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팩터라는 말이 뭘까? 성격심리학이라고는 하지만 들어본 적이 없는 개념인데? 새로운 건가? 다른 감정보다 호기심과 확인해 보고 싶은 감정이 먼저 든 이 책은 성격심리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잠시나마 한때 심리학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지만, 막상 읽으려고 하니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읽기 편한, 독자를 배려한 책이라는 게 느껴져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심리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재밌는 분야이지만 이 책은 특히나 이해하기 쉽고 읽는 재미도 있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었다.

 

  성격심리학에서는 5대 성격 모델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람의 성격을 외향성(활달함 vs 수줍음), 원만성(친절함 vs 매정함), 성실성(규율적이고 치밀함 vs 게으르고 신중치 못함), 신경증(불안함 vs 평온하고 느긋함), 개방성(창의적임 vs 관습적임)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로는 범법 행동이나 준법 행동에 관한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데 정직성이 성격심리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니! 5가지 요인에 정직성이란 요인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성격 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을 텐데. 

 

  기존의 성격심리학에서 밀려나 있던 정직함까지 포함하여 저자는 HEXACO 성격 모델(H는 정직-겸손성, E는 정서성, X는 외향성, A는 원만성, C는 성실성, O는 개방성을 말한다)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이 모델에 따라 부정직한 사람이 EXACO의 5가지 요소가 높을 때와 낮을 때 나타나는 그들의 행동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또 정치, 종교, 돈, 권력, 섹스에서 나타나는 정직성의 양상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부정직한 사람을 골라내는 법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서 얘기한다.

 

  정직성이 낮은 사람을 남을 착취하고 이용하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이들을 잘 알아보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그들을 잘 설득해서 공정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쉽게 설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이익이나 그들의 이익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이게 말이야 쉽지 얼마나 어려울지. 그럼 정직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거나 아니면 경계해야만 하는 걸까? 저자는 정직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며 '협력'을 하는 길이야말로 정직한 사람들이 번성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이론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팁을 제시해줘서 마음에 든다.

 

  정직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지만, 정직성이 다른 특성과 결합한 경우에 대해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5가지 요인에 관해서도 덤으로 알 수 있다. 원만성이 높은 사람은 남과 부딪혀도 금방 잊고 용서하곤 하지만, 원만성이 낮은 사람은 남들과 화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식으로...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성격 요인 6가지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도 않게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인다. 물론 불가능에 가깝지만. 왜냐하면 특정 수치가 너무 높은 것은 좋은 건 줄 알았더니 그것도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정직성이라는 성격심리학의 6번째 요소를 빠삭히 알았으니 마지막에 수록된 HEXACO 성격검사지를 활용하여 내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트루먼 커포티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헤밍웨이와 더불어 미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데... 얼마 전 트루먼 커포티 선집으로 『다른 목소리, 다른 방』, 『풀잎 하프』, 『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 『차가운 벽』 이렇게 5개의 작품이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하나같이 아름답다. 색상이며 사진이며.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책이 이 분의 것이라니 놀랐다. 표지마다 나와 있는 이 잘생긴 사람은 누굴까 했더니 알고 보니 바로 저자인 트루먼 커포티 자신의 사진이었다. 흑백으로 나와서 그럴까? 조금은 병적인 공허한 아름다움을 가진 작가의 소설이 궁금했다.

 

  눈시티로 가려는 열세 살 소년이 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이혼으로 얼굴도 못 본 아빠를 찾아 홀로 멀리 여행한 아이의 이름은 조엘. 아빠의 집인 스컬리스 랜딩을 찾아간 그는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 소녀 아이다벨,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플로라벨, 지저스 피버라는 흑인 할아버지, 새엄마인 에이미, 에이미의 사촌 랜돌프, 지저스의 손녀인 흑인 소녀 미주리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단 한 사람, 아빠는 아프다는 말만 들을 뿐 한참 동안 만나지 못한다. 도대체 언제 아빠를 만나는지, 왜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지 조엘의 의문이 깊어질 뿐이다.

 

  조엘의 불안은 독자인 내게 옮아와서 나 또한 소설을 읽으며 왠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찌 이리 기괴한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지... 미주리가 케그 브라운에 대해 하는 말도, 이해가 갈듯 말 듯한 아이다벨의 행동도, 리틀 선샤인의 부적도, 드라우닝 폰드의 유래도 모두 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읽다 보면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참 많다. 미국 남부의 묘한 세계에서의 여정은 조엘이 소년에서 벗어나서 소년이었던 자신을 뒤돌아보며 끝을 맺는다. 말마따나 소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성장 소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일 년에 몇 번씩은 미술관에 가는 편이다. 특별 전시는 꼭 빼놓지 않고 가곤 하지만 고루고루 보는 게 아니라 현대 미술만을 다룬 것은 보러 가지 않는 편식을 한다. 고전적인 미술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뭐가 뭔지 딱 보이고 화풍이나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쉽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어렵다. 기본적으로 설명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갔던 백남준 아트센터에서도 혼자서 볼 땐 이게 바로 백남준의 유명한 비디오 아트구나 정도밖에 몰랐었는데,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과 세계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현대 미술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현대 미술은 나도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 뇌리에 박혀서인지 선뜻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으로 남아있었다. 적어도 이 책,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느끼는 원근법은 오래전부터 있던 개념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생긴 개념으로서 소실점을 향해 늘어선 사물의 질서정연함은 한참 동안 진리라고 생각되어 왔는데 이 생각을 깨준 사람들이 현대미술가이다. 피카소의 작품 '우는 여인'은 기계적인 원근법을 타파하여 여인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합쳐 그린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하나의 초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다각도로 파악하는 바로 그 부분을 포착한 게 있는 그대로 보는 피카소의 입체파이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은 남성용 변기에 mutt라는 자신의 가명이자 변기 회사 이름을 사인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좌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를 꼬집은 것이 마이클 애셔의 작품인 '포모나 대학 프로젝트'이다. 그는 갤러리 내부 공간을 변형하여 갤러리 안에서 밖을 보면 그저 그렇게 지나쳐버렸던 자연환경이 액자 속 그림처럼 보이도록 했다.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미술관에 들어오기만 하면 멋진 작품으로 보이는 것, 그게 바로 마이클 애셔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에 심취한 미술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요제프 보이스. 1965년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미술을 설명할까라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는 사진과 같이 죽은 토끼를 안고 두 시간 동안 미술관의 그림을 설명했다. 이 앞에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하면서 봤지만, 이건 정말 무슨 의미인지 특이하고 독특한 발상이라는 생각 말고는 도통 알 수가 없다. 해설하자면,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진 언어 이상의 초월적인 힘을 가시화하려고 한 거라 한다. 들어도 이해가 갈듯 말 듯한 이 퍼포먼스는 좀 당황스럽다.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쓰고 한 발에는 동물의 지방, 다른 발에는 쇠로 창을 댄 신발까지 신고 한 건데 그건 또 무슨 뜻인지.

 

  늘 앞 시대의 사조에 관한 비판으로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고 그것이 반복된다. 그런 면에서 충실히 왜 현대 미술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잘 알려주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끝 부분에 있는 퍼포먼스에서는 이게 뭔가? 싶은 멘붕이 일어난 걸 보면 아직은 낯설긴 한가 보다. 저걸 예술이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니까. 그래도 멀게만 느껴졌단 현대 미술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