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땐 깜짝 놀랐다. '속옷'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들어왔다'는 말의 조합이 정말 묘~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니?! 하고 책을 살펴보니 전혀! 생각과 달리 매우 모범적인 책이었다. 다큐멘터리 PD인 윤태옥 씨의 중국 민가 기행을 엮은 것이었기 때문에 야한 건 단 1%도 없는 건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속으로 '낚였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책 표지에 나온 중국의 민가(알고 보니 푸젠성의 객가인들이 사는 토루였다)가 이토 준지 만화 중 소용돌이에서 마지막에 나왔던 사람들의 집단 거주촌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기에 또 흥미가 생겼다. 책 제목의 유래는 책 표지에 적혀있었다. 중국에 있는 지독한 술꾼의 말에서 딴 것인데 그는 술을 마시면 옷을 벗는 주사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그의 알몸 추태를 힐난하자 그가 한 말, "나는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즉 그가 말한 속옷에 해당하는 집을 탐험하는 이 책에 걸맞은 제목이었던 것.

 

  집에는 그 속에서 살던 사람들의 생활이 묻어난다. 그리고 역사가, 문화가, 정신이 깃들어있다. 사실 우리의 전통집에 관해서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데 이렇게 이웃 나라 중국의 민가를 상세히 알아본다는 게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꽤 받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 비교하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중국은 한 나라이긴 하지만, 한족 이외에도 고유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비슷한 듯 다른 각양각색의 민가를 구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가장 처음 나온 건 베이징의 사합원. 가장 중국다운 집이라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어!! 판관 포청천에서 많이 봤던 구조 아냐? 싶어 반가웠다. 사합원은 네 채의 건물이 모여서 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ㅁ자 집으로 자손이 늘거나 하여 방이 더 필요하면 정방 뒤에 후원과 후조방을 추가하여 확장할 수 있다. 이것을 반복하여 최대한 확장한 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금성이다. 이 사합원에서 여성들은 대개 깊숙히 위치한 후조방에 거주하게 되어 있어 이는 여성을 억압한 가부장적 사회제도를 보여준다.

 

  사합원뿐만이 아니다. 후이저우의 전통건축인 휘파건축에서도 가부장적 사회제도를 엿볼 수 있다. 휘파건축에는 마을을 나서는 길의 출발점이며, 대문과 표지의 기능을 하는 패방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이 열녀문 같은 기념비 성격을 띤다고 한다. 패방은 충효절의의 공덕을 새겨 유교적 가치를 고양하였다는데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뭘까? 그건 여자들의 삶을 보면 답이 보인다. 이곳의 여자들은 태어나면 좁은 2층 구석방에서 거의 갇힌 채로 일생을 보냈다. 외출은 거의 하지 못하며, 나이 50세를 넘겨서야 겨우 자유로이 외출할 수 있었던 마치 감금된 채로 살았던 그녀들의 삶. 남편이 장삿길을 떠나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시부모 봉양과 자식 양육에만 집중했었기에 이들을 옭아매기 위해 유교적 도덕규율이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나 안쓰럽다. 중국에서도 휘파건축이 남자에겐 금고(金庫), 여자에겐 금고(禁錮)였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소위 '여인국'도 있다. 윈난과 쓰촨 경계에 있는 루구호 인근에 사는 모쒀족이 그 주인공. 이들은 목조건축인 목릉방을 짓고 사는데 주택의 중심이 되는 정방은 할머니 방이다. 할머니 방 안쪽에 있는 생사간이란 방은 출산의 공간이 되기도 하며, 장례에서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가정을 이루지 않고 주혼이라는 혼인 습속으로 대를 이어간다. 그것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화루의 창문을 통해 남자가 출입하여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정을 이루는 결혼은 그들에겐 없다. 여자의 방 창문을 열어줄지 말지는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려있다고 하니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수 있다. 모계사회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런 걸 볼 때 여성의 지위가 비교적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의 도시 베이징, 상하이로부터 소수민족의 마을까지 속속들이 민가를 관찰한다는 거, 상상도 못했던 거라서 신기해하며 저자의 발길을 따라 구경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건축가가 22,000킬로미터나 되는 걸음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거라 그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환경과 역사적·사회적 영향으로 집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특히 우리나라의 집에 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번 중국 여행을 했지만, 늘 일반적인 호텔에서만 묵었던 게 아쉬워졌다. 다음에 중국에 가면 사합원 스타일의 호텔에서 묵어보리라.

  머리가 복잡하여 뒤죽박죽되어 어지러울 땐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수많은 상념을 떠올렸다 가라앉혀줄 것만 같다. 어쩌면 환상에 가까울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직 혼자서 여행한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 보고 싶을 땐 대리만족 격으로 여행 에세이를 보곤 한다. 아... 이 사람은 이런 걸 보고 이렇게 느꼈구나 저 사람은 저랬구나 하면서 말이다. 최갑수 씨의 여행에세이 중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은 꽤 입소문이 난 작품이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개정 증보판인 이 책을 발견했다.

 

  사진이 많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메시지가 들어있는 사진이다. 특히 사진으로 양쪽 페이지를 꽈악 채우고 있는 건 압권이다. 멋진 풍광과 함께 저자나 독자나 이심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진. 이런 사진을 잘 찍은 사진이라고 하나 보다. 보는 사람에게 말 거는 사진. 이렇게 책이라는 걸 매개로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나도 이렇게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사진이 가득하다. 실려있는 '인연'에서 스님이 말한 대로 저자는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닐 운명이었나 보다. 난 어떤 운명을 타고났을까? 저자처럼 저렇게 내 옷을 입은 것처럼 잘할 수 있는 걸 내가 찾은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나타날까?

 

 

 

  멸치를 잡는 배에선 잡고 나서 '탈망'이라는 작업을 한다. 이는 네 시간은 계속해야 하는 고된 일인데 이 작업을 해내려면 일종의 최면 상태, 즉 몰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살다 보면 몰입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난 몰입을 즐기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몰입을 해서 공부해야 시간을 잘 썼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고, 심지어 게임을 할 때도 정신없이 빠져들어 하곤 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여기서 또 한 번 몰입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라는 걸 확인했다.  

 

 

 

  열심히 살다 보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가 있다. 그 상태에서 살짝 조금 더 무리하면 바로 몸살이 난다. 어릴 땐 어려서 아프겠거니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아픈 건 매한가지다. 어른이면 뭐든 괜찮을 거라고 어릴 땐 어른은 다 천하무적인 줄만 알았는데... 게다가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더욱 외롭고 힘들다. 비애를 예방하는 것은 우습게도 영양제 한 알일 수도 있다는 것. 아프면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비관적이 되기 쉽다. 평소에 우습게 보일지 모르는 영양제 한 알이 이렇게 사람을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게 할 줄은.

 

 

 

  배워가는 여행의 덕목. 배나 차를 놓치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이게 참 어렵다. 다음 배는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데, 출근길에 3분이면 오는 지하철을 놓쳐도 속이 바짝바짝 타는 나로선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비워야 편할 텐데. 아무리 속을 태워봤자 지나간 버스가 뒤돌아 오지는 않으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일까? 고민할 것도 없이 그건 아니라는 답이 떠오른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면 참 좋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생산적인 게 아닌 걸 어쩌랴. 게다가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할 테니 고만고만한 일 중에서 그나마 내게 맞는 일을 택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코스모스와 함께 당신을 응원함'에서 저자가 말하는 하고 싶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더 하고 싶어하는 다른 일이 생기면 또 그걸 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말.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현실이 꼭 저렇게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조금 더 어렸을 때라면 저런 선택을 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아직 직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어린 친구에겐 꼭 보여주고 싶은 글이다.

 

 

  여행을 앞두고는 기대감으로 설레면서도 긴장으로 두렵기도 하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내 마음은 여행을 많이 가 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했는데 여행 경험이 많아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저자도 여행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니 말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어'라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발을 내딛는다는 그. 사랑도 여행과 비슷하니 그녀 혹은 그를 꽉 껴안으시길 당부한다. 사랑에 끝을 예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지만, 어쩌면 두 번 다시라는 생각으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마음에 든다. 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는 절실하게 생각하기 쉽지 않으니까. 한편으론 이렇게 꼭 껴안을 상대가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다닌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단 관광에 가까웠다. 유적지나 볼거리 위주로 다녔으니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서는 관광의 성격을 띤 여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저자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본래 의미의 여행이란 이렇듯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게 아닐까.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생각이 정리되고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다고 하는 것 같다. 다음번엔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고 싶다.

 

 

 

  장 보러 마트에 가면 뭘 골라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냥 콩나물 하나면 되는데 이곳저곳에서 나온 게 많아서 오히려 고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차이가 있지? 또 뭘 염두에 두고 고르면 좋은 걸까? 거기다 유기농이니 저농약이니 다 좋은 말 같은데... 어떤 것은 선택해야 현명한 걸까? 정말 이런 거 일일이 다 물어볼 수도 없고, 인터넷을 찾자니 번거롭고. 이런 나를 위한 책을 발견하였으니 바로 '똑똑한 장바구니!' 풀무원홀딩스의 식문화연구원과 식생활연구실의 직원들이 안전하게 식품을 골라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쓴 책이라 어느 정도 신뢰가 갔다.

 

  장보기를 꽤 해 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처럼 거의 경험이 없다시피 한 사람에겐 이 책의 내용이 획기적이고 신선했다. 물론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만 보기만 해도 눈길이 가는 자그맣고 귀여운 사이즈의 책은 가방에 쏙 들어간다. 설마 이 책을 들고 장 보러 갈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리 부담되지 않을 크기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처음엔 장보기 전에 알아야 할 식품첨가물과 인증마크 등을 보여주고, 두 번째 파트에선 식품 표시를 읽는 방법에 관하여 자연식품/상온식품/냉장식품/냉동식품으로 나누어 알려준다. 장을 볼 때도 순서가 필요한데, 그림으로 나타낸 식품안전 장보기 60분이 바로 그것이다. 장을 본 후엔 장본 것을 최대한 빨리 냉장고에 넣어야 하며 그때의 순서는 역순으로 해야 가장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기껏 애써서 장본 것을 사후처리 미숙으로 신선도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가장 유용하단 생각을 한 부분은 종류 부분. 얼핏 듣기에 그게 그거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게 각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게 설명해주어 꽤 도움이 됐다. 그리고 실제 식품에 나와 있는 식품의 성분 표시와 몇 가지 성분이 어떤 작용을 하는 건지 나온 부분도. 저자의 말대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의사소통 공간이 바로 식품 표시이니 제대로 알고 읽을 줄 알아야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 제조일자는 있되, 유통기한은 없다는 거. 그리고 온도가 낮아도 대장균이 서식할 수 있어 제조일이 오래된 것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에 놀랐다. 유통기한 없는 건 알았지만 대장균.. 으아 살짝 충격. 이젠 무조건 잡지 말고 제조일자 확인이 먼저!!

 

  가공식품에는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가는데,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름을 듣는다고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그룹들이 유화제인지 이런 그룹들은 착색료인지 대강 틀을 잡았으니 건강 밥상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예 식품첨가물이 없는 것으로 완전한 자연식으로 챙겨먹을 수는 없겠지만, 동종 제품을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덜 섭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뭐가 뭔지 알고 꼼꼼하게 구매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