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건 과거에 있었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가? 를 기억해내는 것도 과거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니까. 그런데 과거를 바꾼다니? 미래를 만든다고? 기억이라는 것은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인데 이제 무슨 말일까?

 

  하나의 실험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준 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 그룹은 긍정적인 기분이 들도록 기분 좋은 일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그룹은 부정적인 기분이 들도록 기분 나쁜 일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처음에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해보라고 하니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현재' 긍정적인 기분인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즐거운 장면을 많이 기억하고, 부정적인 기분인 사람은 슬픈 장면을 많이 기억했다. 즉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이라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는 것보다는 현재의 기분에 익숙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 것이다. 생각해보니 늘 긍정적인 친구는 대개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할 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정말로 쟤는 저리 좋은 일만 있었을 리는 없고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기억하나 봐 했던 게 기억났다. 아! 정말 기억이란 건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과거를 만들어내는 기능인가보다. 카운슬링도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의미를 바꾸는 그런 작업이지, 참.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게 있다. 고통에서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하면 고통을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참아내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처럼 성공 경험이든 실패 경험이든 학습된 기억이 있다는 건 앞으로 내가 할 행동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성공한 또는 좋은 기억에 접속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억이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기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그 어려움(=부정적)을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사실은 객관적인 것이지만, 그것에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긍정적인 것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쓰면 부정적인 것 속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하려고 애쓰다 보니 그것이 익숙해졌지. 우리가 힘든 일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 힘낼 수 있도록 하는 건 좋은 기억에 접속하는 것이니 좀 신경쓸 필요가 있겠다.

 

  내용이 쉽게 쓰여 있고 3페이지에 한 이야기씩 나오기 때문에 가볍게 출퇴근길에 읽기 좋았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몸이 아프면 당연스레 병원에 가거나 약국을 가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약으로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약을 먹고 있었으니 난 참 약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 내게 다소 과격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약, 먹으면 안 된다』의 표지엔 캡슐 알약이 악마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그림이 있어 약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옆에 쓰인 글은 '감기약, 진통제, 스테로이드 약물, 두통약, 수면약 등 모든 약은 인체에 독이다!' 다른 약은 잘 안 먹지만 감기약은 정말 자주 먹고 있는데...

 

  전체는 15개 챕터로 챕터 1, 2는 왜 약을 먹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려주고 있고, 챕터 3~15까지는 위장약, 감기약, 두통약 등 한 챕터 당 한 가지씩 알려준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가 하는 일은 자연치유력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 의학부에서는 자연치유력을 가르치지 않고, 치료법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언제 가르치는가? 600항목이 넘는 가이드라인에 의해 약을 처방해준다고 한다. 그 가이드라인은 제약회사로부터 신임을 받는 교수들이 작성한 것이다.

 

  약이 병을 낫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스라엘, 콜롬비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파업을했더니 그 동안은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가 병원을 재개했더니 사망률이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파업 동안엔 예외적으로 구급치료만 했기에 만성질환 치료를 중지한 것이 환자들의 생명을 도로 구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약을 멀리할수록 병원에 가지 않을 수록 죽음과 멀어지다니.

 

  약의 기본 원리는 독으로 병원체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 균, 바이러스, 암세포는 독을 견디고 살아남기 위해 자기 유전자를 바꾸고 그 결과, 내성균이 점점 더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약이 잘 듣지 않게 되고 그럼 그 내성균을 잡기 위한 약이 개발되고 그런 식으로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 두통약, 아토피약 등도 자꾸 먹다 보면 쉽게 낫지 않는다.

 

  19세기 초까지 유럽에는 유럽에 5가지 유파가 공존했다. 자연요법, 정체요법, 심리요법, 동종요법, 약물요법 이렇게 5가지인데 지금 살아남아 있는 건 의료이권과 유착해 있는 약물요법뿐이다. 하지만 이 약물요법에는 근본적으로 병이 낫지는 않기도 하고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에 대체요법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 요법들은 교감신경우위인 약물치료와 달리 부교감신경우위로 우리 신체를 이끌어 면역세포 림프구인 NK세포의 영양원인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고친다' 코너에서는 약이 아닌 대체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병원의 약에 의존하지 않고 해 볼 만하다. 주목할만한 생각이 드는 건 소화불량에 대한 해결책이다. 과식하지 않고 60% 정도로 소식해야 소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느낌이 드는데 읽다 보니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최근 은근히 과식하고 있어서 전과 달리 소화가 안 되었던가 보다. 위 상태가 나쁘면 위를 쉬게 하는 단식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병과 약에 대한 상식과는 확연히 달라서 처음에 읽을 때는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계속해서 보다 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건 자연치유력에 의존하는 것이니 그저 쉬는 게 약이라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말처럼 쉽진 않겠다 싶었다. 아프다고 무턱대고 쉴 수는 없으니 일을 하러 가야 할 테고 일하러 갈 만큼 몸을 추스리기 위해서는 약을 불가피하게 써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이 책으로 약이 모든 병을 낫게 하는데 도와줄 것이라고 막연히 했던 생각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었으니 유익한 시간이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간다. 마치 1+1=2와 같이 당연한 공식이라고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지난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일이 있는데 이곳저곳 옮겨 다닐 때마다 이름과 나이를 물어 왜 자꾸 물어보나 이름은 몰라도 왜 나이를? 이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툴툴거렸던 일이 있다. 병원 사용설명서에 그 답이 있었다. 바로 환자 안전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또는 이름이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이까지 얘기하여 혼동을 막으려 한 것이다. 똑똑하고 안전하게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이 책은 병원에 자주 가는 내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

 

  현대 병원은 전문화되어 있어 각각의 전문 분야마다 여러 명의 의료인을 거치게 되면서 그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병원의 틈으로 생명이 위협받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이런 일은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홉킨스에서도 일어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병원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병원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바로 치즈라고 한다. 치즈는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방어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치즈를 겹겹이 만들어서 환자 안전을 꾀한다.

 

  첫 번째 치즈 : 다섯 개의 알 5R ▶ 약물 이야기

  두 번째 치즈 : 생명을 건 5분 ▶ 진료실 이야기

  세 번째 치즈 : 1+1 ▶ 수술실, 검사실, 입원실 이야기

  네 번째 치즈 : 한 평의 버블 ▶ 감염 이야기

  약물은 처방-조제-투약-관찰의 네 단계를 거치는데 처방 부분은 요즘엔 전자처방시스템으로 하고 조제도 그에 따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자인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곳은 투약과 관찰이다. 입원 환자일 경우엔 약을 받을 때 나이와 이름을 말하고 받은 후엔 약 포장을 확인하고 약을 주러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간호사에게 뭘 묻는다든가 하여 주의를 분산시켜버리면 실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래 환자도 마찬가지로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고 의사의 복약 지도가 약사의 얘기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약을 나눠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증상이 같으면 남의 것으로 조제된 약을 먹는 경우도 있는데 약은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지어진 것이라서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오랜 시간 동안 얘기할 수 없다. 몇 분 안 되는 시간만이 주어지기 때문에 과거에 앓았던 병과 가족력을 말하고 그 후에는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고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처방하는 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 같으면 종이에 써서 가져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담당 의료인이 바뀌는 '핸드오프'도 병원의 틈 중 하나다. 이때에도 환자 안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이 물을 때마다 이름, 나이, 수술 부위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도 이렇게 이전부터 해 오던 이름과 나이를 말하는 것은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환자 자신이 말해주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병원에는 온갖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감염에 주의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 손 씻기이다. 알콜성 손소독제를 이용해 손에서 물감을 닦아내듯 비비며 씻어낸다.

 

  책에 실려 있는 사례를 읽어보면 환자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의사가 주의하라고 했던 것을 어겨서 환자를 죽게 한 경우, 딸이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던 걸 몰라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등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생각지도 못한 참극을 가져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병원에서 치즈를 설치해 둔 것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다 해 놔도 사용하는 사람이 모르면 무용지물이듯이 환자 안전을 위해 병원 사용설명서는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