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딘가에도 속박되지 않은 느낌의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의 글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내가 절에 더 가깝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만. 일본판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가 존경하는 100명의 일본인’ 중 하나라는 마스노 슌묘 스님의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이 있어 덥석 집어 들었다. 스님은 이 책으로 처음 알았지만 집착과 망상, 번뇌를 벗어나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기 위한 '인생처방전'이라는 문구에 끌렸기 때문에.

 

마스노 슌묘 스님은 겐코지의 주지 스님이자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며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에 실린 글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스님이 말하는 선어란 선종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있는 것으로 선승이 오랫동안 목숨을 건 수행을 통해 얻은 자유롭고 너그러운 마음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이 선어를 화두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하나씩 보여준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p.106)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또 원망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소게서 자기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요.

 

원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신념.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각오.

 

인생에는 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 중요한 것은 지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숙명입니다. (p.131) 

평소엔 그렇지 않지만 가끔씩 욱하는 성격을 가진 나,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며 고민하는 나, 아직 하지도 않아도 될 고민을 벌써부터 하느라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 나,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얘기를 듣고 나면 뾰족뾰족하게 말이 나가곤 하는 비뚤어진 면을 가진 나. 스님이 일러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이런 내게 꼬옥 필요한 것들이었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적응하기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에게 필요한 내용이 많다. 특별히 여기서 처음 들었다! 이런 내용은 없지만 다 아는 이야기들을 잘 엮어 펴낸 책을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옅은 녹색이 많이 쓰인 책이라서 그럴까? 읽으면서도 휴식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책보다는 좀 불교적인 냄새가 살짝 나는 책.

도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일까? 평소엔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지만 바로 이 책,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를 읽으면 책을 덮을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법이 정의의 실현, 강제성을 갖고, 위반시 처벌이 있는데 반해, 도덕은 선이며, 강제성이 없으며, 위반시에도 사회적 비난만 있을 뿐이라는 정도의 개념만 알고 있는 내게 이 책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선 총 460여 페이지에 걸쳐 도덕에 대한 다양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제기하기도 하고 답을 해주기도 한다. 서론과 5장까지의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주가 너무 많아서 어찌보면 좋기도 하고 어찌보면 좀 불편하기도 했다. 물론 상세한 설명은 좋지만, 주석 중에 긴 것은 내용이 4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까지 있었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면서 보는데 좀 맥이 끊기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표현이 너무 여과없이 직설적이라서 읽으면서 불편할 때도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성적 학대 스캔들 부분에서 특히나 그랬다.  

 

내겐 이 책이 솔직히 어려웠다. 읽기는 읽되,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는다기보다는 글자를 읽는 느낌이라고 하면 딱 맞을까? 물론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진지한 고찰을 하는 책은 처음이라서선지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이해를 100% 하지는 못한 책이라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젠탱글이라는 생소한 제목의 책을 보고 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표지에 해변가에서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해맑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손길이 갔다. 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이라고 적혀 있는 부제를 보고 낙서가 명상에 쓰일 수 있을까? 점점 더 호기심만 생기는 책이라 마음 잡고 보기 시작했다.  

 

zen(선)과 tangle(어지럽게 얽힌 선)의 합성어인 젠탱글은 2005년에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연히 이 젠탱글이란 것을 알게 되어 그 매력에 빠진 후 젠탱글 공인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명상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니... 저자는 이 젠탱글로 암을 이겨냈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매일 공책 끝에 끄적끄적하던 낙서가 이렇게 큰 효과를 가져올 줄이야! 이런 게 명상일 수 있나 살짝 믿기지 않지만, 시간이 지독히도 가지 않는 지루한 수업시간을 크게 단축하도록 도와준 낙서의 힘을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 법도 하다.

 

이 책은 명상 책이라기보단 패턴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가득히 펼쳐져 있는 젠탱글 작품은 어찌보면 규칙이 딱 보이는 것일 뿐인 미술 작품같아 보이니 말이다. 젠탱글의 여러 패턴들의 기본 방식을 설명해 주고 그 옆에 이런 패턴을 응용한 젠탱글 작품이 실려있다. 작품을 봤을 때는 어려워보이지만, 아주 단순한 패턴의 조합이기에 해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 그리고 색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젠탱글에 쓰이는 미술 재료들의 설명까지 잘 되어 있다.

 

젠탱글이 낙서라는 말에 웃어 넘길 것이 아니라 꽤 주목할 만한 것 같다. 단순한 패턴을 따라 그리다보니 마음이 점점 안정되고 편안해지니 말이다. 어쩌면 한번에 한 가지의 행동을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한번에 처리하는 멀티플레이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이런 단순작업을 할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앞으로도 내게 명상이 필요할 때엔 책을 펼쳐서 하나씩 해 볼 생각이다. 명상이라고 해서 따로 시간을 내서 한다는 건 쉽지 않으니 이렇게 펜과 종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낙서 명상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