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대만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책이 맞긴 하구나란 거. 에세이가 요즘의 내 감성에 맞아서인지 많이 읽고 있는 편인데, 요건 마음에 와 닿는 문장과 감동을 주는 사진이 많았다. 대만의 정서도 우리와 비슷한가 보다. 이 책만으론 그리 큰 차이를 못 느끼겠으니 말이다. 책을 보자마자 표지에 적혀 있는 '진정한 강인함은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이기도 하기에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 다소 등장하지만, 모두 쉽게 쓰여있으므로 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건 모든 내용이 편지 형식으로 쓰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에게 말하듯, 딸에게 말하듯...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바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사람밖에 모르는 바보. 그래서일까?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옆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의 귀에 들어오질 않고, 설사 자발적으로 아무리 주변에 조언을 구한들 들려온 조언과 달리 자기가 원래 하고 싶었던 대로 행동하고 마는 것은. 여기서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편지는 쓰이기만 했을 뿐 나중에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 성숙해졌을 때까지 보관하는 것으로 하여 수신자에겐 보내지지 않은 것도 있다. 책에 실린 사연은 나도 한 번쯤 겪어봤던 것들이라 이미 경험한 저자의 안타까우면서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짠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 어린아이는 아직 잘 모르겠지. 진정한 힘과 진정한 강인함은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이야기 속의 야트는 자신을 괴롭히는 같은 학교 남학생들에 저항하기 위해서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그리고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의 가상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상 세계에 숨어 있는 것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을 수 있겠지.

 

 

  공원이나 놀이동산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 지극히 평범하지만 이런 시간이 아이에겐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엄마 못지않게 아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니 가능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해주기를 당부한다. 아빠가 있었던 적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그 빈자리를 채워야만 하는데 이건 외롭고 힘든 일이니.

 

 

저자 덩훼이원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들

 

 

  사랑이 우리에게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주는 만큼 슬픔과 고독감 또한 딸려온다. 우리가 '사랑'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별', '집착'같은 감정에 관해서 섬세한 필치로 쓴 글이 사랑의 아픔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아직은 내겐 헤어진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라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정말 저자의 말대로 그 헤어짐도 사랑하게 될 날이 올까? 

 

 

  '철학'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소크라테스다. 서양 철학의 토대를 다져 준 그 이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이름이라서 그런 걸까, 인기가 많은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224건의 서적이 나온다(교보문고 기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 책은 바로 소크라테스와 야구를 연관시킨 책이 아닐까? 이전과 달리 남자는 물론 여자까지도 좋아하고 즐겨 보는 스포츠가 된 야구의 어디에 철학적인 관점으로 주목할 만한 게 숨어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비록 야구도 아직 친숙하지 않지만. 책을 몇 페이지 넘겼더니 나온 원제에는 소크라테스는 언급조차 없구나.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 붙인 건가.

 

  먼저 알아둘 것은 이 책은 현역에서 활동 중인 21명의 철학자, 영문학자, 과학자, 법률학자 등이 주요 필진이며, 엮은이는 에릭 브론슨으로 다들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언급된 야구는 모두 미국 야구라서 우리나라 야구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 팬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미국의 메이저리그 팀과 테드 윌리엄스, 재키 로빈슨, 베이브 루스, 새미 소사, 베리 본즈 같은 유명한 선수들이 등장하기에 그리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책의 마지막에 미국 야구와 철학자, 선수들의 색인이 실려있어 찾아가며 볼 수 있다. 책의 목차가 1회 초, 1회 말로 시작하여 9회 초, 9회 말로 매듭짓는 야구 경기와 같은 스타일로 이어져서 이러한 자그마한 재미를 맛볼 수도 있다.

 

  미국 시카고에 커브스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은 약 1세기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며, 1945년을 마지막으로 내셔널리그 우승을 거둔 적도 없다. 정말인지는 의심스럽지만 1945년에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염소와 함께 경기장에서 관람하려는 한 관중을 저지하자 그가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원인이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후로 커브스가 승리를 거머쥔 빈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승리와는 거리가 먼 커브스의 팬들은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커브스 팬들은 충성을 바쳐 커브스를 떠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마치 종교를 믿는 것처럼 그러는 이유는? 아무리 팀의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덕을 지키는 것, 그리고 승리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데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승리와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있기에 응원할 값어치를 지니는 것이다. 또 마치 종교에서처럼 자기희생과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이 고통은 좋은 시절이 오면 느낄 기쁨을 한층 크게 해 준다. 게임에서 늘 이기는 것보다는 간만에 승리를 얻었을 때 얼마나 기쁜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승리를 확신하기 어려운 팀일지라도 우리는 충성을 바친다. 난 야구를 안지 오래되지 않아서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어쩜 이렇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다 있을까 궁금했는데 왜 그러는 건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야구와 친하지 않아 내겐 이 책이 종종 읽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룰만 따르면 되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야구 속에 이렇게 많은 철학적 질문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뭐든 그냥 생긴 게 없구나. 다 생각의 탑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구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본다면, 그리고 철학에도 살짝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이 본다면 이 얼마나 짜릿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일지! 철학을 대변하는 소크라테스와 함께한 9회 말까지는,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