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폴 오스터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림같은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이 책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큰 나무가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 남자가 작게 그려져서 일까? 아니면 하필 뒷모습이어서 일까? 보고 있으니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인 마일스 헬러는 폐가 처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금융 위기로 주인을 잃은 집을 수리하여 청소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는 알고보면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 다른 욕망들은 하나씩 줄였지만, 책에 대한 욕망만은 줄일 수 없는 청년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나게 된 문학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필라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진 후, 그 영향으로 쭉 살아왔던 플로리다를 떠나 뉴욕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뉴욕에서 빈 집을 다른 세 명과 함께 무단 점거해서 살아간다.

 

장래가 유망했던 마일스는 왜 폐가 처리 업무를 하며 살까? 형의 죽음과 그리고 부모님의 대화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마일스의 동거인인 빙 또한 특이한 인물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주인이 없는 빈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앨리스도 엘런도... 이들은 젊은이들인데도 금융 위기 때문에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서인지 주류라기보단 비주류인 소외된 자들이다. 각자 상처를 가진 그들이 함께 살면서 조금씩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면서 작은 희망이 엿보인다. 하지만 퇴거통지서를 받고 마일스가 경찰을 폭행하면서 다시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그래도 마지막 페이지에 마일스의 생각을 보니 작은 희망이 보여서 내내 힘들고 아파했던 그들이지만, 안심하면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러시아라는 나라는 왠지 낯설다. 우리나라와 인접해 있는 세 국가 중에서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중국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리라. 지리적으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는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 중에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등 꽤 많은 작품들이 은근히 유명해서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서 러시아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들에 대해 다소 가볍게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맛있는'이라는 수식어가 좀 가볍게 느껴졌던 것.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음식이라는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책이었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에서 맛집을 찾아가는 프로그램같은 미식 코너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음식점에도 어디어디 프로그램에 나왔던 맛집!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해 놓기 시작했고... 나도 뭘 먹으러 갈 때엔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을 찾아가고 있다. 이왕 먹을 음식, 좀 더 맛있는 것을 골라서 먹자는 마음으로. 하지만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미식이라는 것에 얽매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정말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의 음식으로는 미식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것까지 먹기도 하니 말이다. 다른 것보다 먹는 것에 너무 초점을 맞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러시아의 작가는 미식가가 많았는데, 그 중 톨스토이는 미식을 혐오하고 절제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에게 미식이란 배고픔을 덜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먹는 것이고, 이 쾌락을 위한 음식이 나쁜 이유는 쾌락의 만족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에는 끝이 있지만, 쾌락에는 끝이 없기에 끝내 타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식에 너무 치우치면 톨스토이가 지적한대로 미각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음식에 지나치게 탐닉할 수 있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문을 열어 준 음식의 서구화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문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곤차로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음식들의 의미에 대해, 작가가 어떤 식으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나도 읽어봤던 책에서 식사 장면이 나왔을 때 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명을 하기 위해 작품의 일부를 발췌해 수록하고 있기에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 예술의 섬이라는 수식어에 끌려서 잡은 이 책은 사진이 잘 배치되어 있어 화보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오겠지만, 일본에 있는 섬 중 하나인 나오시마는 현대미술의 메카라고 불린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도쿄, 오사카, 치바, 아오모리 등 꽤 많은 일본의 지명들이 익숙하지만, 나오시마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나오시마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현대미술도 잘 아는 편은 아니라서 천천히 책을 넘기며 읽고 있는데 이우환 미술관에 이르러서야 몇 해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 예술가인 이우환의 미술관이 일본에 생겼다! 라는 기사를 봤던 게 떠올랐다. 아아~ 그 때 거기가 여기였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가속도가 붙어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