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변호사로 성공할 만한 능력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던 29살의 여자 사만타. 승진을 발표하는 날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게 되고 회사로부터 도망을 친다. 어쩌다 보니 그녀는 이미 어느 집의 가정부로 취직을 하게 되고 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사만타가 이런 난국을 겪고 있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어떠한가. 물론 그녀에게도 가족은 있다. 너무도 대단한 엄마와 오빠. 사만타의 엄마와 오빠는 각자의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스펙으로 본다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지만 과연 이들이 가족으로서도 합격점을 받을까? 아니 그들은 분명히 낙제를 받을 것이다. 가족의 격려와 위로, 축하가 필요한 시간에도 그들은 각자의 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일만 파고 드는 것은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행복할까?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변호사 일밖에 없었던 그녀가 가정부로 취직을 했다. 그녀는 심지어 오븐이나 세탁기 같은 기본적인 가전제품의 작동법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바로 손 안에 움켜 쥐었다가 자신의 초보적인 실수로 놓쳐 버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 "0"이 아니라 "-"로 추락해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가정부로 일하면서 그동안 그녀가 눈여겨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것들에 조금씩 눈을 돌리게 된다.

물론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뭔가 성과를 얻는 것은 대단히 보람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마치 자신의 몸을 일하는 기계처럼 만들어 버리고 일 때문에 인간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 리듬이 산산히 부숴져 버린다면 어떠할까. 
이 정도 시기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지금은 쉬어야 할 타이밍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숨 돌릴만한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쉼'이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 좋은 충전의 시간이 될 지도 모른다. 피곤했던 몸과 마음을 다시 무장하고, 그동안 머리 한 구석에 박혀 있었던 중요한 것을 다시 끄집어 냄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순환하는 길을 재정비 해주는 시간.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쉼'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과 동시에 당근도 함께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플랄라의 작가 안니 슈미트는 네델란드의 국보급 동화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과연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위플랄라에는 동화에 들어있을 법한 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마법, 요술쟁이, 모험, 가족, 행복한 결말> 같은 것들 말이다.

 
넬라델라와 요하네스는 아버지 브롬선생과 함께 살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어느 날 위플랄라라는 손가락만한 꼬마 도깨비가 등장하면서 브롬가족에게 신비로운 일이 생긴다. 위플랄라의 마법으로 손가락만하게 작아진 가족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비둘기, 오리같은 것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곳 저것을 옮겨 다닌다. 사람들에게 들킬 뻔한 위험도 많았지만 작은 숙녀 로티와 그녀의 주치의 핑크 선생의 도움으로 안전한 생활을 하게 된다.

브롬 가족을 원래대로 돌려 놓기 위해서는 위플랄라가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던 위플랄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빨간 열매를 먹고 브롬 가족을 처음의 모습으로 돌려 놓게 된다.

 조금 마무리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이 그냥 소설이 아니라 동화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그 결말이 아주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브롬 가족은 지금의 생활이 얼마나 평화로웠던 것인지 깨닫게 되고, 위플랄라는 메시지 하나만을 남기고 떠난다. 이보다 더 깔끔한 결말이 별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동화를 보면 모두 그렇지 않은가. 흥미롭지만 힘겨운 모험을 하게 되고, 집을 떠난 뒤에야 그동안 누려왔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그런 것. 진부하지만 만고의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그 결말이 위플랄라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지겨운 내용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무서운 설정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의미에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들에게 닥친 일이 무난하다는 것이다.

독이든 사과를 먹는다거나, 고래에게 잡아 먹힌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잃는 일같은 어찌보면 잔인하기까지한 그런 일이 없이 자극적이지 않은 (고작해야 키가 작아지는 정도의-) 설정 속에서도 충분히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가족이니까 절대 떨어지지 말자!"

 

위플랄라, 안니슈미트, 동화

And Then There Were None - Agatha Christie , England(1891-1976)

 추리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녀의 이름을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과 함께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불리우는 그녀, 애거서 크리스티. 영국에서 국가에 공헌한 남자에게 주어지는 기사(Knight)작위가 있다면, 국가에 공헌한 여자에게는 데임(Dame)이라는 작위를 주는데 그녀는 추리소설로써는 유일하게 데임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런 장르에는 흥미가 없었던 내가 ’추리소설을 한번 읽어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이 바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느껴지게 만드는 제목.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추리(mystery)’와 ’공포(horror)’의 상이한 점을 생각지 못해서였다. 평소 공포물을 쳐다보지도 않는 나는 추리소설을 읽고 몇날 며칠을 잠들지 못할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얼마전에 갑자기 두가지 장르가 다르다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었다, 이제서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오언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사건의 무대가 되는 [인디언섬]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멋진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모인 8명의 다양한 부류의 남여와, 얼마전에 오언으로부터 고용된 인디언섬의 하인부부까지 모두 10명이 모이게 되지만 정작 그들을 초대한 오언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언이 빠진 채 저녁식사를 하고 평화롭게 차를 마시던 중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아연실색한다. 그 목소리는 그들 각자가 과거에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은 단순한 사고로 자신들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사이 첫번째 사람이 죽는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살인’이 아니라 ’사고’라고 생각하지만 곧 두번째, 세번째 희생자가 나타나고 그들이 죽는 방법이 어릴 때 부르던 인디언 동요의 가사와 똑같다는  것, 그리고 테이블에 위에 있던 10개의 인디언 인형이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일이 누군가가 꾸민 살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글을 읽었지만 나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추리소설의 기본 패턴은 범인이 실수로 흘린 단서를 바탕으로 주인공이 범인을 밝혀내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사건을 밝히는 ’탐정’ 역할이 없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의 에필로그에서 편지로 범인이 밝혀지고 그가 어떻게 일을 꾸몄는지가 나오는데, 지금까지 익숙하던 형태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약간은 억지로 맞춘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것 같다. 게다가 범인이 사건을 저지른 계기도 공감이 안 되었다.

 탐정(주인공)이 아주 작은 단서들의 개연성을 근거로 범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장면이 독자들이 추리소설의 가장 큰 묘미를 느끼는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부분이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고 할까. 추리소설은 이번이 처음이고 아직은 그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명성에 비해서 살짝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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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아무도없었다, 애거사크리스티, 추리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