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그컴퍼니의 책 중에서 내가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북로그컴퍼니라는 출판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라는 인권에 대해서 쓴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평소 별 생각하지 않고 있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서 이런 멋진 책을 낸 출판사가 있다니! 해서 평소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출판사의 이름을 알아두었었다. 그 후에 이 책을 통해서 또 한번 북로그컴퍼니의 책을 읽게 되었다.

 

하버드 의대생인 저자가 휴학을 하고 최빈국인 볼리비아에 봉사하러 간다. 바로 볼리비아 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표지부터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시사하는 것 같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아이들이 갈 곳을 잃고 서 있거나, 헤매고 있는 사진. 어두운 사진이 이들의 삶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저자 후앙은 볼리비아로 떠난 1997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들려준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메르세데스라는 소녀는 그녀의 팔에, 몸에 면도칼로 자해를 하여 그 통증을 즐긴다. 하도 담담하게 행동하기에 책을 읽다가 너무 놀랐다.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닐까?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병까지 있었다. 후앙도 충격을 받았지만, 책을 읽고 있던 나 자신도 굉장히 놀랐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그녀같은 아이들은 정말 많았다. 거리에서 사는 아이들은 시너를 흡입하고, 폭력을 쓰기도 하고, 알콜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또 여자 아이의 경우엔 매춘을 하거나 아니면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거리로 내몰린 이유에는 원래 거리에서 살았기 때문도 있지만, 부모가 그들을 집에서 내쫓았기 때문인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나 친지로부터의 폭력이나 성폭행을 피해서 거리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정말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상황들...

 

거리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후앙의 노력과 그것이 생각대로 잘 되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참 착찹했다. 볼리비아에도 고아원이 있지만, 애정으로 대해주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심지어 학대하는 곳도 있기에 아이들은 차라리 거리에서 지내는 것이다. 아이들과의 대화로 그들의 현실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저렇게 살도록 부모가 내버려 둘 수 있을까?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으면서도 아이들을 내버려두다니! 답답했다. 낳는다고 다 부모는 아닌 것 같다. 어찌 부모가 자식을 그리 학대할 수 있는지... 후앙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그 중 비키라는 아이는 후앙의 기도가 닿아 그녀의 생활을 변화시킨다. 그들에겐 후앙처럼 애정을 쏟고 믿어 줄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후앙은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한다.

 

후앙은 그 약속을 지킨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아니기에... 후앙은 '볼리비아 거리의 아이들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2001년 볼리비아 라파스에 첫 번째 집인 '오가르 베르나베'를 만들고, 그 후에 2005년 두 번째 집인 '오가르 레나세르'를 짓는다. 후앙은 의대 메디컬센터에서 내과 및 소아과 환자들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볼리비아의 아이들을 위한 운동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거리의 아이들은 물질적 도움을 바라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인간으로, 어린이로 보는 것이라고 동정과 용서가 아닌 진심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후앙은 말한다.

 

난 내가 본 것밖에 모르기에 이렇게 거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책의 내용은 겪은 것을 쉽게 말해주는 식이라 쉽게 쉽게 넘기며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으며 봤기에 쉬이 넘기며 읽진 못했다. 그리고 후앙처럼 이렇게 10년 이상 꾸준히 심지있게 프로젝트를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오늘도 거리의 아이 1억 명 중 한 사람, 한사람이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왕따를 당해 자살한 소년의 주변 인물들이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겪은 이야기라는 책 소개와 십자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것 같은 묵직한 무게를 상징하는 제목이구나 싶었다. 나는 다행인지 그다지 남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거나 그것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된 적이 없었지만,  내 주변에는 어린 시절에 왕따를 겪어 본 사람이 좀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소설의 주 포인트는 남은 사람들의 상처와 그 치유에 맞춰진 것일까 생각하면서 펼쳤다.

 

자살한 소년 후지슌의 시신을 가장 처음 발견한 그의 아버지, 그리고 후지슌과의 추억 없이는 허물어질 것만 같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그의 어머니, 왕따당하고 있는 형을 방관하기만 한 나를 가슴 깊이 미워하고 있는 후지슌의 동생 겐스케, 유서에 절친이라고 적힌 나(사나다 유), 마지막으로 후지슌의 짝사랑 상대였던 나카가와 사유리 이 다섯 명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주인공인 유는 자살한 소년 후지슌의 유서에 절친이라 적혀 있지만,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 시절엔 절친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왜 자신이 절친이라고 적혀있는지 의구심을 갖다가, 한참 후, 그가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왜 후지슌이 자신을 절친이라고 했었는지. 사유리는 자신의 생일에 후지슌이 자살을 한데다, 죽기 바로 전에 전화를 걸어 만나고 싶다는 것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것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며 산다. 겐스케도 마냥 어리광쟁이이기만 했었는데 형의 자살 이후로, 친하게 생각했던 나를 증오하며 형의 부재 중에도 늘 드리운 그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후지슌의 자살로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부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이 사뭇 대조적인데, 어머니는 후지슌과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더 그러모아 그 흔적을 느끼려고 하고, 아버지는 추억에 연연하기보다 담담해 보이지만 결코 용서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의 취재를 위해 온 기자 중에 혼다 씨와 다하라 씨가 나오는데, 다하라 씨는 독자를 대신해서 소설 속에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유가 자신은 자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처음부터 계속 합리화를 하는데,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난 후에는 자기 마음만 편하려고 저렇게 애쓰는 거야? 이럴 때 다하라 씨의 거침 없는 비난에 속이 시원한 느낌까지 들었다. 모두들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애써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독자로서는 공감이 가면서도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달까 그랬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에 20년의 세월을 보내 비로소 조금씩 나아가게 된다. 후지슌 어머니 사후에 후지슌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살했던 감나무를 잘라 없앤 후 아들이 세계여행의 마지막에 가고 싶다고 표시해놨던 스웨덴의 '숲의 묘지'로의 여행을 한다. 사유리는 결혼하여 엄마가 된 후에도 여전히 9월 4일이 자신의 생일이 아닌 후지슌의 기일이었지만, 아이 둘이 아픈 통에 정신이 없다보니 9월 4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채 흘러보내며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는다. 유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후지슌의 마음을 알게 되고...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모님의 아이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아니 특히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이 책에서 유가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후지슌의 아버지의 죽은 아들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드리워져 있기에. 왕따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물론 모든 왕따가 자살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할 수가 있다니. 시종일관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자는 가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이것이 이 책, 남자의 공간의 부제이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창가에 턱 올리고 쉬고 있는 남자의 뒷 모습이 있는 표지만 봐도 여유와 느긋함이 느껴진다. 여자들은 힘들 때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남자는? 남자들은 흔히 동굴로 들어간다고 해서 인지 책의 띠지에 그대만의 행복한 골방으로 들어가라!라고 적혀 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으로 술이나 담배가 모두가 아닌가 싶은 남자들을 위한, 그들을 위로해 주는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을 하며 하나 하나 페이지를 넘겼다.

 

이 책은 이문희, 박정민의 공저로 이들은 상담심리학을 대학원에서 전공하고, 20~40대 남성들을 위한 상담을 해 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심적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에게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 책의 저자는 여성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우리 사회 남성들의 현주소를, 2부에서는 남성들을 힘들게 하는 고통의 원인 중 6가지를, 3부에서는 그 고통을 치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알려 준다.

 

 

 

'페르소나'라는 것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로,

현대의 우리는 맡은 역할에 따라 아버지/아들/선배/후배의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  

이 역할에 대해 과한 동일성을 부여하면 진정한 '나'를 잃고 살게 된다.

 

 

작은 소 테마별로 남성들의 현재 괴로워하는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상담 사례를 하나 하나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꿈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는 남성은 어린 시절 잔소리와 통제가 심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표현할 수 없어 무의식이 표출되는 꿈에서 그 존재을 드러냈다고 한다. 상담을 거쳐 어릴 때 하지 못했던 말(=하면 안된다고 사회적으로 학습되었던)을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함으로써 치유가 되었다고.

 

책에 나오는 상담자들은 남성이지만, 여자인 독자가 읽어도 도움이 될 것들이 많다. 이 책의 주 포인트는 남자들은 그들만의 장소인, 골방이 필요하다! 가 아니라 우리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과 고통의 원인을 찾는 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왜 타인의 사랑과 관심에 목을 매는가는 SNS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뜨끔할 내용이다. 나 또한 블로그를 하던 초기에는 외적인 것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왜 그리 근본적이지 않은 것에 나는 관심을 가지는 건지, 생각하면서 관심갖는 것을 그만두었었다.

 

 

사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고통보다는

나중에 해도 될 고민을 미리 한다든가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고통이 더욱 많다.

 

 

치유를 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심리적 문제로 내가 얻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를 가져오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섭식 장애의 경우, 음식을 많이 먹고 구토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을 구토로 완화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주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토닥여 줄 필요가 있다.

 

골방 작업으로 스스로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좀 더 성숙해졌다 싶은 생각이 들며 동시에 자신의 가장 싫은 모습과 만나 더 나빠졌다는 생각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리 변화하면서는 지금까지의 나를 인정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데, 이 때 기분이 상당히 불쾌하다. 내가 그동안 지금까지의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부정했었던 나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분을 이겨내야 진정한 변화가 온다고 저자는 말을 한다.

 

이 책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쉽게 지나치고 말아버리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휴식처가 필요하다는 한 마디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물론 수록된 상담 예가 모두 남자라서 남자라면 ~할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나도 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남자든 여자든 같은 인간일 뿐인데 왜 남자들에게는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이제부터라도 우리 집에 있는 남자들에게도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