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그리는 만화들을 읽는것은 식탐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의 향연이 만화속에서 펼쳐지면 나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아주 맛나게 먹어 치운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그런 만화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그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전국 팔도를 누비면서 직접 찾아낸 생생한 재료들과 깊은 맛으로 버무린 이야기로 차려낸 진수성찬을 선사해줬다.

 

지난 2002년 '어머니의 쌀'편을 시작으로 연재를 출발한 [식객]은 작품의 준비 기간에만 3년이라는 시간이 들었으며 장장 9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연재가 진행이 됐었고, 마침내 27권 [팔도 냉면 여행기]를 마지막으로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서 떠났던 먼 여정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오랜 여정을 마무리 하는 식객의 마지막 이야기가 다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냉면'에 관한 것이라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가 컸다.

 

마지막 여정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냉면은 무려 아홉 가지에 달하는 고명과 진한 감칠맛을 전해주는 해물 육수가 어우러진 [진주냉면]이었다. 냉면의 본고장이라 불리우는 북한에서도 인정 받은 진주냉면은 지금까지 한번도 먹어 본적이 없어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냉면 육수에 달궈진 쇠막대를 넣어 순식간에 잡내와 비린내를 잡아내는 방법이 무척 독특했는데 조선시대에는 권번가에서 즐겨먹던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고 한다.

 

맛이 어찌나 좋은지 국수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해서 애칭이 붙여진 [승소냉면]은 스님들이 즐겨 먹는 사찰 음식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별미로서 육류나 해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조리법도 매우 간단하다고 하고 가정에서 직접 승소냉면을 해먹을 수 있는 방법들도 책에 함께 담겨져 있다. 냉면과 관련된 선재 스님이 들려주는 재밌는 에피소드와 성찬이 해준 냉면을 먹으며 맛에 대한 큰 스님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는 진수의 이야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운암정의 오봉주와 성찬의 냉면 대결 에피소드가 더욱 흥미를 돋아준 [평양냉면]편에서는 면과 육수, 그리고 겨울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고소함과 매콤함으로 유혹하는 [함흥냉면]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훈훈한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져 가슴을 데워주었다. 참, 앞으로는 아무리 냉면의 면발이 질겨도 절대로 가위는 사용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장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성찬이 진수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찾은 [밀면]에서는 자신들의 일에 자긍심을 지니고 대를 이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 이렇게 해서 식객 27권 [팔도 냉면 여행기]는 진주냉면에서 시작한 여정을 부산의 밀면에서 마무리 한다. 평소에 냉면을 무척 좋아했지만 물냉면과 비빔냉면밖에는 몰랐던 냉면 귀신인 나에게 이번 팔도 냉면 여행기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새로운 세상에 데려다 주었다. 특히 진주냉면과 승소냉면은 지금도 혀끝에서 그 맛을 음미하고픈 마음이 강하게 맴돌고 있다.

 

진주냉면과 승소냉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그리고 밀면까지. 성찬과 진수를 따라서 팔도를 여행하며 만난 개성 넘치는 다양한 냉면들의 맛있고 정겨운 이야기들은 [식객]의 마지막 여정을 더할 나위 없이 맛깔스럽고 근사하게 장식해 주었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독자들에게 최고의 맛과 감동을 선사한 '성찬식품'은 세대를 뛰어넘어 계속 영업한다고 한다. 현재 사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허영만 화백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다림과 함께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처럼 새로운 맛과의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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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사는 요정이 인간의 아이를 바꿔치기 한다는 '체인질링' 설화를 아시나요? 키스 도나휴의

 

 

인상적인 데뷔작 [스톨른 차일드]는 바로 체인질링 설화속의 주인공들인 요정과, 바꿔치기 당한

인간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답니다. 도나휴가 들려주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너무나

환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가슴이 저미는 슬픈 이야기랍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갈텐데 그에 앞서서 먼저, 소설의 제목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바꿔친 아이'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바꿔친 아이는 요정의 설화속에 등장하는데 이번

작품속에는 요정이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파에리라는 존재가 나온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요정

이라 불리우는것을 싫어하고 천상과 지상 사이의 숲에서 살아가는 독자적인 무리들이에요.

 

파에리들은 인간 세상의 짧은 인생에서 고통과 슬픔을 겪은 한 아이를 훔쳐오고, 대신에 그들의

아이를 데려다 놔요. 그들은 꽤나 신중하게 인간 아이를 선택하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해서

실행에 옮기죠. 바꿔친 아이 대신에 들어간 파에리는 먼저 그 아이의 모습을 복제하는데, 자신의

뼈와 피부를 늘리면서 몸이 떨리고 살이 찢어지는 처절한 고통을 느끼게 된답니다.

 

소설의 주인공 애니데이와 헨리 데이는 바로 그러한 바꿔친 아이들이에요. 자신의 가족과 이름,

인간으로서의 삶을 강제로 빼앗기고 숲에서 살아가게되죠. 시간에 갇혀 나이를 먹지 않는.. 마치

들개 떼처럼 야성적인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의 모습을 지닌 파에리들과 함께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애니데이와 헨리 데이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며 근사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답니다.

 

키스 도나휴는 [스톨른 차일드]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헨리 데이와 숲에서 파에리들과 함께 시간

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애니데이의 이야기를요. 그 이야기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진행되는데 그속에는 단순한 판타지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들어있어요.

 

전 헨리 데이의 인간 세상 이야기도 좋았지만 그것보다도 애니데이와 12명의 파에리들이 함께

살아가는 숲속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답니다. 숲속의 이야기를 읽는동안은 숲의 바람과 숨결을

느낄 수 가 있었고 파에리들과 함께 달리며 뛰놀았어요. 또 애니데이와 스펙이 도서관에 숨어서

함께 다양한 문학들을 읽으며 교감하는 장면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스톨른 차일드]는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설이에요. 헨리 데이와 애니데이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스펙, 아이젤과 베카, 어니언스, 라그노, 잔자라, 스마올라크, 단짝 루코그, 키비와 블롬마,

채비서리, 테스와 애드워드.. 모두 함께 웃고 울면서 살아숨셔요. 이들의 마음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즐거웠답니다. 파에리로서의 삶도 왠지 부러웠고요. :)

 

덧, [스톨른 차일드]는 아마존닷컴이 영화 산업 진출을 공표하면서 처음 영화화 원작으로 선택한

소설이라고 하네요. 스크린에서 만나는 파에리들은 어떨지 너무나 궁금하고 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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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라고 대답하는 사나이. 누구보다도 산을 사랑하고 아끼며 그 산에서 살아가는 남자 시마자키 산포. 네팔, 남미, 유럽등 전 세계의 수많은 거봉들을 오르 내리며 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또한 산의 험난함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가혹한 사고의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남자다.

 

이시즈카 신이치의 [산]은 그런 산포라는 주인공이 일본 알프스를 무대로 펼쳐가는 가슴 훈훈한 산악 구조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얼마전에 산은 제1회 일본 만화 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일본 알프스에 찾아오는 사람들. 산포는 산악 구조대의 자원 봉사자로 일하며 산에 오르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은 갑작스런 폭설이나 작은 사고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된다.

 

산포는 그런 위험한 사고를 당하는 요구자들에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그들의 생명을 구하고 살수있는 희망을 전해준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조난자들. 먼저 세상을 떠나간 아내와의 추억을 그리는 남자, 연인과의 이별을 경험하고 산에 오르는 화가, 조난된지 반년이 지난 아들을 찾으러 산에 오르는 아버지.. 산포는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마주선 조난자들의 살아가려는 의지를 북돋으며 구한다.

 

뛰어난 산악 기술과 경험으로 산포는 많은 조난자들의 목숨을 구해낸다. 대부분의 조난자들이 목숨을 건지지만 그중에는 안타깝게도 산포의 등에서 생명이 꺼져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산포는 그들의 죽음을 존중하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슬퍼한다. 산을 오르는 클라이머로서, 그리고 산악 구조원으로서 산포는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고 그들의 마음과 생명을 혼신을 다해 구하고 지켜낸다.

 

작품에는 산악 구조의 냉혹한 현실도 등장한다. 생명이 다한 시체를 태울수없는 구조 헬기의 규정과 긴박한 구조 상황에서 한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포기 해야만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일어난다. 작가는 이렇게 냉정하고 현실적인 산악 구조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하며 동시에 산의 정상에 가까스로 도착했을때 그들이 맛보는 정상에서의 뿌듯함과 눈에 비치는 전망의 아름다운 장관도 함께 그려낸다.

 

만화 [산]은 이렇게 산의 위대함과 험난함을 산악 구조원 산포의 시선과 체험을 통해서 보여주고있다. 산포가 펼쳐가는 산악 구조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은 작가의 깊이 있는 묘사를 담은 표현력 높은 그림과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고 중간에 작가 자신이 직접 올랐던 세계의 산들과 경험담들이 짤막하게 담겨있다.

 

국내에는 10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닌듯 하지만, 좋은 작품을 읽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어딘가 뭉클해지는 그런 기쁨을 가득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산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어 고마워요' 라며 산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사실에 감사해 하고, 산을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따뜻한 남자 산포가 전해주는 훈훈하고 가슴 벅차오르는 산악 구조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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