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에 애묘인들인 늘긴 많이 늘었다.

   애견으로 시작한 애완동물 열풍이 어느새 고양이로 번져갔다.

   그리고 이제 젊은 아가씨들이 고양이 키우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식사 후 커피숍 앞에 선 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2. 고양이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동호회가 있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동호회들도 나름의 벽을 세우고 나름의 특권의식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자전거 동호회는 풀세트 의상과 100만원 가까운 자전거가 없으면 소외 당하는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다.

   볼링 동호회는 역시 풀세트 의상과 역시나 100만원 가까운 마이볼이 없으면 소외 당하는 기분을 느낀다.

   또한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나 볼링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배타의 장벽은 우리 사회 곳곳에 버젓이 존재하고 우리는 스스로 벽을 만들고 다른 이의 벽에 부딪치며 살아간다.

 

3. 세상에는 편견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린 시절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사촌형도 언청이었는데 결국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요즘들어 가장 많이 보는 편견은 동남아에서 시집 온 엄마에게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더 악질인 것은 서양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는 이국적이라면 열광하면서

   다소 검은 피부의 동남아 혼혈에게는 일단 무시하고 보는 잔인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그런 편견의 칼날에 희생된 불쌍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더 씁쓸했다.

 

4. 언제나 정치가는 나쁘게 묘사된다. 대부분의 정치가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소설보다 더 씁쓸한 현실은 현실의 정치가가 소설속 정치가 보다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뜻있고 깨끗한 정치인은 가뭄에 콩 나듯이 간간이 보일 뿐이고 우리는 언제나 지저분한 정치가들에게 지쳐있다.

   표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 훌륭한 정치가가 되는 현실이 씁쓸하지 않은가? 반박할 수 없어 더 슬프다.

 

5.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퍼져있는 편견과 오만과 독선의 벽에 대한 통렬한 테러를 가했다.

   누구에게서도 인정 받을 수 없기에 스스로 특권의식을 만들고 배타의 벽을 세워야 하는 우리시대의 '버틀러'들.

   문명은 발달하고 경제는 풍요로워졌지만 경제를 중심으로 흘러간 우리 사회는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이수진, 취항입니다존중해주시죠

  한강의 기적을 노래하며 선진국의 문턱에서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IMF 사태'는 '눈물의 비디오'로 기억되는 비참함과 함께 돈의 힘, 돈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 사회는 돈을 중심으로 하는 물질만능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밀려 정의가 힘을 잃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미 어릴 때 부터 자본주의에 물들어 살아가던 이들에게 닥친 돈의 위력이 이러할진대 자본주의라는 말도 알지 못한 채 근대화가 진행되던 구한말의 사람들에게 신분제 철폐와 돈의 서열이 가져다 준 충격은 어떠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탁환 작가가 이번엔 그 시절 자본의 바람이 불어오던 조선을 배경으로 격변의 시대를 뜨겁게 살다 간 청춘들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송상의 실력자 장훈의 아들 장철호, 인천감사 최용운의 딸 최인향, 천민의 마을에서 천민으로 나고 자란 박진태, 세사람의 사랑과 우정과 배신과 음모의 이야기이다. 거기에 절대악으로 등장하는 인천행수 권혁필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갔던 수많은 상인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려져 펼쳐진다. 강화도 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일제에 국권을 넘기기까지 격변의 시대에서 우리의 상권을 지키고 민족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상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작가의 노력으로 발굴되었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개항과 함께 불어닥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대립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구한말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겐 큰 수확이었다.

 

  초기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다. 장철호, 최인향, 박진태 세 사람의 얽히고 설킨 인연들, 권혁필이라는 절대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배신과 음모,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가 주제이다. 이미 사랑의 승자는 정해져 있지만 그 판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패자의 욕망과 수많은 고난과 절망에 떨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마침내 승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뻔한 이야기가 이렇게도 재미있는 건 역시나 작가의 힘이다. 언제나 김탁환 작가의 소설은 나의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듯이 넘어질듯 일어서는 주인공과 끝까지 발악하는 절대악의 모습이 긴 호흡으로 그려지며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좌절과 절망을 통해 주인공이 성장하고 절망의 나락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낀다. 세사람의 엇갈린 사랑은 안타깝기도 하고 절대악인 권혁필의 빗나간 순정도 동정이 간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혼란의 도가니에서도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통쾌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주인공이 악인에 의해 궁지에 몰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부활했다 또다시 좌절하고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권선징악의 구성에 의해 마지막에 펼쳐지게 되는 치밀한 복수가 던지는 카타르시스의 크기도 비례한다. 이 소설의 경우 3권의 중반부가 지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크기는 나머지 2권 반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악인의 악행에 비레해 클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긴 호흡의 대하드라마로 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복수'라는 주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겪어야 했을 혼란과 그 혼란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에 대한 숨겨진 역사들,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아갔던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 증오와 배신의 엇갈린 운명의 이야기, 절대악인의 절대악행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까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전해준 멋진 소설이다.

김탁환, 뱅크

  가끔 내가 마눌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발표회에 가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만나서 결혼할 수 있었을까?'라고. 마눌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우리가 만날 운명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만날 수 있었을 거야'라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스쳐 지나간다. 그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우연인가?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운명이 정해놓은 길일지도 모른다. 내와 그 사람이 수많은 삶의 계곡들을 넘어서 결국에는 만나게 되어 있는 운명.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처음 만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내게 그런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일깨워 주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짧은 추억과 만남을 공유하고, 서로 헤어져 긴 시간을 그리워하지만 결국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고민, 그 시절의 나와 다른 지금의 나를 사랑할까?라는 고민, 이별의 간극을 메워준 그의 시간속에 부재했던 내가 다시 그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 사람이 내 어린날의 추억속에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들. 단순히 헤어짐과 재회로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헤어짐의 시간속의 나의 부재를 인식하고 다시 그의 시간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감성적인 문체로 다루고 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와 내용은 남성보다 여성의 감성에 가깝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다소 밋밋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이다. 물론 감정선을 따라가는 여정이 지루하지는 않지만 여성적인 감성을 따라가기가 남자인 나에겐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이 소설이 좋았던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너무도 쉽게 사랑하고, 너무도 쉽게 헤어지는 가벼운 만남과 인연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인연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소설은 참으로 흔치 않다.