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이빙이라는 것은 올림픽 시즌에 채널을 바꾸다가 어쩌다 화면에 걸려 보는 게 고작인 것이다. 다이빙에 관한 나의 관심은 4년에 고작 1분 정도라고 할까? 플랫폼에서 물속으로 떨어지는 그 찰라에 점수를 매긴다니 뭐가 제대로 보이기나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책 소개를 보며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다이빙의 절차를 하나 하나 상상해 보니 지루하기는 커녕 너무도 숨막히고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빙대에 올라간 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높이 뛰면서 회전과 함께 물속으로 풍덩! 몇 개월, 몇 년 동안 준비해온 것이 단 1.4초의 짧은 순간에 판가름 나는 것이다. 이 짧은 순간을 통해 주인공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짜릿한 성공과 수많은 좌절을 맛보게 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이빙 클럽 DMC는 적자 운영에 허덕이며 폐쇄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즈키사(社)의 전(前) 회장이자 DMC 클럽 창시자의 손녀인 아사키 코치와 그녀가 데려온 시부키가 등장하면서 DMC 클럽에 새바람이 분다.
올림픽 선수였던 부모님을 둔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요이치
전설로 남은 다이빙 선수였던 할아버지를 둔 시부키
다이아몬드 눈동자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도모키
미즈키사는 DMC 선수 중 한 명이라도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면 클럽을 폐쇄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때부터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다이빙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저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 없었던 도모키는 아사키 코치의 가르침을 받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도코키의 동체 시력이 남다르다는 것과 그가 남들보다 훨씬 더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아사키는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도모키의 실력을 깨우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살인적인 스케줄을 끈기 있게 실행하는 사이 도모키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지게 된다. 그동안 자신에게 이런 재능과 열정이 숨어 있는 줄 몰랐던 도모키는 이제 진정으로 다이빙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아사키 코치가 데려온 의문의 사나이 시부키. 그는 다이빙 선수라기 보다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집 근처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어느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시부키의 모습을 본 아사키 코치의 할아버지는 그를 DMC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지만 거부당하고 만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선수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아사키 코치는 그의 절벽 다이빙을 본 순간 한눈에 매료 당하게 되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시부키는 결국 DMC 클럽에 입부하게 된다.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되는 파워과 절도있는 동작이 그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시부키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자세로 인해 허리가 이미 망가지고 있다.
누구나 다 천재라고 말하는 요이치. 그의 부모님은 모두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 출신이다. 역시 유전자의 힘인지 그도 다이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어릴 적 뒤로 돌아 뛰기를 하다가 플랫폼에 머리를 박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그 동작에는 자신이 없고, 무엇보다 DMC의 리더라는 자격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흔히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고 말하지만 다이아몬드 눈동자를 가진 도모키는 다른 선수들을 경쟁자이기 전에 동료로 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처음 요이치는 그런 도모키의 마음자세를 스포츠맨 답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그런 마음에 동화되어 다이빙이라는 것이 플랫폼에는 혼자 올라서야 하지만 이것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경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주인공 뿐 아니라 다이빙을 사랑하지만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실력에 좌절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료와 레이치라는 평범한 녀석들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료와 레이지는 동갑내기인 도모키와의 실력차가 어느날부터 확연하게 드러나자 그를 질투하게 되고 이유모를 화도 낸다. 레이지는 그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맞는 다이빙을 계속하지만 결국 료는다이빙을 그만 두게 된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의 세계에는 승자는 오직 한명으로 나머지는 모두 패자일 뿐이지만 작가는 스포츠를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지 않고, 타고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력으로 잠재력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고, 화려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기본기도 중요하고, 모든 선수에게는 성실함, 타고난 재능 같은 각자의 주특기가 있으니 승자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제의 승자가 내일의 승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수영연맹은 올림픽 예선전을 치뤄서 국가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미리 착출해서 그들을 중점적으로 서포트 해주려는 계획하에 2명의 선수를 선정하는데 그 중 한명이 요이치가 된다. 올림픽 대표가 된 이상 DMC 클럽의 존속은 보장된 것이지만 요이치는 이런 식으로 대표가 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동안 시부키와 도모키도 올림픽을 향해서 함께 노력했는데 경기의 성적이 아니라 연맹의 뒷공작으로 대표가 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는 대표자리를 고수하고 정당한 승부를 원하지만 이로 인해 DMC의 헤드코치이자 아버지와의 사이는 더욱 소원해 진다. 올림픽 대표 선발 대회가 있는 전날 밤 요이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야간 연습을 하다 몸살에 걸리고,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그는 예선전을 꼴치로 치루게 된다. 본선에서는 다행히 뒷심을 발휘해 차근차근 순위를 올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옆 풀장에서 벌어진 수영 경기의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에 요이치는 의욕을 잃고 플랫폼 위에 오도카니 서 있는다. 아버지와 코치라는 입장 사이에서 늘 공평함을 유지하려 애쓰던 후지타니 코치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당장 멈춰! 내 아들이 지금 뛰어내리잖아." 라고 외치고 그와 동시에 요이치는 최고의 다이빙을 선보인다.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수영연맹에서 건 점수는 600점 이상. 아픈 몸에도 괴물 같은 정신력으로 요이치는 600.09라는 점수를 얻고, 허리 통증을 가진 시부키도 앞으로 뛰기 스트레이트라는 소박한 포즈를 클리어함으로써 만점을 얻어 600.09라는 점수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도모키는 성공률 6%의 위험한 4회전 반을 성공시키며 대회 우승을 하게 된다.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모두의 코치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요이치의 아버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장 멈춰! 내 아들이 뛰어내리잖아."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정말 코끝이 찡했다. 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막혀 있던 후지타니 부자가 다시 서로 마주보게 되는 순간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최상의 연기를 한 요이치 또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요이치가 대표선수를 고수했을 때 화를 내던 것도, 지금 이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치던 모습도 표현은 서투르지만 모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이들에게는 앞으로 넘어야 할 한계와 경쟁해야 할 많은 상대가 있지만 책을 보고 있으면 그 미?? 한명이지만 그 1명의 선수가 늘 같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몽롱함' 이었을 것이다. 뿌연 안개 속의 가려진 이정표처럼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함으로 가득한 글들. 하지만 다이브를 읽으면서 이렇게 긴장감 넘치고 흥미로운 글도 있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 모리 에토는 수차례 아동문한 상을 수상했고 다이브 또한 아동 출판 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결코 아동만을 위한 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이브는 신선한 소재와 개성있는 주인공들,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가득했던 보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었다.
다이브,
모리에토,
성장소설,
d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