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traveler's wife
이 소설은 묘하게 실제적이다. 시간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실제적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헨리의 시간여행을 따라 다녀보면 우리가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시간여행자들과는 달리 헨리는 좀 더 현실적인 많은 고생을 한다. 우선 시간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몸 이외의 어떠한 것도가져가거나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과 위험함. 그리고 자신이 전혀 시간여행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상황. 뭐, 이런 것도 그렇게 나쁜 거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은 헨리가 운전을 배우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운전중에 시간여행을 하면 운전자가 없어진 차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한두가지가 위험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이동을 꿈꾸며 타임캡슐이라는 상상속의 기계를 만들었다. 우리 상상속의 타임캡슐은 시간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시간으로 가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 시간으로 언제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 속의 헨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동을 당하고 만다. 마음의 준비도, 옷이나 돈 같은 물질적인 것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일일까.
클레어는 그녀가 여섯살일 때 헨리를 처음 만난다. 예고없이 알몸의 성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어느 누구라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테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헨리와 그의 시간여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도무지 믿지 못할 이야기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를 본다면 도무지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헨리를 그녀는 어느새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미래에서 온 헨리는 그녀에게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마침내 그녀가 20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28살의 현실속의 헨리를 만나게 되지만 이때는 헨리가 아직 여섯살의 클레어를 만나기 전으로 헨리는 클레어라는 존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뒤엉킨 시간 속에서 클레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헨리에게 섭섭함을 느끼지만 그의 독특한 삶의 방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둘의 관계가 자신이 바라는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클레어를 통해 자신이 그녀의 과거에 앞으로 나타날 예정이고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될
것이라는 걸 헨리는 알게 되고 이미 예정된 미래처럼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혼을 하고 어려움 끝에 아이도 같게 되지만 헨리의 예측불가능한 시간여행 또한 여전하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의 주차장에 떨어진 그는 알몸으로 너무 오래 방치된 탓에 저체온증과 동상에 걸려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낀 채 현실로 돌아오게 되고 클레어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지만 결국 두 발을 잘라버리게 된다. 발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절망적인 현실에 한동안 매우 우울함을 느끼던 헨리는 결국 클레어의 사랑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미 그는 자신의 최후의 순간으로까지 시간여행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래의 일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헨리는 그저 담담히 그때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할 뿐이다. 연말 파티가 한창이던 때 헨리는 클레어가 어릴 때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게 되고 사냥중이던 클레어의 아버지에게 총을 맞게 된다. 마지막은 클레어와 함께 하고픈 간절한 바람에 금세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이미 그의 몸은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는 죽게 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주인공인 헨리가 죽은 시점에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하지만 이 책은 현실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분 매초가 각기 다른 수많은 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면 1초전의 나도 있고, 한달전의 나도 있고, 1년 후의 나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런 방법으로 헨리는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헨리와 클레어의 딸인 앨바 역시 시간여행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헨리와 앨바는 시간여행중에 종종 만나게 되기까지 한다. 소설 속에서 헨리는 어느 곳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혼란을 클레어를 통해 잠재우는 듯 하다. 이동할 때마다 변하는 세상속에서 클레어라는 존재는 마치 안개낀 비닷가에서의 등대처럼 그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느 시간에 떨어지든 클레어라는 존재를 찾는다면 거기가 곧 헨리에게 나름대로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반면 클레어 역시 다양한 곳에서 온 헨리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현실속에서 마침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클레어는 이미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를 알아왔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지만 헨리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서운함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럴 때 조차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것은 미래에서 온, 이미 클레어와 한창 사랑에 빠진 헨리이다. 헨리는 클레어에게 현재의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로 나를 길들여주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며 클레어에게 힘을 준다.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클레어에게 그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미래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작년의 어느날 시간여행 속에서 아주 먼 미래의, 나이든 클레어를 봤다고. 그때까지 그 순간을 기다려 달라고. 클레어는 아마 언젠가 다시 헨리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순간을 꿈꾸며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속의 헨리도 사랑하고 미래에서 온 헨리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같지만 분명히 따로 존재하는 헨리는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헨리의 시간여행과 복잡하게 얽힌 모든 사건들의 나열을 글로 설명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만 작가는 그 모든것을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게 글로 표현했다. 언듯보면 진부한 스토리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은 꼼꼼한 복선들로 연결돼어 있고 문체 또한 깔끔해서 전혀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단한 점인 것 같다.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여행자의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