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일본 소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는 읽어봤지만, 소설은 처음이었기에 두근거렸다. 표지엔 정말 제목 그대로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스탠드, 소파, 조개껍데기, 와인, 고풍스러운 전화기 등... 이런 잡동사니가 의미하는 건 뭘까?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는 위험한 스캔들'이라고 적힌 띠지를 벗겨 내며 책을 펼쳤다.

 

이 소설은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한 챕터에서는 마흔다섯 살인 슈코의 시점으로, 다음 챕터에서는 열다섯 살인 미우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두 사람 모두 '사랑'하는 '여자'이기에 화자가 바뀌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책 소개만 봤을 땐 중년의 여인과 소녀가 등장하기에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차이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슈코가 남편인 하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억누르는 모습이나 하라에게 미우미가 전화를 절대 안 걸 거라고 하는 거라든가. 사랑 앞에서 여자의 행동은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은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걸까?

 

슈코와 하라 부부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슈코는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해방감을 맛보는 동시에 그와 떨어진 것을 불안해하며 자신이 그에게 속해 있음을 재확인한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자고도 그게 뭐 어떠냐는 식인 남편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그런 남편의 여자들까지도 받아들이는 슈코. 그녀도 남편 외의 남자와 관계하지만 항상 남편만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하라에게는 다른 여자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글쎄... 사랑의 확인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고 있긴 한지... 그럴 수도 있나 싶어서 그리 공감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미우미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고나 할까. 엄마와 살고 있는 미우미는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의 연애 그리고 아빠의 연애를 지켜봐오고 있기에 그리고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불안정할 때이기에. 그래도 미우미의 행동도 보면서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뻘인 남자를, 그것도 그 아내와 장모 되는 사람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사랑하게 될 정도로 그 하나밖에 모르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 그 하나에 대해서만 담은 소설은 오랜만에 읽었다. 도덕이라는 틀 속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지만,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난 이들처럼 사랑해본 적이 있었을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이번에 영화 때문에 관심이 생겨 오랜만에 고전 문학을 읽게 되었는데 난 처음 읽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너무 익숙한 것이 전에 봤었던 건데 기억이 안 났던 거구나. 어쨌든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고 하니 차분히 읽었다. 아름다운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젊고 미남인 시종무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져 가정도 내팽개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처음엔 안나가 자신의 오빠가 바람을 피워 속상해하는 언니를 위로해주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런 그녀가 그런 관계로 빠져들 줄이야. 정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가보다. 읽다 보니 만화로 봤던 러시아 시인 푸시킨과 나탈리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시절엔 이런 일이 실제로도 종종 있었던 걸까? 정략결혼처럼 하다 보니 결혼 후에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안나 카레니나는 부활, 전쟁과 평화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읽으면서 왜 도대체 이 안나 카레니나가 걸작에 들어가는 걸까 의문을 가지며 읽었다. 다 읽고 책의 줄거리를 동생에게 얘기해줬더니 완전 막장드라마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재미는 있었지만 말이다. 읽다 보니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섬세한 표현 때문인 걸까 싶었다. 안나의 행동이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그리 공감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미 전개를 알고 있기에 흥미가 없는 게 당연한지도. 하지만 표현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의 아니, 사람의 심리를 어찌 그리 잘 표현했을까?

 

사랑을 선택한 안나와 브론스키의 생활은 사소한 것으로도 자꾸만 마찰을 일으킨다. 아들이나 남편에게 불행을 안겨줬더라도 그런 만큼 잘 살겠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사랑을 선택하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안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브론스키는 직업- 때문에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한 점이 생기면 그 파장이 다른 사람보다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나는 아들 때문에 이혼을 하지도 않고, 브론스키와 살고는 있지만 어느 한 쪽도 깨끗이 정리하지 못하고 애매한 상태라서 그런지 더욱 위태롭다. 브론스키의 사랑에만 의존해 사소한 일에도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집착하던 그녀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자살 직전의 그녀가 진단을 받았다면 우울증일 것이리라.    

 

안나의 이야기 외에도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데 난 이 커플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농장을 경영하는 귀족 청년 레빈이 우여곡절 끝에 키티와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참 재밌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한 번에 결혼으로 골인한 것이 아니라 한번 실연한 레빈이 겪는 심리 변화라든가 레빈이 생각하지 못했던 결혼 후 남녀의 차이로 인해 이해가 가지 않는 사소한 일이라든가. 심적 변화가 있다고 해서 바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매우 공감이 갔다. 그리고 무신론자인 레빈이 형의 죽음을 계기로 깊은 사색을 거쳐 선의 의미를 깨닫는 부분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