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여러 권 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신작인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살아가라는 스님의 말씀이 담긴 책이다. 매사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편인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화다다닥 반응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차분해지며 그제야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반응하고만 걸 후회하곤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성격은 걸림돌이 될 때가 많아서 평정을 유지하려고 늘 애쓰고 있지만, 상황이 닥치면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상해하던 내게 '평상심 수업'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류노스케 스님은 평상심을 '있는 그대로'라고 표현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나 싫어하는 일과 마주했을 때 그로부터 도망치거나 마음을 어지러이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일을 하기 싫은 기분일 때는 '지금은 내가 일을 하기 싫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를 다루듯이 마음을 꾸짖으려고 하지 말고 '그렇구나'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첫걸음이다.

 

  마음이 고통스러운 데는 끊임 없이 비교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한몫하는 것 같다. 이 비교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존심을 세우려면 비교 대상이 필요하니까. 이렇게 비교를 통해서 내세우는 자존심을 불교에서는 '만'이라고 하는데 '자만'이나 '오만'이 모두 만에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비교라는 뿌리를 가진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이 강한 사람은 지배욕이 강하고 요구 수준이 높은데 이런 욕구는 자주 채워지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무력함을 보지 않기 위해 화를 내고 이것이 계속 악순환 하면서 괴로워지는 것이다. 만에서 비롯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답이다.

 

  제행무상, 애별리고, 원증회고 등 다분히 불교적 색채가 강한 개념이 많이 등장하지만, 개념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명상에 관해서는 역시 걷기 명상이 현대인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빠지는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끄덕여졌지만, 기억의 저주라든가 매일 늙음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든가(말이야 맞지만) 살짝 불편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 숙제이기만 했던 평상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감사한 일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내 마음을 관찰하며 그랬구나~하는 자세,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 같다.

 

  홍대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벽에 그려진 그림인 그래피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얼마 전 영화 사이코메트리에서도 김범이 건물의 벽에 래커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래피티가 이젠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쪽 분야는 아는 바가 없어 뱅크시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알고 보니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인기가 많아 뱅크시 투어까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하지만 그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책 표지를 장식한 인상적인 그래피티가 유혹하는 그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저자 마틴 불은 처음엔 뱅크시의 그림으로 책으로 출간할 줄 몰랐기에 책의 일부 사진은 해상도도 낮고 사진의 질도 조금 떨어진다. 그래피티는 벽에 그린 그림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 게 많은데다 건물 외벽을 새로 칠하면 바로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이 책이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65곳의 런던 가이드 투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뱅크시 작품(동료 작가 페일, 엘 키보 등의 작품도 일부 실려있지만) 중 대부분이 지금은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만 작품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라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책은 의미가 있다.

 

 

 

우산을 든 쥐

 

 

 

 

낙하산을 탄 쥐

 

  뱅크시의 작품에는 쥐가 참 많이 등장한다. 다른 사람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난 쥐를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쥐 그림이 익살스러우면서 귀여워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독을 든 쥐, 갱스터 쥐, 레드 카펫의 쥐들, 우산을 든 쥐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스텐실 기법으로 된 이 그림들이 귀여워서, 그리고 이들이 들고 있는 푯말에 쓰인 문장이 재미있어서 바쁘게 길을 걷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림을 보는 순간 피식 웃게 될 것 같다.

 

 

 

 

코를 킁킁대는 경찰관

 

 

 

 

  난 쥐를 주인공 삼아 그린 뱅크시의 그림을 귀엽게만 봤지만, 사실 뱅크시는 제목 그대로 세상에 저항하고, 사회를 풍자한 그래피티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현금인출기가 소녀를 들어 올리고 있는 현금인출기와 소녀라는 작품은 조금 섬뜩하다.

 

 

 

 

 

  '여기는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는 작품 또한 뱅크시의 다른 작품처럼 여러 군데에 남겨져 있다. 여행 가서 사진에 담는 건 어떤 장면일까? 정말 내 마음 깊이 와 닿아서 찍는 사진도 있겠지만, 대부분 널리 알려진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아닐까? 런던에는 빅벤, 파리에는 에펠탑, 시드니에는 오페라하우스 같은(모두 뱅크시의 문구가 있는 곳이다). 인물만 바뀔 뿐 배경은 똑같은 사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양산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뱅크시가 남긴 문구가 있어 플래시 세례를 더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뱅크시의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그래피티를 떼어다 경매에 붙여 사고파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 사람들이 저자의 책을 진품 여부를 가리는 척도로 삼아 경매에 인용했다는데, 이를 철회해달라고 요청을 했음에도 인용구를 삭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 참, 세상엔 뻔뻔한 사람도 다 있구나. 뱅크시도 판매 목적으로 창조된 작품이 아니라면 거리의 예술은 거리에 남아있기를 바랐는데 함부로 떼어내 이렇게 경매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다니. 모두를 위한 거리의 그림이 어느 부르주아의 거실 한구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니,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