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하는 박경리의 소설 중 두 번째로 읽은 것은 바로 이 '뱁새족'. 뱁새족이 도대체 뭘까? 듣자마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 뱁샌가? 소설을 몇 페이지 안 읽었는데도 그 물음에 관한 답이 나왔다. 생각했던 게 맞는구나.

 

  배경은 1960년대. 프랑스 파리에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유병삼의 눈에 비친 상류 계층을 비판하는 게 내용의 큰 줄기를 이룬다. 이 책에는 가지지 못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한 욕망이 가득한 인물들이 나와 독자로부터 혀를 차게 만든다. 이들은 실제 자신보다 더 높은 계층에 편입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미모 하나로 팔자를 고쳐 보려는 이혼녀, 여자의 순결을 강조하며 여자의 마음이 자신을 떠났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남자,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스타가 되려고 생각하는 순진하다 못해 답답한 여배우, 재산을 보고 결혼하려는 여자의 재산으로 사업할 계획을 세우는 남자, 그리고 화자인 유병삼까지 모두가 뱁새족인 것이다.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그리 두껍지는 않은 책이라 책장이 술술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웬걸? 이상하게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그 형제의 연인들'을 읽었을 때는 마치 만화책을 읽듯이 술술 넘기며 읽었는데. 장르가 달라서일까? 등장인물의 이름이 비슷하게 느껴져 인물이 살짝 헷갈리기도 했지만...

 

  상류 사회를 향한 열망이 그득한 이 등장인물들의 시도는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에 급히 책장을 넘겼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 그 시도가 좌절에 이르고 만다. 물질적인 욕망을 가진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금껏 배워온 것 때문인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서 조금 다른 성향이 있는 것은 유병삼으로 그는 일등시민의 조건으로 지적 충만함을 꼽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로 뱁새족의 행동이 아닐까. 여기서 지적 충만함을 가지려고 하는 행동은 현대 사람들의 행동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고 뮤지컬, 오페라, 미술관/박물관의 전시를 찾고 있지는 않나? 정말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장소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마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지적 충만함을 위해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보니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한참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인 듯.

  과학 전문기자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즌 2인 사이언스 소믈리에. 시즌 1에 해당하는 '과학 한잔 하실래요?'는 읽어 보지 못했지만, 과학에 관한 관심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표지는 트럼프 카드의 킹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인데, 와인 한잔 하라고 권하는 듯하다. 2012년 저자가 발표한 과학 에세이를 추리고 보완하여 실은 것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이라는데 총 40가지의 최신 과학 이슈가 실려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2012년 사라진 28인의 과학계의 별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학 전공을 이쪽으로 하지 않는 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지금껏 정립된 하지만 다소 낡은 과학에 관한 상식이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내겐 이 책에 실린 과학 지식이 매우 신선했다. 예전엔 뉴턴을 봐서 최신 과학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었지만, 그거 안 본 지도 한참이다 보니.

 

  꽤 이슈가 되었던 1일 1식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주변에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세 끼를 먹는 것보다 노화가 더디며(즉, 동안이 된다고...), 장수하게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기에 더 관심있게 읽었다. 1일 1식을 주장한 일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는 정말 완전 동안이긴 하던데... 일명 장수 유전자인 시르투인이 있는데 칼로리가 부족해지면 바로 이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로리 제한을 하기 위해 1식을 권하는 것.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칼로리를 제한할 경우에 젊음을 유지하면서도 암, 심장질환, 당뇨병 같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1일 1식 돌풍이 불었나 보다. 하지만, 또 다른 연구에서는 생명연장 효과가 없었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하지만 나구모 박사가 처음 주장했었던 1즙 1채(밥, 국 한 그릇, 반찬 한 그릇의 단출한식사)처럼 적당량을 먹는 수준의 식생활은 건강과 장수에 충분하다는 게 최근 연구의 결론이라고 한다. 너무 안 먹거나 과하게 먹어서 위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게 여러모로 좋은 습관이구나 싶다.

 

  또 카페인이 없는 커피나무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라든가, 아스피린이 항암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의 햇살을 받아 눈부신 들판을 그린 그림이 눈의 착시 현상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어서 신기했다. 유전자 부분은 조금 어려워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지만, 대체로 쉽게 읽을 수 있게 잘 설명해주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야기마다 6페이지 정도로 짤막하게 다루고 있으면서도 일상에 녹아있는 과학 이슈를 소개하고 있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겠다. 

 우리 엄마는 잔소리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난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숱하게 들어왔던 '공부 좀 해라.'라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엄마한테 한 번만 공부하라고 말 좀 해주라고 부탁을 했을까. 잔소리라는 것이 내게는 듣기 싫은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애정어린 관심으로 들렸던 것이리라. 아마 내가 잔소리에 시달려 본 적이 없어서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난 엄마의 잔소리에 목마른 아이였다.

 

  우리 엄마가 해 주는 잔소리는 아니지만 샐러드앤미미의 주인인 정희경씨의 책, '엄마의 사소하고 소소한 잔소리'라는 책은 제목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엄마는 어떤 잔소리를 해 주는 걸까? 잔소리엔 뭐가 있을까?

 

  핑크빛 바탕에 샐러드앤미미의 토끼 그림이 사알짝 그려져 있는 표지가 사랑스럽다. 엄마가 딸에게 해 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인생/ 남자/ 여자/ 사람/ 요리/ 여행으로 나누어 잔소리가 시작된다. 저자가 떨어져 살게 된 딸인 예빈이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입은 하나요, 귀는 두 개라는 말이 있듯이 당연히 듣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평소에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저자 또한 마찬가지였나 보다. 심리치료사들의 주된 역할은 듣는 것이었다며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그냥 수긍하고 경청하는 그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도 늘 듣는 것을 잘하려고 하는데 사람이라는 게 참... 듣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 답답하여 자꾸만 내 생각을 말하고 말 때가 많다. 다시금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듣고 간다. 친구 사이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고, 무조건 덮어놓고 지나가는 것은 꼭 옳지만은 않다는 것,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그리고 연애보다 더 열중해야하는 관계가 친구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와 닿았다.

 

  내 남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이크림을 바르는 방법, 향수에 대한 것, 옷을 정리할 때 옷걸이를 용도에 맞게 통일하는 것이 좋다는 것, 하이힐을 세련되게 신는 법, 그리고 요리 챕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엄마의 레시피. 굉장히 실용적인 잔소리가 많아서 잔소리라기보다는 조언으로 들렸다. 이렇게 세세하게 말해주는 엄마도 있구나! 어쩌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했기에 정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실려있는 모든 이야기가 엄마의 애정어린 잔소리라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엄마만큼 딸에게 필요한 걸 꿰고 있는 사람도 없을 테니 진실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엄마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오타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점, 그리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음이 들어간 것이 눈에 확 띈다는 점이다. 한 번만 더 교정을 봐서 바로 잡아서 펴냈으면 좋았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