결했던 우리의 캐스터는 여전히 주머니 사정이 별로다. 그래서 경찰의 사건에 살짝 개입하여 그들을 도와주는 부업을 시작했는데, 그에게 유일하게 일을 맡긴 콜드우드 형사 반장은 역시나 몹시 까다로워서 별다른 환대는 받지 못한다.
 
1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캐스터는 유령의 상태와 느낌에 맞춰가며 틴 휘슬이라고 불리는 악기를 사용해 음이 연결된 선율을 연주하며 그들을 퇴치한다. 전보다 퇴마 능력이 향상됐는데 상황의 조건만 잘 맞는다면 틴 휘슬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도 유령을 목격하도록 만들 수가 있게 되었다. 위트 넘치고 매력적인 캐스터는 선명한 초록색 스위톤의 새로운 틴 휘슬과 더욱 방대해진 사건들과 함께 우리곁에 돌아왔다.
 
친구 라피는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키고, 게다가 이미 죽은 딸인 애비의 유령이 데니스 피스라는 퇴마사에게 유괴를 당했으니 찾아달라는 토링턴 부부의 기묘한 의뢰까지 받게 된다. 캐스터는 컴퓨터에 능통하지만 편집증은 더욱 심해진 좀비 친구 니키에게 사건에 대한 조사를 부탁한다. 1권에 나온 매력적인 서큐버스 줄리엣은 자신만의 퇴마일을 시작하고 성당의 사건을 맡아 캐스터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캐스터는 피스를 추적하던 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늑대인간들의 습격을 받게된다. 그렇게 사건들은 갈수록 거대한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두번째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 [영혼의 목걸이]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방대하고 복잡해진 사건들을 파헤치는 캐스터와 조우한다. 실종된 유령 소녀를 찾는일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은 깊이 파고들수록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고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예기치 못한 다른 사건들의 꼬리를 물게된다. 여기에서 작가의 탁월한 이야기 전개 능력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주 속도감 넘치게 전개 하면서 거기에 생생하고 풍부한 캐릭터들과 빈틈없이 탄탄하게 짜여진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내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스케일이 더욱 커진 만큼 좀더 다양해진 캐릭터와 소재들이 등장한다. 특히 희생 제물 사육과 관련된 이야기와 이번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악질 퇴마사 데니스 피스와 강령술사 멜러니, 사탄주의자 안톤 팡케와 귈리엄 신부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라피의 몸에 갇혀있는 지옥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악한 데몬인 아스모데우스도 나름의 방식으로 캐스터를 괴롭히는데, 그중에서도 이미 은퇴를 했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그대로인 서큐버스 줄리엣의 존재는 유독 돋보였으며 작게나마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한가지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잠깐 언급된 작가의 이야에 따르면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의 영화화 이야기가 현재 진행중이라고 한다. 마이크 캐리는 주인공인 캐스터역에  패디 콘시딘과 클라이브 오웬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줄리엣을 맡을 여배우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하기사 전지전능한 아름다움으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매혹시키는 줄리엣은 캐스팅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캐스터역은 콜린 파렐이나 마이클 파스벤더, 줄리엣역은 안젤리나 졸리가 잘 어울릴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편보다 재밌는 속편은 없다라고들 하지만 펠릭스 캐스터에게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펠릭스 캐스터와 함께 마이크 캐리의 위트넘치는 문장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어둠의 존재들이 도사리는 런던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매혹적인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좀더 빠른 시일 안에 틴 휘슬을 불면서 유령을 퇴치하는 이 매력적이고 재치있는 퇴마사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당신의 곁에 머물고 있는 영혼에게 나의 안부를 전하고 싶다.

영혼의목걸이, 펠릭스캐스터, 마이크캐리, 틴휘슬, 유령, 영혼, 서큐버스, 노블마인

아시하라 히나코 컬렉션의 첫번째 작품으로 새롭게 출간된 [약속]은 아시하라 히나코의 단편들을 모은 작품으로 모두 3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참고로 이번 작품에 담겨있는 3편의 단편들은 아주 오래된 작가의 초기 작품이 아니라 잡지 연재 사이에 특집으로 진행했던 것이라고 한다. 각 단편들은 주변에 상처받기 쉽고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지닌 외로운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만나게 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약속 - 약간은 고집쟁이지만 실은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15살 사사키 아사코. 어느 날, 학교 옥상에서 한 남자애와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상대는 바로 배구부의 귀여운 남자애인 7반의 혼고 카즈시. 그 우연한 만남은 계속된 인연으로 이어지고 혼고는 점점 아사코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오게 된다.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의 어떤 약속에 대한 이야기들이 애틋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뻐꾸기의 딸 - 언제나 길 잃은 아이 같은 눈빛을 하는 17살 외톨이 소녀 이부키. 그녀에게 친구는 오직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나오뿐이다. 애정에 굶주려 있어 사랑할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이부키는 우연히 비디오 가게에서 한 남자와 조우하고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그 남자는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전체적으로 서글프고 쓸쓸한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이부키를 그저 바라만 보던 나오의 약간 놀라운 정체가 드러난다.

 

 

60days - 수수하고 음침하면서 게다가 어딘가 좀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인 마도카. 남들과 사귀는것에 서툴고 혼자 있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그녀는 학교 운동회 다음달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제 전학까지 앞으로 60일이 남았다. 친구가 없고 책을 좋아하는 마도카는 밝고 따뜻한 마에다와 함께 운동회 실행위원으로 선정되고, 우연히 서점에서 휠체어를 탄 마에다의 어린 여동생 치에를 만나 친해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마도카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친구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독특한 책 취향을 가진 외로운 소녀가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과정들이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만화를 읽으면서 나에게 맞는 작가를 만나게 되는것은 그리 흔한일은 아니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나와 맞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작가는 바로 아시하라 히나코였다! 별다른 기대없이 읽었던 [피스]에서 상당히 강한 작가의 내공에 살짝 놀라움을 느꼈었는데, 이번에 단편집 [약속]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아시하라 히나코의 훌륭한 재능에 감탄하면서 그녀의 팬이 되기로 굳게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만화에 담겨있는 그림도 무척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탄탄하게 구성된 이야기속에서 주인공들의 심리를 무척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설레게 하는것이 정말로 좋았다. 벌써부터 아시하라 히나코 컬렉션의 두번째 작품이 무척 기다려 진다.



약속, 아시하라히나코, 단편, 뻐꾸기의딸, 60days, ユビキリ, 피스, 대원씨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