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잊지도 잊을 수도 멀리 떼어놓을 수도 품을 수도 없었던 사랑.
그 '사랑'이란 것 때문에 지난간 내 10년이 넘는 시간은 죄 지은 것 없이도 부끄러웠고 마치 죄 지은 사람마냥 자신 있게 세상에 나서지도 소리내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나를 기억하는 '그'에게 되도록 '나'란 기억을 하지 않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였으며 '나' 스스로에 대해 되도록 덜 상처받게 해주고자 하는 나의 배려였다.
아니 어쩌면 찾고자 하는 마음이 혹여라도 그의 마음에 생길 때, 어딘가로 꼭꼭 숨어버린 내 자신을 찾기 힘들도록 만들려는 나의 악랄함, 철저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불현듯 깨달아지는 것들.
과연 그 모든 나의 악랄함이든 배려이든,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대체 그것이 나의 머릿속 기억의 울타리 밖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미련이란 말인가..
내가 세상을 등지고 꼭꼭 내 안으로만 파고들며 숨을수록, 그는 그런것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을 밖으로밖으로 내세우며 성장해 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자아존중감이 충만하지 못한 여전히 유아기의 모습 그대로인 내가 세상에 던지는 소심한 복수, 분노였으며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친구들, 동기들보다 세상에 한발 앞서 나아갔고 그들의 경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졌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무너짐에 있어서 '그'가 지대한 역할을 하긴 하였으나 어쩌면 그건 애초부터 나의 자신 있는 모습 속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유아기로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던 모든 흔들리던 자아가 툭하고 와르르 무너져 버린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나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대학 졸업까지의 학창 시절 모두를 통틀어 누군가에게 한번도 드러내 반항하지 않았던, 얼핏 보면 사춘기가 뭐냐?할 정도로 무심히 지나친 말 없던 여자 아이가 다 자란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사춘기에 돌입했던 것이다.
뒤늦은 사춘기를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했으며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나 자신조차도 그것이 '사춘기'였음을 이제 와 새삼 느끼는데 어느 누가 다 큰 성인이 뒤늦게 혹독히 사춘기를 겪어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지극히 외로웠고 날마다 헤매고 방황할 수밖에.
둘러싼 현실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내이자 엄마인데 내 안의 본질적인 나는 그 방향도 모른체 끝도 없이 방황만 일삼는 '사춘기'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던 사춘기가, 이제 끝나려나보다.
너무 오랫동안 지나쳐온 사춘기때문에 스스로도 지치고 너무나도 한심해 힘들어질 무렵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따뜻해 보이고 편안해 보이는 갈무리가 왔다.
그것이 올해 초가 아니었나 싶다.
더이상 방황은 없었고 오로지 나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겼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서른 다섯까지 연습이다"라고.
어쩌면 나처럼 나이 들어 사춘기를 겪은 이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에게 있어 '서른 다섯'이란 나이는 여태 연습이라는 과정을 겪은 나이였고 이제부터가 본게임이 아닐지..
기나긴 사춘기를 훌훌 털어내고 나니 다가오는 봄이 엄청 기대된다.
어쩐지 이 봄엔 나 또한 지극히 온전한 나 스스로의 자아와 더불어 한발 더 발돋음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어른이지만, 이미 나이 들어 그 시기를 지나쳤을 나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자신 안에 방황하는 스스로가 보인다면,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낀다면 한번쯤 되돌아보자. 혹시, 사춘기를 제대로 지나쳐 오지 않은 건 아니었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