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소극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학교란 울타리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공부할 것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왜 이렇게 공부하기가 싫을까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냥 할 때는 재밌게 하던 것도 공부 좀 해 볼까? 마음먹고 각 잡고 하려고 하면 어찌나 싫던지. 그런데 여기 놀이하듯 공부하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알리는 획기적인 책이 있어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놀이하듯이 재밌게 한단 말이지?

 

  어릴 때부터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던 나.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런 방식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며 그룹 활동으로 무언가를 조사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기도 하고, 시험 문제도 객관식이나 단답형 주관식이 아닌, 생각 해서 답을 쓰도록 서술형으로 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서술형으로 낸다고 해도 다들 답안으로 쓸 것을 달달 외웠다가 썼을 뿐이니까.

 

  이 책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학습에 주목하고 있다.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더글라스 토머스는 한 강의(온라인 대규모 다중 사용자 게임 그리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새로운 공부문화를 보았다. 그 수업은 90분 강의와 45분간 토론, 그리고 스타워즈 갤럭시라는 게임을 해 본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강좌의 주요 개념을 보여주는 30분간의 사례 발표로 이루어졌다. 둘째 주부터 사례발표가 많아 토론이 중단되더니 셋째 주엔 학생들의 요청으로 강의보다 사례발표부터 하게 되고 5주차가 되었을 땐 사례발표가 수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말았다. 더글라스는 재밌었을지는 몰라도 강의는 완벽한 실패라고 평가했으나, 기말 답안지를 읽고 놀랐다. 단순 이론 반복이나 원전 인용에 그치는 게 아니었으며 예시도 풍부하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서로 인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게임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공동체를 만들고 강의 교재와 자료를 이용하여 공부를 완벽히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교사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스스로 찾아가며 알아가는 그리고 자신들과 동등한 학생들이 찾아낸 것에서 배워가는 것, 그것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게임이라는 탈을 쓴 공부를 하는 여러 방식이 책에 소개된다. 누구나 흥미를 가질 법한 게임 형식으로 된 거라면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고 재밌게 하는 만큼 효율도 높은 것 같다. 나도 세계지리 시간엔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잊어버리곤 하던 지역별 특산물을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면서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디에 뭐가 나는지 싹 다 기억하면서 게임을 했던 걸 생각해 보면 게임과 공부를 접목시키는 건 대단히 효율적인 공부 방식이 아닐까 싶다. 아직은 이런 쪽으로 콘텐츠가 풍부하지는 않거나 대중에 널리 알려지진 않은 게 아닐까 싶은데, 언젠가 기존의 공부방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있는 방식이 아닐까?

  연달아 앨리스 먼로의 단편을 읽었다. 작가마다 스타일이 확실하니 이왕 볼 거라면 이어서 그 스타일에 익숙해졌을 때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이번에 본 것은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이다. 표제작보다 더 관심이 간 것은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곰이 산을 넘어오다'라는 단편이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꽤 알려진 영화 'Away from her'의 원작이라는 소설이라서, 그리고 나도 궁금하다 생각했던 부분을 소설로 보여준 것이라서였다.

 

  피오나와 그랜트. 그들은 오십 년간 함께 산 부부다. 그런데 아내인 피오나가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살게 되자 잉꼬부부였던 그들은 한 달간 떨어지게 된다. 적응 기간인 한 달이 지난 후, 마치 첫 데이트 때처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그랜트가 피오나를 찾아가지만, 피오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브리라는 남자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를 챙기기만 할 뿐이다. 그랜트는 자신을 봐 주지 않는 피오나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지만 피오나는 그를 늘상 찾아오는 방문자로 알 뿐. 남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그의 헌신에 감동하면서도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니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평생을 함께해 온 동반자가 어느 날 기억을 잃기 시작해 나의 존재를 아예 모르게 되다니. 이건 사별보다도 더 슬픈 일이 아닐까. 그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되, 나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잊은 채라니. 그런데 그는 혹시 피오나가 가면을 쓴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다 그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생각을 함직도 하다.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음... 아주 현실적이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이 분은 정말 단편에 강한 분이시구나!!

 

  단편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수식어가 붙은 앨리스 먼로의 책을 두 권째 만나 보면서 그녀의 스타일에 적응이 됐는지 처음 읽었던 행복한 그림자의 춤보다 더 쉽게 넘기면 읽을 수 있었다. 단편이라고 해도 꽉 찬 내용으로 처음에 했던 '단편 소설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라는 내 생각이 저 멀리 사라지게끔 해 준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가 쓴 책이 요새 눈에 많이 띈다. 언제부터였더라? 그녀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던 터라 노벨문학상 수상의 결정적인 작품이라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부터 먼저 잡았다. 단편 소설을 꾸준히 써왔으며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작품 발표를 하고 있는 그녀의 소설이 궁금했으니까.

 

  작업실부터 마지막에 실린 행복한 그림자의 춤까지 1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는데 첫 작품부터 상당히 묵직했다. 아직은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게 아무렇지 않을 때가 아니어서일까. 자기만의 작업실을 얻어 글을 써나가고 있는데 자꾸만 방해하는 주인집 남자. 게다가 나중엔 그녀를 의심하기까지 하는데... 참, 어지간히도 답답하고 힘들게 한다. 결국 그는 그녀가 작업실을 떠나도록 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다.

 

  어떤 바닷가 여행은 일흔여덟의 할머니와 손녀 메이가 나온다. 고집스럽고 손녀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할머니에게 어느 날 몇몇 불면증 환자를 고쳤다는 최면술사가 찾아온다. 지금까지처럼 믿지 않는다며 최면술사와 힘겨루기를 하던 할머니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라고 한다. 자유를 갈망하던 메이는 할머니가 패배하기를 바라는데... 마지막 장면에선 꽤 섬뜩했다.

 

  표제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까지 어찌 보면 소외된 우리 사회의 비주류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로 곁에서 보고 쓴 것처럼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런 삶이 있긴 하겠거니 생각은 하면서도 알고 싶지는 않은 면면을 보게 되니 그런 걸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인 걸까. 단편이지만, 장편 소설 못지않게 이것저것 담아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