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드넓은 대륙과 수많은 인구와 함께 오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깊고 오래된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문화속에는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다양한 고전들이 자리하고 있다. 삼국지와 서유기, 홍루몽과 수호전이 대표적인 중국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읽혀지고 있는데 그러한 고전뿐만 아니라 김용의 무협 소설들도 상당히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오랜 문화를지닌 중국에도 과연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이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갑자기 떠올랐다.

 

물론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미스터리한 기담이나 추리물들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의 중국 문학에서는 영국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처럼 현재까지도 그런 장르의 소설들이 꾸준하게 발표되면서 독자들의 인기를 얻는 모습을 발견 하기가 매우 힘든것 같다. 과연 중국이라는 넓은 대륙에서 미스터리와 추리를 중요한 소재로서 다루고 있는 소설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일까?

 

뜻밖에도 중국의 미스터리와 추리물을 다시 재조명한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라, 다름 아닌 서양인 로베르트 반 홀릭이었다. 외교관으로 동양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반 홀릭은 우연한 기회에 실존했던 당나라 재상인 디런지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마침내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을 집필하게 된다. 중국의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탄생된 그 작품이 바로 명판관 디런지에의 활약을 담은 추리 소설 시리즈이다.

 

황금가지 밀리언셀러 클럽의 108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로베르트 반 훌릭의 [황금 살인자]는 그런 작가의 노력과 애정이 깊이 스며있는 명판관 디 공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디런지에, 일명 디 공이 서른셋의 나이에 처음 지방 수령으로 임명되어서 산둥성의 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펑라이로 부임한 633년 여름을 배경으로 밀실에서 독살당한 전임 수령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는 디 공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관아의 서재에서 독살당한 전임 수령의 뒤를 이어서 자진 부임한 디 공은 충실한 심복인 홍량과 믿음직한 두 수하 마중과 차오타이와 함께 미궁속으로 빠진 왕 수령의 사건을 조사하는데, 사건의 조사에 착수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연속해서 기묘한 실종 사건과 또 다른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마을에는 식인 호랑이가 출몰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리고 디 공은 그 사건들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것을 감지하게 된다.

 

로베르트 반 홀릭은 비록 중국에서 태어난 본토 사람이 아닌 서양 사람이지만, 중국의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오랜 연구를 통해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추리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중국의 역사에서 실존했던 영웅 디런지에와 관련된 각종 사건 기록들과 판결 등을 참고하였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작품에는 당시의 중국 생활상과 문화들이 상당히 뛰어난 묘사로서 그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선에는 어떤 편견이 있을 수도 있는데 반 홀릭은 그런점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정직한 문장속에 담아내었다. 특히 서양의 늑대 인간 전설을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 인간 이야기에 투영시킨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명판관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디 공은 그중에서도 특히 매력적인 추리물의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반 홀릭이 재탄생 시킨 디 공은 명확하고 논리적인 사건 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판관으로서의 위엄을 어김없이 발휘하는데 거기에 자신보다 멋진 수염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거나, 망령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추리에 고민하는등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부각시키고 있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친밀하고 편안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한 디 공의 심복인 개성 넘치는 마중과 차오타이의 활약들도 이야기에 상당한 재미를 더해준다.

 

작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또한 미스터리와 추리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꽤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아주 기발한 추리를 선보이는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 홀릭의 흡인력 넘치고 탁월한 문장들은 독자들을 순식간에 음침한 펑라이로 데려가주는 근사한 경험을 제공해준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그린 분위기 있는 삽화와 지도, 도면이 함께 실려 있는데 생생함을 더하면서 사건의 이해를 도와준다. 참고로 명판관 디 공 시리즈는 국내에 쇠못, 쇠종, 호수 살인자까지 출간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로베르트 반 훌릭의 [황금 살인자]에서 처음 조우한 인간적인 매력과 위엄을 동시에 지닌 명판관 디 공이 해결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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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언어는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묘하고도 낯선 존재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만나온 시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하자면 시를 피해왔다고 해야될까?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를 싫어하는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아직은 시가 자리하고 있는 시들의 세계와 어떤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시라는 존재를 멀리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단순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그런 시가 존재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예전처럼 시를 만나는것에 약간의 망설임과 걱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과감히 용기를 내어 그 문턱을 넘어섰다. 처음의 우려와는 다르게 기피해왔던 시와 다시 한번 조우한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뿌듯하면서 값지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마종기의 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를 읽으면서 얻을 수가 있었다.
 
마종기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는 시인이 문단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0년 동안 발표했었던 시 가운데 모두 50편의 시들을 직접 고르고, 그 시에 관련된 이야기와 분위기에 대한 글을 함께 수록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서문에서 조국에게 오래 다져온 사랑과 그리움으로 이 책을 삼가 바친다고 적고 있는데 타지에서 생활하는 시인의 조국에 대한 마음들이 본문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작 에세이에는 시에 대한 어렵고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시인이 시를 썼던 당시의 생각과 주변 상황들이 편안하게 담겨 있어서 시를 기피하는 나에게도 아주 포근하고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의사이기도 한 시인이 처음으로 해부용 시체를 마주하고 느꼈던 감정들이 담겨 있는 시와, 어린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누이동생에게 바치는 연가, 알래스카와 캄보디아같은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조우한 만남등 시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라는 존재와 소소하지만 다양한 경험들이 시라는 언어속에 아름답게 스며있다.
 
시인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는 우정을 다룬 '우화의 강', 그리고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시와 아들에게 전하는 내용을 담은 '외로운 아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나에게 감정적인 슬픔을 안겨다준 '겨울 묘지'는 먼 타국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동생에 대한 끝없는 애정의 마음을 담고 있는데 종결 어미마저 없앤 그 절절한 심정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라는 언어는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마종기 시인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매우 아름다운 일러스트들과 함께 담겨있는 마음 어딘가를 포근하면서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는 시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도 언젠가는 시가 지니고 있는 그윽한 향기와 감미로운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날들이 오겠지라는 흐믓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시를 읽어준 그 사람의 가슴에 남아주기를 바란다는 시인의 바램이 부디 오랫동안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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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막걸리가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 제품들이 출시 되고 막걸리 전문점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며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막걸리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개인적으로 술이란 녀석과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막걸리의 인기를 아주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는 없지만 막걸리를 소재로 하는 만화까지 등장한것을 보면 꽤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북폴리오에서 출간된 [대작]은 바로 그 막걸리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화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개망나니같은 성질을 지닌 백수건달 술꾼 안태호다. 동네에서 맛이 좋기로 소문난 막걸리를 만드는 정많은 할머니와 전주에서 살고 있는 태호는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낸다. 우연히 친구 석배의 포장마차에서 할머니가 만든 막걸리를 팔게되고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것을 계기로 천년의 맛 축제에 할머니의 막걸리를 가지고 참가하게 된다. 바램대로 많은 주목을 받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태호를 찾아오게 된다.

 

국내 최초의 막걸리 만화라는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타이틀을 내세운 [대작]은 오랫동안 전해온 서민들의 음료이자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한 막걸리라는 술을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세워두고 있다. 1권의 내용에서는 비록 큰 갈등이나 주인공의 활약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꽤 만족스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전체요리를 먹기 전에 살짝 맛보는 에피타이저의 느낌이 드는데, 그 에피타이저가 매우 맛깔스럽게 끌리는 맛이다.

 

막걸리라는 소재를 다루는 만화여서 그런지 그림에서도 왠지 모르게 구수하고 정겨운 냄새가 풍긴다. 덧붙이자면 그림을 담당한 작가 김용회는 허영만 화백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드는 그림과 함께 작품의 이야기 전개도 무척 담백하면서도 재미있게 진행되고 각 에피소드 마다 이 작품의 감수를 맡은 막걸리 교장 허시명이 들려주는 다양한 정보가 담긴 막걸리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담겨 있어서 작품을 읽는데 더욱 흥미를 더해준다. 참고로 대작은 현재 스포츠 한국과 다음의 웹툰 코너에서도 연재가 되고 있다.

 

누룩은 일명 막걸리의 씨앗이라고 불리우며 막걸리를 만드는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그런 누룩의 존재처럼 이 작품에도 우리들의 소중한 술인 막걸리라는 존재에 대한 진지하고 또 사려깊은 자세가 자리하고 있다. 마주 대하여 술을 마신다는 의미를 지닌 [대작]이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이 막걸리 만화가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에게 신명나고 흥겨운 이야기들을 제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면서 지켜보고 싶다.

대작, 막걸리, 누룩, 이종규, 김용회, 허시명, 안태호, 북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