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 마을 오렌지비치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존스.
희끗희끗한 머리에 그의 트레이트 마크는 어디를 가도 들고 다니는 낡은 가죽 트렁크 가방 한 개이다.

 존스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어디서 잠을 자는지, 트렁크 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었는지, 도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존스는 이미 나타나는 그 순간 오렌지비치의 마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심리적, 물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용케 찾아가서 따뜻하고 솔직한 말로 시작되는 그의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 가짐을 바꿔놓게 된다. 누구에게나 지금 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숨겨져 있지만 다만, 그 능력을 이끌어줄 한 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부족했던 것 마냥 존스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들은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 존스 이야기의 핵심은 [관점의 전환]이다.

작가 앤디 앤드루스는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주로 쓰는 작가인데 그의 명성과는 달리 나는 별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책의 내용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뭔가를 결심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행동하기 전에는 그 어떠한 결심도 소용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는 공감하고 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결심과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그 중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행동'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우리가 하는 걱정의 92퍼센트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 
그러니 결국 싸워 이겨야 할 상대는 바로 우리의 잘못된 상상력이지.           - 출처 오렌지비치 본문 97페이지

수많은 선택지 중에 좋은 걸 잡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단다! 어느 정도 지식과 지혜만 있으면 좋은 것과 나쁜 걸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사이의 미세한 차이는 진짜 지혜로운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가 미래를 바꾸지.                                             -출처 오렌지비치 본문 134페이지

Untouchable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질 수 없는'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 단어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달리트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으며 이는 4단계로 구분된다고 한다. 사제인 브라만, 군인 계층인 크샤트리아, 상인 계급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 하지만 수드라보다 더 낮은, 카스트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아웃카스트'라고 불리우는 불가촉천민이다.

불가촉천민들은 자신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려고 엉덩이에 빗자루를 달고 다녔으며, 그들이 침이 땅을 더렵힌다며 오지그릇을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우물에서 물도 길어 마실 수 없고, 사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있는 권리였다. 1950년 1월 26일 인도 헌법은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하였지만 카스트라는 것은 이미 인도신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달리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깨어진 것은 아니며, 그들은 여전히 투쟁중이다.

 책의 작가 나렌드라 자다브는 달리트 출신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학자로 발돋움한 사람이라고 한다. 달리트들이 남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성공은 인도의 수많은 달리트들에게 커다른 희망을 안겨준 셈이다. 이 책은 다무와 소누라는 부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다무와 소누가 바로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인도 불가촉천민의 해방자라고 불리우는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의 영향을 받은 다무는 어린 시절부터 달리트들의 운명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달리트들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어머니, 그저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아내 소무와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는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기 않는다. 아무리 많은 달리트들이 노력해도 그들의 권리를 찾는 일이 쉽지 않게 돼자 바바사헤브는 결국 카스트제도가 없는, 모두가 평등한 불교로 개종하기를 권장하고 다무의 가족들 역시 이를 따른다.

다무가 바바사헤브와 뜻을 함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교육'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말을 받아들여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의 정말 대단한 점은 자식들에게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되,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무의 의식이 상당히 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권리를 찾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울수록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교육에는 소홀하게 되는데 그들은 교육만이 살 길이다고 외치며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다무보다는 더 많은 기회를 아들이 얻고, 그 아들보다는 좀 더 큰 기회를 손자들이 갖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다무의 노력이 그들의 다음, 다음 세대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다고해도 말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에 대한 얽매임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양반과 상놈같이 신분제도가 있었지만 1900년 동시대의 두 나라를 비교하자면 인도의 그것이 훨씬 억압적이었던 것 같다. 불가촉천민이 폐지된지 벌써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상당부분이 개선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몸에 밴 습관과 오래된 관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달리트였던 사람들이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그 위에 있던 계급의 사람들은 그것을 없애는 것에 회의적이었을테니 개선의 속도는 더욱 더뎠을 것이다. 비록 인도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깊숙히 들어갔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 한 권을 통해서 인도의 사회적 분위기나 사상 같은 것들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위대한 민족주의자로 불리우는 간디가 불가촉천민의 해방에 대해서만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이 책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