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왠지 모르게 이국적인 신비로움의 느낌이 떠오릅니다. 비록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란이라는 명칭을 대신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거대하고 신비로운 페르시아 제국이 역사와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것만 같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드는 뜨거운 모험이 계속 되고 향신료의 잊을 수 없는 아찔함이 넘실 대며 [아라비안 나이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들녘의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 19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도리트 라비니안의 [페르시아의 신부]는 바로 그러한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20세기 초의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가상의 작은 유대인 마을에 살면서 쿠치크 마다르, 어린 엄마를 꿈꾸고 있는 두 소녀의 삶과 엇갈리는 운명을 아름다운 문장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페르시아의 작은 마을인 '옴리쟌'에는 유대인들이 아몬드나무 거리에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주인공들인 두 명의 유대인 소녀이자 사촌 지간인 플로와 나지아가 한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어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모인 미리암 하놈의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있는 나지아는 사촌 오빠인 무사와 결혼하여 빨리 임신하는것을 갈망 합니다. 그녀보다 네 살 위인 플로라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바로 임신을 했어요.

 

플로라의 남편인 장돌뱅이 비단장수 샤힌은 그녀의 곁을 떠나 길을 나서고 그녀는 남편이 다시 돌아오기를 너무나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남편을 그리워 하며 기다리던 플로라는 남산만한 배를 부둥켜안고 직접 샤힌을 찾아서 길을 떠납니다. 작가는 주인공인 플로와 나지아, 두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옴리쟌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역사를 아우르며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작가 도리트 라비니안은 지난 1995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그녀의 데뷔작인 [페르시아의 신부]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이스라엘의 권위 있는 문학상 이즈하크 비너 상과 골든 앤 플래터넘 상, 윈게이트 상을 수상하며 현재 이스라엘 문학을 이끌어갈 작가로서 촉망받고 있다고 하네요. 두 번째 소설인 [천 개의 진주알이 달린 목걸이]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최근에는 세 번째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리트 라비니안은 데뷔작 [페르시아의 신부]에서 신비한 환상과 애잔한 동화를 동시에 담고 있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각적인 문장을 통해서 그려가고 있습니다. 비록 결혼과 임신이라는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작가는 구수하고 현란한 입담으로 희극적이고 정겨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즐겁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려는 소녀들이 꿈꾸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페르시아의 전설이 부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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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한국 만화를 뽑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양경일의 데뷔작인 [소마신화전기]라고 대답을 합니다. 지난 1993년에 주간지인 소년 챔프에 연재되었던 이 근사한 판타지 작품은 이나다 코지의 [타이의 대모험]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험과 마치 내가 모든것을 해낼 수가 있을것만 같은 커다란 용기와 함께 설레이는 꿈과 즐거운 환상을 심어주었던 정말로 소중한 추억의 작품입니다.
 
비록 [소마신화전기]는 아쉽게도 미완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섬세함과 화려함, 더불어 역동적인 힘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근사한 그림들을 선사해주는 양경일의 새로운 작품들이 연재되거나 출간될 때마다 팬으로서 관심을 가지며 지켜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토리 작가인 윤인완과 함께 콤비를 이루어서 선보인 [아일랜드]와 [신암행어사]는 국내를 비롯하여 일본에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신암행어사]가 완결 되고 양경일의 신작을 기다리던 중에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한국 만화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현재 일본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중이며 일본에서 단행본이 5권까지 나온 양경일과 윤인완 콤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디펜스 데빌]이 드디어 국내에서 출간된 것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양윤 콤비가 어떤 내용으로 만족감을 줄지 기대를 하며 작품을 읽어 나갔습니다.
 
먼저 [디펜스 데빌]에서 그리고 있는 내용은 조금 색다른데, 다름 아닌 악마와 변호사라는 묘한 조합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좋아하고 착한 성품을 지닌 탓에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빼앗기고 마계에서 추방을 당한 마계 대왕의 아들이자 지옥에서 추방된 왕자라고 불리우는 대 악마인 메피스토 바르토 쿠카바라는 다시 마계로 돌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작전명 '디펜스데빌'이라고 하는 계획을 조수 비출러와 함께 실행합니다.

그것은 악마에게는 마치 로열 젤리같은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악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인 '다크 매터'를 회수하기 위한 계획입니다. 쿠카바라는 악마 변호사로 일하면서 죄가 있다고 의심되는 영혼들이 모이는 지옥의 입구 이벤트 호라이즌에 당도한 죄인들과 만나, 그들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는 '무죄 아이템'을 찾아서 계약서에 검증을 요청하고 그것이 인정받으면 죄인의 몸에 차있는 다크 매터는 모두 방출되어 쿠카바라는 그것을 다시 흡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크 매터를 노리는 사신들의 방해로 지옥의 변호는 쉽사리 진행되지 못합니다.
 
인간을 변호하는 지옥의 착한 악마! 양경일과 윤인완의 신작인 [디펜스 데빌]이 지니고 있는 그 설정은 매우 독특했고 참신하게 다가 왔습니다. 게다가 판타지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동시에 끌어낼 수가 있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고요. 참고로 이번에 출간된 1권에는 악마 변호사 쿠카바라의 등장과 함께 억울한 누명을 쓴 두 명의 죄인에 대한 2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양경일의 신작이기에 초반부터 많은 기대를 하면서 읽어 갔지만 아쉽게도 그런 나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큰 만족감은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악마가 인간을 변호한다는 소재는 참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매력적인 소재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자체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흡인력도 조금 부족했고,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남성 독자를 위한 서비스 장면들은 너무 과했습니다. 주인공 쿠카바라가 변호하는 억울한 죄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별로 공감을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소재들을 뒷받침 해주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산만하고 빈약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작품을 읽은 가장 큰 이유였던 양경일의 그림은 여전히 근사했으며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 참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특히 쿠카바라가 다크 매터를 흡수하여 대 악마의 모습으로 바뀐 모습과, 그가 죄인에게 계약서에 싸인을 받을때 사용하는 만년필이 두 가지 형태의 검으로 변형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자신의 우유부단한 주인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하는 귀여운 용족 조수인 비출러의 캐릭터도 좋았습니다. 매력적인 소재와 캐릭터를 살려주지 못하는 이야기가 그저 아쉬울 따름인 [디펜스 데빌] 1권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다음권으로 이어지는데, 부디 앞으로 전개되는 내용에서는 좀더 탄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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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일본에서 1992년에 작가로서 처음 데뷔한 이후 정말로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많은 작품들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스터리와 추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답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그녀의 작품들은 상당히 많이 출간되었고 온다 리쿠라는 이름에 열광하며 그녀의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층도 매우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많은 작품중에서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된 것은 바로 10대 소녀와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밤의 피크닉]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과 서점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만 스물네 시간 동안에 밤을 새워가면서 80킬로미터를 걷게 되는, 수학여행 대신에 치뤄지는 고교 생활의 마지막 이벤트인 '야간보행제'를 배경으로 하는 성장소설이자 청춘소설입니다. 남녀공학인 북고에서 연례 행사로 열리는 보행제는 아침 8시에 출발해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학교로 돌아오는 행사로, 소설에서는 이 보행제에 참가한 같은 반 학생이자 주인공인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와 그들 주변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행제가 진행되는 하루 동안에 들려줍니다.

 

보행제에 대한 다소 들뜨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발한 아침이 지나고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이 다가오는 낮을 맞이하면, 다시 정말로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은 저녁과 조우합니다.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을 보낸 후에는 드디어 반짝이는 별빛이 선사하는 청춘의 생기가 감도는 기다리던 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도오루와 다카코와 친구들은 평소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가슴속 깊이 담아 두었던 서로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 나갑니다. 밤이 지나고 체력에 한계가 오는 새벽을 무사히 넘기면서 마침내 살며시 미소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온다 리쿠의 많은 작품중에서 특히 [밤의 피크닉]은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사건들이 등장하는것도 아니고, 하루라는 시간 동안에 그저 걷기만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아낸 소설이지만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도 작가는 너무나 특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독자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10대 특유의 예민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언어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지는 풍경들에 대한 묘사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책의 뒷표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라고요. 분명히 보행제는 걷기만 하는 단순한 행사이지만 그 속에는 친구들 사이의 깊은 우정과 진솔한 소통, 그리고 설레이는 감정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기억속에 묻어 두었던 아련하고 소중한 시절들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온다 리쿠가 [밤의 피크닉]에서 들려주는 설레임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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