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동네에서 내가 움직인다. 전에는 나만 멈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만 움직인다.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
캬바레에서 춤을 추는 난장이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피가 섞이지 않은 말 더듬이 삼촌,
공부는 뭣하러 하냐며 생긴대로 살라는 담임 똥주,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릴때 집을 나간 베트남인 엄마,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뒤늦게 킥복싱에 빠진 나, 도완득.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나름대로 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자격 미달자들이 범람하는 글이다.
완득이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그저 학교다닐 나이니까 학교를 다니는
그런 녀석이다. 왠일인지 학교에서는 주먹 꽤나 쓴다고 소문이 나있다.
가만히 두면 일부러 싸울 일이 없는데 남의 얘기 하기 좋아하는 녀석들은
완득이네 아버지가 난장이에다 캬바레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알고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꼭 촐랑거리며 입을 놀려 한 대 얻어 맞고는 지네들끼리
멋대로 깡패라는 타이틀을 달아준다.
이런 이유 말고 학교에 취미가 없는 이유중 하나는, 아니 이유의 대부분은
학생에게 공부는 권장하지 않고 학생보다 더 제멋대로인 제발 없어지길 바라는
못말리는 담임 똥주가 있다.
젠장, 게다가 똥주는 완득이네 바로 앞집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득이가 사는 옥탑방 앞 건물의 옥탑방이지만.
즉, 학교에서 뿐 아니라 집에 와서도 언제든지 똥주를 볼 수 있다는 거다.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라고 생각하는 완득이다.
특별할 것 없는 완득이의 열일곱 인생에도 문득 새로운 바람이 분다.
뭔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부터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나타나는데 그녀는 놀랍게도 베트남 사람이고,
같은 반 정윤하(일등과 꼴찌의 세기적 만남)와 처음으로 연애 비슷한 것을 시작하고,
사람 팰 때 밖에 쓰지 않았던 주먹을 킥복싱이라는 운동으로 승화시킨다.
물론 아직은 3전 3패의 우울한 기록이지만 정체되어 있던 도완득 17세 인생이
이제서야 빛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문체가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언듯 내용까지 가벼워 보이지만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같은 사회의
낮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바르지 못한 모습들을 튀지 않게 써놓았다.
"내 나이 열일곱에는 어떤 일이 있었지?"
"하긴 그 나이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완득이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혼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어느때는 무모하고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완득이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마음껏 반항하고 방황하는 열혈남아지만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그런 행동들을 모두
무마시켜 주는 것 같다.
마치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조금은 삐뚤어져도 된다는 면죄부를 가진듯 하다.
어째서 나는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었던 면죄부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던 걸까.
가난한 집, 난장이 아빠, 못하는 공부, 베트남인 엄마.
어느 것 하나 남 부럽지 않은 worst 조건들을 best로 갖춘 완득이지만
길고 긴 인생은 이제 막 시작으로 훗날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열일곱 화이팅.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였다.
비장애인 아버지는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아버지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상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숨긴 자식이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근본까지 들먹인다. 근본은 나 자신이 지키는 것이지 누가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