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한 나라 단위로 다루는 일국사 관점으로 배우는 게 당연해 보였다. 늘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그런데 과연 그처럼 한 나라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마는 게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사람도 혼자서만 자랄 수 없듯 국가도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동아시아의 세 나라인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한 바늘로 꿰어 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 책이 나왔으니 바로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이다. 분량이 방대하여 1권은 고대까지, 2권은 중세까지, 그리고 근대 이후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파악해야 하는 거라서 동아시아 삼국지에선 제외했다고 한다.

 

  고대 사회를 4장으로 나누고, 장별로 동아시아 연표를 첫 부분에 수록하여 어떤 일이 이 시기에 있었는지 한눈에 알아보며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려 시대에 있었던 무신의 난 우리나라에만 있던 게 아니다. 중국에서도 무인들의 변이 있었다고 한다. 북위 효문제의 개혁으로 관리로서의 등용은 교양이 요구되었고 그로서 대부분 읽고 쓰지 못하는 군인들의 출셋길이 사실상 막혀버렸다. 게다가 한족 출신 장중우가 관직에 무인을 등용하지 말자는 건의를 하여 근위군단의 불만이 폭증하여 항의시위는 물론 장중우의 집을 불태우는 등 난동이 일었는데 이것이 519년에 있었던 '우림의 변'이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이들에게 문관으로의 길을 열어주었으나 변경 군인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아 523년 '육진의 난'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무신의 난과 전개가 비슷하여 놀랐다. 이래서 예부터 역사를 중요시했던 것일까. 

 

  일국사가 아닌 제목 그대로 세 나라의 역사를 한 큐에 보여주는 거라 국제 정세에 따라 국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는 게 한눈에 보여 큰 흐름에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고대사를 다룬 1권을 읽고 나니, 곧이어 출간될 중세를 다룬 2권이 궁금해진다. 개인이 홀로 설 수 없듯 국가 또한 독자적인 힘으로 발전한 게 아니니 이렇게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를 큰 틀에서 보는 게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클래식은 가사는 없고 멜로디만 있다. 그래서 가사가 있는 현대음악과는 달리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고 단조롭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에 작곡된 클래식 음악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클래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채 듣기만 하는 건 고역이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클래식 음악의 배경을 들려주는 책을 보는 편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어떤 얘길 들려줄까?

 

  10페이지 미만의 짧은 호흡으로 작곡가, 지휘자, 가수 등을 소개한 3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읽기가 좋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이라 더 흥미롭게 읽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모든 챕터에 있는 건 아니지만, 유튜브에 연결된 QR 코드가 있어 음악을 들으며 읽을 수도 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자주 선곡되어 익숙한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원래 춤곡인 탱고는 클래식 음악 무대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오늘날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까지 등장하게 된 게 피아졸라의 덕분이라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 마피아 갱단의 싸움꾼으로 활약하다 권투선수가 되려던 피아졸라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음악의 길을 걷게 된다. 반도네온 연주자로서 새로운 탱고를 시도하지만 외면받고,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지만, 그에게 탱고의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본 나디아 불랑제의 영향으로 오늘날 남긴 그의 탱고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가 클래식 음악의 길이 아닌 새로운 탱고의 길을 개척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리베르 탱고', '안녕 노니노' 등 탱고의 명곡을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인 레스 폴, 누구나 다 알 법한 대중음악가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까지 아우르며 소개하여 지루해질 틈도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면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이 좀 더 친숙해지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할 책이다. 

  내 아내와 결혼해달라니? 이런 문장도 만들 수 있구나. 제목만으로도 일본 소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췌장암으로 앞으로 인생이 6개월밖에 남지 않은 방송작가 미무라. 사랑하는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두고 떠날 생각에 죽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다고 궁리한 끝에 아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결혼 상대를 찾기로 한다.

 

  얼토당토 않은 기획이지만, 멋지게 성사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미무라. 물론 아내와 아이에게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입원하여 연명 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조금 연장할 수도 있지만 거절하고 자신이 할 일을 성실히 해나간다. '결혼 활동의 신'의 저자를 만나서 상담도 하며 결국엔 결혼상담소에 가서 아내의 맞선 상대를 찾아낸 후 본격적으로 아내의 맞선을 준비한다.

 

  22년간 방송작가로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그만의 신조와 유머 감각, 센스, 그리고 노력이 어우러져 처음엔 뭐지? 이 이상한 기획은? 하면서 보던 나도 어느새 조마조마해하면서 미무라의 기획이 의도대로 잘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게 됐다. 그가 맞선 상대로 고른 손색 없어보이는 남자와 그의 아내는 서로 마음에 들어할까? 아무리 데이터상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호감이 생길까? 아내 또한 비록 미무라가 업무 특성상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하고 있는데...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했던 행동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던 그의 작업이 들통나버린다.

 

  초등학교 5학년인 그의 아들이 사립중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한 건, 엄마와 아빠 모두 열심히 살기 때문에 자신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아들의 말대로 자신에게  남은 6개월도 허투루 쓰지 않고 매일 매일을 노력한 그. 그의 기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다른 것보다도 미무라가 결혼해서 좋은 부분을 피력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중국집을 예를 들어 말한 결혼관인데 맛있어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행복이 묻어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또 세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될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겠지. 나는 정말 행복을 많이 누리고 있구나, 내가 인식하지 못할 뿐.

 

  미무라도 아내도 아이도 미무라가 곧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슬퍼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고 주어진 시간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을 하며 웃으려 애쓴다. 물론 그들이라고 속이 타들어가지 않을리가 없다. 그래도 남편의, 아빠의 마음을 생각해서 힘을 내는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몰입하며 읽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노력이나 결혼을 위한 노력이나 기본적으로는 똑같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인생살이도 똑같은 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슬프게 전개될 수도 있는 내용을 밝고 즐겁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듯이 보여줘서 잘 읽을 수 있었던 듯 하다. 기억해 두고 싶은 인상적인 문장을 적는다.

 

벽에 부딪혔다. 이건 현실인가! 그렇다면 타고 넘어라.
어려운 숙제는 즐거움으로 변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