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에 쓰인 충격적인 말, '불이 나던 그 날, 아무래도 딸을 구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때문에 눈에 띄는 책이었지만 쉽게 잡지 못하다가 이제야 읽었다. 표지 그림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여고생이 다세대 주택에서 뛰어내렸고 그 엄마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이렇게 된 것이 믿을 수 없다."며 말하는 기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을 열어보면 모성에 대하여(고등학교 선생님이 화자다), 엄마의 고백, 딸의 회상이라는 작은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된 이야기는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다. 같은 사건인데도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사뭇 다른 부분이 있다.
근데 엄마의 고백 처음 부분부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이 여자는 뭔가가 달라. 이런 생각이 든 건 그녀가 사는 세상의 중심이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이 어머니를 위해서라니... 어린아이가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까 싶지만, 성인 여자가? 심지어 남편인 다도코로와 결혼하게 된 것도 (아빠가 연상되는 부분이 조금 있기야 했지만,) 엄마가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라니. 특히 딸을 낳은 순간부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딸을 낳자마자 엄마가 실망하시면 어쩌나 생각했다가 잘했다고 칭찬받자 안심하고. 딸이 외할머니와 함께 잠드는 걸 보고 엄마와 함께 자다니 부럽다며 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뒷산이 무너져 장롱에 딸과 엄마가 깔리게 되자 엄마를 구하려고 하다 결국엔 딸을 선택한다.
고지대에 있던 아름다운 집이 화마로 사라진 이후, 모두의 인생이 바뀌었다. 늘 그늘이 드리운 그림을 그리곤 했던 남편 다도코로가 딸이 태어나면서 따뜻하고 밝은 그림을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다도코로 식당을 열던 일도 다시는 없었다. 집이 없어진 이후 시댁에 들어가서 열이 펄펄 끓는 날에도 논일을 하러 가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생활비는 남편 다도코로의 월급만으로 쓴다. 궃은 일을 다 시키면서도 나무라기만 하는 시댁 식구들도 이해 가지 않지만, 무슨 소릴 듣건 조용히 있기만 하는 다도코로도 이해 가지 않았다. 대체 왜?!
여기서 마음에 든 건 딸 하나뿐이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아무 말 못 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한 딸의 항변만은 속이 다 시원했다.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가엽고 짠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서인지 조금 뾰족한 부분이 있는 건 남자친구 도루와 얘기하면서 조금씩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금지옥엽으로 키웠다'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떳떳하지 않기에 과장해서 표현하는 거라는 데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소중하게 키웠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금지옥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물론 이 이야기에서 '금지옥엽'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단어가 되기는 하지만.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성질도 아니고, 모성이 없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모성애가 싹트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고요. 거꾸로 모성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딸이고 싶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무의식중에 자기 안의 모성을 배제하는 여성도 있어요(p.229)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애정에 대해 다루고 있어 모성이란 과연 뭘까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말하고 싶던 건 저 문장이 아니었을까. 작중 화가의 입을 빌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성은 본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출구 없는 컴컴한 터널을 헤매는 기분이라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전작 '고백'과 마찬가지로 문제작이 아닐 수 없는 '모성'은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기에 읽기는 힘들지만 괜찮은 책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