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기 전인 20대 중반까지가 제 삶이 자유로운 시기였다면 결혼과 더불어 시작된 누군가의 써포트라는 직위는 자유를 잃은 삶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마저도 '자유'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세로토닌? 아무튼 그러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한 착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슬프거나 우울한 착각만은 아니었으니 패스..)
자유를 잃은 듯 하지만 더불어 얻게 된 것도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여유'였습니다.
물론 제 여유를 위해 누군가가 날마다 이른 새벽 출근하여 모두가 퇴근하는 교통 지옥의 시간에 퇴근해 주는 수고로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기에 날마다, 날마다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유라고 하여 그것이 금전적인 여유나 시간적, 심리적인 여유는 아니었어요.
금전적으로는 늘 대출이라는 든든, 막역?한 친구와 함께였고 주체할 수 없도록 넘쳐나는 시간들조차 늘 무언가에 쫓기듯 공부, 시험과 더불어 지내야했기에. 그리고 몇년동안 반복된 낮과 밤이 바뀐 생활. 물론 그 생활의 피곤함과 맞바꾼 금전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사람에 대해 지친 마음이 엄청난 '휴식'을 갈구한 탓에 또다른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더랬습니다.
그 또다른 무언가!
분신과도 같은 잉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뱃속에서 저와 누구님의 분신이 날로 무럭무럭 자라갈수록 행복도 커지고 제 배도 커지고.
입덧 때도, 몸이 점점 무거워 다리가 퉁퉁 붓고 맞는 옷이 없어져 갈 때에도 힘든 줄 모르고 묵묵히 버티었었는데 담당 의사가 '누워서 푹 쉬시기만 하라'고 하는 순간에는 '아, 내가 좀 힘든 상태구나~'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임신과 더불어 새롭게 눈 뜬 또 다른 세상(?)이 제게는 너무나 황홀하고 홀릭할만한 것이었던 탓에 정말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 주수 채워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빨래를 널다가 알았습니다.
제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는 상태라는 걸.. 그리 높지도 않은 높이에 빨래를 널기 위해 두 팔을 위로 드는데 '악'!
정말 아프더군요. 두팔을 들지도 못할만큼 어깨도 팔도 모두..
배가 많이 커지고 아래로 처질수록 제 단신이 지탱할 수 있는 한계를 제가 미처 파악 못하고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킨 탓에 아이는 아이대로 밑으로 처진 상태였고 그럴수록 제 몸도 더 많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결국 아이를 낳기 2주전부터는 그나마 겨우 걷던 걸음도 한발짝도 못 걷고 심지어 앉기는 더더욱 힘들어 누워만 지내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더 커져서 자연분만 못할까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임신 기간 내내 잘 먹지도 못했는데 더욱 못 먹고 하루하루 기다리고만 있었네요.
초산임에도 예정일을 이틀이나 앞당겨 아이를 만났습니다.
9시간이 넘게 진통한 탓에 가뜩이나 아래로 처져 있던 아이의 머리는 길쭉한 애호박 형태의 머리가 되어 세상에 나왔고 그 후로 오랫동안 제 마음에 미안함으로 남았습니다.
만 4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이제 다섯살입니다.
곧 여섯살이 될테지요.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참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날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주었고 전공한 엄마보다 말은 더 청산유수이며 오늘은 저와 함께 파도 썰었습니다. (누군가는 위험하다 안된다 극구 말렸지만 이젠 제법 위험한 것도 알고 조심할 줄도 아는 것 같아 해보자 했더니 제법 잘합니다^^ 훌륭한 일꾼이 될 듯..ㅋ)
사실..
제가 이러한 상념까지 지나쳐 오는 과정 중에는 '명품 조리 용품'이라는 주제가 있었습니다.
최근 할인 행사에 돌입한 모 유명 조리 용품을 둘러보다가 한개를 더 지르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들을 살펴보다가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는 블로거의 집까지 구경을 하게 되고..
그러다 든 생각이 '아직 아이가 없으니 둘이 오붓하고 여유도 있구나..'하는 부러운 듯한 뭐 그런..쩝.
하지만!
잠에서 깨 뒤척이는 뽀얗고 조그마한 제 아이를 보니 '명품은 무슨, 요놈이 내 명품이지~'하는 생각에 자는 아이 얼굴에 뽀뽀 폭격을 날립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여유'가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그게 어떠한 유형의 여유이든 이제는 제 아이와 함께가 아닌 여유는 바라고 싶지 않아집니다.
반항기에 돌입한 아이 덕으로 힘든 일도 많은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지언정.. 못난 어미라..) 한번도 아이의 부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네요.
삶이 조금 뒤틀리고 정신 없고 빠듯해도 역시 제게 웃음, 마음의 여유를 주는 건 어디까지나 제 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날마다 자는 아이의 손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는 딸바보인 저는 오늘도 그렇게 아이가 주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주어진 하루를 감사합니다..
모두가 편안한 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