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아마도 한번쯤은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마코토는 그의 대표작들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국내의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자, 여기에서 잠시 어떤 고백을 하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꽤 많이 들어 봤지만 정작 실제로 감상한 그의 작품은 하나도 없다.

 

신카이 마코토의 팬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고백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려는 작품은 다행히도 그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바로 국내에서 지난 2007년 6월에 극장에서 개봉했었던 마코토의 최근작 '초속 5센티미터'를 원작으로 마코토 자신이 직접 쓴 소설인 [초속 5센티미터]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2007년 3월에 시부야 시네마라이즈에서 처음 원작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마코토가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것도 바로 작품이 개봉되었던 그때와 비슷한 시기였다고 한다. 


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 제1화 벚꽃초를 시작으로 코스모너트와 마지막 초속 5센티미터까지, 모두 3편의 단편적인 옴니버스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의 중심에는 그와 그녀, 토노 타카키와 후지하라 아카리가 자리하고 있다. 열한 살 동갑내기로 처음 만나서 서로를 좋아하게된 소년과 소녀는 중학교 진학때문에 아쉬운 헤어짐을 갖는다. 편지로 연락을 계속 하고 그가 그녀를 찾아가 잊지 못할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그와 그녀는 서로의 기억속에서 점점 흐려지게 된다. 


소년과 소녀가 어른으로 자라나면서 그들의 설레였던 첫사랑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어가기란 그리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인 타카키와 아카리는 어린 시절에 만나 서로를 좋아하며 기쁨과 순수함과 절실함으로 가득 찬, 결코 잊을 수 없는 첫키스를 나눈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런 주인공들의 아련한 첫사랑과 성장, 서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낸 이야기가 상당히 섬세한 시선과 예쁘고 정성들여 빚어낸 아름다운 문장들을 통해서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 실려있는 3편의 이야기들은 서로가 다른 배경과 초점으로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제2화 코스모너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요구르페를 자주 마시는 고등학생 서핑 소녀인 스미다 카나에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에서 스미다는 타카키를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짝사랑 한다. 스스로가 파도를 제대로 탈 수 있게 되면 그에게 고백하려고 마음 먹지만 마음을 전하는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짝사랑에 힘들어하며 아파하는 스미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특히 로켓 발사가 등장하는 장면이 담고 있는 분위기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신카이 마코토는 작가 후기에서 영화와 소설이 상호보완적이 된 부분이나 영화와는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든 부분도 있기에 영화뒤에 소설을, 혹은 소설 뒤에 영화를 본다면 더욱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소설의 제목인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 이파리가 떨어지는 속도를 의미하는데 작품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근사한 제목같다. 영상과 문장이 보여주는 표현은 서로 다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마코토의 원작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다. 책을 덮은 후에 아련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벚꽃 이파리가 떨어지는 초속 5센티미터는 아주 잠깐이지만 이 작품이 선사해준 여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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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월남전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웠던 북베트남이 독립 쟁취를 위해서 먼저 프랑스, 다음에는 미국의 비호를 받던 남베트남을 상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치뤘던 전쟁이다. 전쟁이란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의 덧없는 욕망으로 시작되어 결국 고통스런 비극으로 종결된다. 베트남 전쟁 역시 마찬가지인데, 국내에서 '세계의 끝과 마법사'로 유명한 니시지마 다이스케의 신작 [디엔비엔푸]는 바로 그 미국과 베트남 간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얼룩진 베트남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의 첫번째 챕터 끝과 시작에 등장하는 매우 인상적인 모놀로그를 잠시 소개하겠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숨 막힐 듯한 느억 맘 냄새도, 맛없는 야전식량도. 신선 같은 호치민도, 거짓말쟁이 웨스트 모얼랜드도. 베트남이 북과 남으로 분단된 이유도, 미국이 설마 졌다는 것도. 인생의 의미와 우정과 사랑, 필사적으로 사는 것과 훌쩍 죽어버리는 것도. 나 자신의 일도, 그녀의 일도. 1965년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모른다'.

 

1965년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모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 사람이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인 미육군 기관지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의 카메라맨인 일본계 미국인 소년 히카루 미나미와 베트콩의 최강 소녀 게릴라인 공주님이다. 소년은 소녀와 굉장한 첫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만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테러 사건에 휘말려 야보 대령이 이끄는 미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제5그룹으로 이동되고, 베트콩을 퇴치하는 그들의 극비 임무에 동행하게 된다.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며 여전히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모른다.

 

니시지마 다이스케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정말인지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다. 그런데 그런 귀여운 그림으로 광기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베트남 전쟁을 그린다. 죽지않고 살아 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죽고 죽이는 무서운 전장속에서 귀여운 소녀가 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난도질 한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작가의 묘사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귀여운 그림체로 묘사되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들은 상당히 극한 대비를 불러일으키면서 더할 나위 없는 쾌감과 잊지 못할 어떤 강렬함들을 선사해준다. 



작가는 이렇게 전쟁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는데, 장면 하나 하나가 무척 탄탄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1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북폭으로 생겨난 커다란 크레이터를 마치 달 표면 같다고 표현한 장면이었다. 가슴아픈 전쟁이 남긴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이 나에게는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도 각자 인상적인 배경과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흥미를 더해준다. 공주님을 가르치는 할머니, 미국의 오폭으로 부모와 한쪽 다리를 잃게된 불량소년 바오와 야무진 여동생 뉴, 거대한 야보 대령과 그린베레의 대장으로 들개들을 이끄는 미소년 팀 로렌스. 그가 이끄는 오직 전쟁터에서만 살 수 있는 들개들의 멤버인 조용한 네이티브 아메리칸 리틀, 신비한 요가 마스터 단냐워드, 조국을 버린 호랑이 박맹호.

 

폭탄의 위저드 콜리플라워 영감, 백두건의 해체꾼 민스, 잠잘줄을 모르는 스나이퍼 인섬니아, 아메리칸 닌자 자자마루까지. 이들 모두는 전쟁이라는 어쩔 수 없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가련하고 외로운 존재들이다. 비록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인들 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그중에서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온 박맹호의 이야기는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전쟁속에서 피어난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마치 환상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바로 전쟁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소년과 누구보다 전쟁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냉혹한 킬러 소녀를 주인공으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전쟁이라는 비참한 상황속에서 모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존재가 바로 모순이기 때문에 작가는 공포와는 반대인 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반드시 들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꽤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의 제목인 [디엔비엔푸]는 북베트남의 지명이라고 하는데 주인공인 최강의 히로인 공주님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디엔비엔푸는 2006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연재가 시작되었고 작가는 파리 휴전 협정으로 미군이 베트남 영토에서 철수하는 1973년의 이야기까지 그려낼 예정이라고 한다. 소녀와 소년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나갈지 기대된다. 아픔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긴 여정에 함께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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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마리의 [시부야 마루야마 거리 / 떠돌이 고로]는 역에서부터 방사형으로 길이 뻗어 있는 번화가인 시부야의, 도겐자카 앞의 러브호텔이 가득 모여 있는 마루야마 거리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네 편의 잔잔한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전작인 [시부야 마루야마 거리 / 벚꽃]에 이어서 거의 3년만에 출간된 작품이다.

 

떠돌이 고로 - 아버지의 재혼에 방황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노숙 중인 아라레를 닮은 고등학교 2학년생 오가와 카오루는 마루야마 공원에서 머리를 잘라주는 전직 카리스마 미용사 MASA였던 야마다 고로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것을 계기로 고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착한 카오루는 그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한다. 공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고로는 참 멋진것 같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런 모습들이 왠지 부럽게 느껴진다.

 

떠돌이 고로 2 returns - 시부야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16살의 유이. 우연히 고로와 만난 타잔을 동경하는 소녀는 사실 너무나도 큰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혼자라는 두려움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부러 바보인척 연기하는 유이를 위해서 이번에도 고로가 멋지게 머리를 잘라주며 마음을 보듬어 준다. 타잔과 제인이 서로 끌리는 것은 바로 둘 다 외톨이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외로움은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다.

 

바람 맞은 날 - 영화를 함께 보자던 남자 친구는 그녀를 바람 맞힌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비까지 내리고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달콤하고 푹신푹신한 베이비 카스텔라를 든 귀여운 남자애가 다가온다.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두 사람. 그녀는 남친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시부야 역 북쪽 출구에 위치한,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기다리는 마음을 지닌 하치 동상이 등장하여서 주인공을 살며시 위로해 준다.

 

따뜻한 날을 기다리며 - 표지에 나온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남자 친구가 약속을 제대로 못지켜서 화가 난 주인공이 나오고 공원을 좋아하는 하치가 다시 출연해 주인공의 마음을 가라 앉혀 준다. 언제나 제멋대로인 남친에게 그녀는 너무 화가 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남친은 무척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치는 그녀에게 남친이 떠나면서 남긴 소중한 말을 전해준다. 전체적으로 슬프고 애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오카자키 마리의 [시부야 마루야마 거리] 시리즈는 시부야 마루야마 거리를 무대로 각각의 에피소드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 우연한 만남과 아쉬운 헤어짐을 잔잔하게 풀어낸 옴니버스 작품이다. 작가의 그림체는 살짝 화려함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은근히 잔잔한 이야기들과 잘 어울린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가 신선하거나, 혹은 조금은 산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마루야마 거리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지니고 있는 여운을 주는 느낌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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