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탕에 연필로 집의 형태를 만든 책의 표지에, 집짓기에 입문하는 당신을 위한 건축 개념어 사전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건축에 대해 본격적으로 책을 읽거나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다니면서 슬슬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너무 깊이 얘기해주는 책은 소화하기 어려울 테니 뭐로 시작하면 좋을까 하던 차에 건축의 필수 개념을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저자인 더그 팻이 웹사이트인 howtoarchitect.com에 제작하여 올린 콘텐츠들에서 출발한 이 책은 알파벳 A부터 Z까지 각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건축의 기본 개념 26가지를 정리해주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건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꼭 알아야 하는 건축학과 지망생이라거나 내 집을 짓기 위해 건축가와 대화하기 전에 읽어두면 아주 유용할 그런 책이다.

 

  작고 가벼운 145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을 가진 책이지만, 하나하나 잘 보면 버릴 것이 없는 엑기스만 모았다. 건축에 대해서 구체적인 윤곽조차 잡지 못했던 내겐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그리고 건축이라는 것에 설계라기보다는 발명에 가까운 독창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과 설계도면도 풍부하게 실려 있어 한결 이해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건축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았으니 또 다른 건축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졌다. 

  어원을 아는 것은 참 재미있다. 별 생각 없이 쓰던 말이 왜 생겼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일상의 평범했던 것들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말보다는 외래어의 어원에 대해 읽어봤기에 우리말의 비밀이라는 말이 내겐 매력적이었다. 우리말인 한글을 쓰면서 좀 더 의미 있게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복의 열쇠가 숨어있는'이라는 수식어도 흥미를 자아냈다.

 

  세종대왕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인 훈민정음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로 만들었다는 것은 누구든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이 어떤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고 또 생각을 한다 한들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것이 한글이었던 것이다.

 

  어린이, 어른,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비슷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말이 모두 '얼'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얼이 차츰 어리어 가는 사람 또는 얼이 아직 여린 사람, '어른'은 얼이 익은 사람, '어르신'은 얼이 완숙하여 얼이 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르신이라는 말은 나도 많이 쓰지 않아 생소하다고 생각했던 말인데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라는 뜻의 '노인'에 비해 좋은 말이었구나.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누구나 어르신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지만.

 

  그리고 또 아리랑이 참나를 찾는 기쁨을 표현한 노래라는 해석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듣던 아리랑은 외국여행 중에 들어도 애국가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울컥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대표곡이라는 생각한다. 이 아리랑에 대해서 여인의 한을 노래했다는 부정적인 해석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니! 얼을 밝히는 깨달음의 노래라 생각하니 아리랑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책이 150장 남짓으로 두껍지 않으면서도 설명이 쉽고 읽기 편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총 9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본문 내용을 만화로 보여주고 있어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얇은 책이지만 읽는 동안에 우리말에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내용이 쉬워서 청소년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만큼 애정도 생긴다고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우리말 사랑이 더욱 커졌으면 싶다.

 

  어린 시절에 흥미롭게 읽었던,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서 재밌게 봤던 작품으로 정글북이 있다. 어릴 땐 작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역대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이었다. 그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썼다고만 생각했는데 미스터리 단편 소설도 50편 정도 썼다니! 놀라우면서도 그가 어떤 이야기를 썼을지 궁금해서 검은 예언을 읽게 되었다. 표지의 이국적이면서도 딱 봐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여인의 그림에 으스스함이 밀려왔다.

 

  표제작인 검은 예언은 두모이스라는 인도의 의사가 병으로 아내를 사별하고 일에만 몰두하다가 도보여행을 떠난다. 그 길에 함께 한 하인으로부터 죽은 마님을 봤다며 다음 달에 누디아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한 이 소설의 끝부분 또한 담담하게 맺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뻔하긴 하지만 묘사가 섬세해서일까? 쫙 소름이 돋았다.

 

  검은 예언에는 키플링의 미스터리 단편을 모두 10편 수록하고 있는데 조금 김빠지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훌륭한 미스터리 단편들이었다. 특히 환영의 여인에서는 자신이 매몰차게 버린 여자가 죽은 후 그에게만 보이는 환영이 되어 나타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데 광기와 집착이 버무러져 긴박감을 더해주었다. 내겐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려있는 모든 단편이 인도를 배경으로 하였기에 이국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리고 심라나 누디아, 도시 주변의 성곽 등 내가 모르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환상과 유령, 윤회, 환영 등 초자연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미스터리에 꼭 맞는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단편 하나 하나를 읽을 때마다 아껴가며 읽었다. 키플링의 다른 미스터리 작품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